순교자 (1965) 유현목감독의 걸작. 스포일러 있음.
걸작이란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탑텐에 너끈히 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사변적 철학영화다. 잉마르 베리만을 연상시키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를
마치 수수께끼처럼 나누면서 존재와 신의 의미를 탐구하는 그런 철학영화다. 대사가 추상적, 사변적, 본질을 꿰뚫으려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딱딱한 대사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재치가 있는 대사들이 넘쳐나서 "말맛"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영화가 굉장히 무겁고 굉장히 철학적이고 굉장히 깊이 있다. 군더더기나 곁가지 없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 인간과 신의 의미에 대해 직선적이고 공격적으로 돌진한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뭐 잉마르 베리만의 철학영화를 만들어 볼 수는 있다. 마치 습작처럼. 어설프게. 그래서야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접근방법으로 걸작의 위치에 올랐다. 원작이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소설가 김은국의 대표작 순교자라서, 정말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다.
육이오 동안 국군은 잠시 평양으로 진격하여 점령한다. 뒤이어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국군은 평양을 퇴각하여 남하하게 된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일이다.
북한군이 평양을 대표하는 목사 14명을 잡아다가 총살시킨다. 국군은 이 사건을 크게 이용할 셈이다.
북한군의 만행을 널리 선전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정보대 대장 장대령은 젊은 장교 남궁원을
14명 목사들 중 살아남은 김진규에게 보낸다. 장대령은 진실이 어떻든 북한군의 악랄함을 선전하기 위해 김진규에게서 진술을 받으려 한다. 그의 눈으로 직접 목사들의 순교자적인 숭고한 최후와 북한군의 악랄함을 보았다고 말이다.
아마 육이오 이후 남은 진짜 폐허에서 영화를 찍은 듯하다. 폭격에 부서지고 잔해만 남은 교회에서 찍었는데, 조각나고 부서진 종탑 위에서 바람에 저절로 흔들리는 종이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전쟁의 참화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천마디 말 할 것 없이, 이 폐허만 보아도 전쟁의 참화와 그 안에서 진리와 인간의 숭엄함을 찾으려 노력하는 남궁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굉장히 의미 깊은 대사도 등장한다.
남궁원: "저렇게 폐허가 된 종탑을 그대로 놓아둔단 말입니까? 수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민: "종탑이 저렇게 높은 데 누가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미치광이: (갑자기 나타나 종탑을 향해 오르며) "신은 없다. (엉엉 울면서) 신은 없다."
남궁원은 진실이 중요하지 프로파간다를 위해 진실을 왜곡할 생각이 없다.
그는 대학강단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다 입대한 사람이다. 그는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 무신론자이지만,
인간의 숭고함을 믿는다. 그리고, 진실이란 그 무엇보다도, 전쟁에서의 승리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양심을 관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순교자 김진규를 관찰하고 진술하는 목격자 역할을 한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김진규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다. 신에 대해 말하는 김진규에 대하여 인간적인 숭고함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남궁원의 최고의 역할이자 그의 최고연기가 이것이다.
대사가 굉장히 철학적이다. 사실성이나 캐릭터의 개성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사색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다.
김진규는 과연 12명의 다른 목사들을 배신하고서 북한군에 부역하고 그 댓가로 살아남은 것일까?
정보대의 장대령은 그렇게 몰아가고 싶어한다. 남궁원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김진규가 부역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김진규는 입을 다문다. 그러다가, 자기는 배교자이고 다른 12명의 목사들은 숭고한 순교자였다고 증언하기 시작한다.
김진규는 참 이상하다. 부역을 했으면 했다고, 안 했다고 변명하려면 안 했다고, 말 할 수 없다면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것은 나와 신의 문제다"하면서 답변을 회피한다. 아니,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아니라, "나는 그런 질문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속을 들여다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모호한 안개같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김진규의 이런 모호한(?) 답변이 이 영화의 주제다.
지루하고 무거운 영화일까? 아니다. 굉장히 스피디하게 전개되어서 영화가 정체된 감이 없다. 스릴러물이나 법정영화(?)로서도 일급이다. 남궁원이 진실을 추구하려는 모습은 형사 혹은 명수사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자기들의 대변하는 철학적 입장들을 던진다.
고향인 북한에 잠입해서 스파이역할을 하던 고목사는 북한군에 발각되자 신도들을 버리고 남하한다.
겁쟁이는 아니지만, 종교를 억압하는 북한 공산주의에 투쟁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다른 목사들은 고목사를
경멸한다. 그리고 고목사는 자기를 밀고한 배신자를 지목하여 죽이기까지 한다. 용서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불고 다니면 더 많은 동지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군을 따라 평양에 온다. 그리고 김진규를 비롯 목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남궁원과 함께 대학에서 강의하던 윤일봉은 평양에 와서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살해당했음을 발견한다.
오래 전에 아버지와 의절한 사이다. 그는 종교에서 한 치도 인간적인 것이 없는, 회의도 좌절도 없는 아버지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도 죽을 때는 "아버지, 절 버리십니까"하고 회의를 품었는데
자기 아버지는 인간적인 것이 없다. 아버지에게 이것을 말하자, 너는 사탄이다 하면서 상대도 안하고 쫓아낸다.
정보대 장대령은 김진규가 자기 양심을 위해 자기와 부딪치는 것을 좋게 생각한다. "나는 자네의 양심이 좋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것도 참 의미깊은 대사다. 그는 교활하여 정보조작을 일삼거나 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세례를 받은 교인이다. 나중에 보면, 살해당하면서 자기 유산으로 성경책을 사서 교회에 나누어주라고 유언헸다. 그도 믿음을 가지고 종교의 전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우선 당장은, 전쟁의 참화가
인간에게 그런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그도 종교의 자유를 위해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정보조작을 하고 스파이활동을 한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12명의 목사야말로, 신을 부정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경멸당해 죽임을 당하였다. 김진규만이 북한군 소좌의 얼굴에 침을 뱉은 순교를 각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북한군 소좌는 깊은 인상을 받아 김진규만 살려준다. 장대령은 처음부터 이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숨기고, 김진규에게 12명의 목사들이 순교자였다고 증언하라고 압박한다.
프로파간다를 위해서, 12명의 목사를 순교자로
만들려는 장대령에게 남궁원은 항변한다. "그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 아닙니까? 당장은 민중들에게 상처와 좌절을 주더라도, 그들이 필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장대령은 소리친다.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자네가 알 수 있나?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프로파간다를 만들어 속이더라도, 민중에게 믿음과 의지할 곳을 주라고 원하실 수도 있어. 자네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12명의 순교자가 사실은 배교자였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반전일까? 아니다. 사실은 진짜 반전이 이 이후에 나온다.
김진규는 가장 먼저 배교한 사람이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신이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해, 고민하다가,
신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이다. 다른 12명의 목사들은 심한 고문을 받은 이후 믿음에 회의 를 가진 사람들이라기도 하지, 김진규는 그 이전에 자발적으로 믿음을 버린 사람이다. 김진규는 가장 거룩한 순교자이면서 최악의 배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왜 믿음도 없으면서 계속 믿음을 가진 체하고, 죽을 각오로, 있지도 않은 믿음을 지켰던가?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 이 영화의 주제다. 진짜 반전이다.
굉장히 밀도 있는 영화다. 굉장히 깊은 철학적 고찰로 가득한 재치 있고 본질을 꿰뚫는 대사들로 가득하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종교와 본질을 바라보는 이들이 계속 등장하여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남궁원은 인간의 존엄성과 진실을 믿는 양심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고, 신목사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고찰하는 입장에서 이를 바라본다. 그래서, 문제는 자꾸자꾸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 영화는 대하드라마 수준의
영화다. 공간이나 시간이 넓어서 대하드라마가 아니다. 의미의 공간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다 포괄해서 전달하기도 하지만,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인간과 신의 의미를 찾아야 했던 당시 사람들의
황폐화된 심경을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나중에 육이오가 끝나고 각자 사람들이 택한 인생의 행로 또한 아주 인상 깊다.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진실을 추구하러는 남궁원은 김진규로부터 종교의 의미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신도들을 배신하고 밀고자를 처단하기까지 했던 고목사는 남해의 외진 섬으로 가서 교회를 만들고
평생을 그 척박한 땅에서 믿음을 전파하기로 결심한다. 장대령은 전쟁 중 살해 당하면서 자기
유산으로 성경책을 사서 전국에 믿음을 전파하라고 유언한다. 윤일봉은, 광신도로 생각했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당시 좌절하고 신을 부정했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종교로 돌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좌절과 배교로부터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김진규는 평양에 남았는데, 이상하게도 도시전설이 된다.
만주 국경부터 서해의 섬에서 평양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심지어는 그를 보지모 못했던 사람들도
그애 데한 이야기를 한다. 결국 그의 신에 대한 부정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구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진규의 배교 또한 넓은 의미에서 신의 뜻이었을까? 자기를 부정하고 회의하도록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신의 의지였을까? 김진규는 회의를 가진 인간이었지만, 인간적인 회의야말로 가장 신적인 것이란 말인가? 다르게 생각하면,
신을 믿지 않게 된 김진규, 무신론자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남궁원 모두 신의 설계 안에서 신의 다른 일면으로 존재하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철학영화의 걸작이라는 아주 유니크한 위치를 한국영화사에서 차지한 걸작이다. 한국정신사의
기념비적 기록물이라는 위치도 차지하고 있다. 원작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걸작이라서
무거운 주제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잘 만든 추리물 법정영화이기도 하다.
천재 소설가 김은국, 천재감독 유현목 (30대의 창조력과 생명력이 전성기에 있었던 때다), 대배우 김진규가 만나
창조된 걸작이다.
** 우리가 나이든 원로배우로만 알고 있는 남궁원, 윤일봉이 젊고 에너제틱한 장교들로 등장한다. 힘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창조력과 매력을 발산한다.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전성기에는 이런 모습이었고, 그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에게 매료되었을 것이다. **
추천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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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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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유현목 감독은 정말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오발탄만 봐도 왜 위대한지 알수있죠
영상자료원 유튜브에는 아직 없나 보네요. 고화질 리마스터 기대해봅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