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의 신부 (1960) 옛날 옛적에. 더 이상 무섭지는 않지만 옛날이야기를 듣는 정겨움과 즐거움이 있다. 스포일러 있음.
드라큘라 영화는 하도 많이 나와서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피를 보면 기절하는 심약한 드라큘라, 나르시즘에 빠진 답 없는 드라큘라, 현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너드가 된 드라큘라, 현대 컬트 종교집단의 지도자가 된 드라큘라 등 안 나온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보는 맛이 있다. 바로 옛이야기를 듣는 정겨운 맛이다.
아무리 옛날 호러영화라지만, 이렇게 안 무서울 수 있는가?
하지만 플롯이 아주 훌륭하고 연출이 아주 탄력적으로 영화를 흥미진진 매력적으로 만든다.
경쾌한 스피드와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갖고 영화가 진행된다.
무대도 고풍스런 18세기쯤 되는 독일 지방도시.
마리안이라는 젊은 여자가 마차를 타고 나타나 여관 겸 술집에 들어선다. 가까운 기숙학교에 선생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웬지 파랗게 질려서 빨리 여길 떠나라고 한다.
마리안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재빨리 여길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리안은, 눈치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서 쉬었다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웬일인지 마차의 마부는 혼자 마차를 끌고 마을을 떠나 버렸다.
마을사람들은 더 파랗게 질려서 마차를 구해줄 테니 여길 어서 떠나라고 한다.
더 이상하다. 보통사람이라면,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서둘러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리안은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밤이 되자 밖에서 마차소리가 당도하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기다린다.
들어선 사람은, 어느 노귀부인. 마을사람들은 그녀가 드라큘라라도 되는 듯, 움츠리고 두려워한다.
귀부인은 술집이 누추하다고 자기 성으로 가자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눈짓을 해주는데도,
마리안은 좋다고 따라나선다.
맞다. 마리안이 이 영화 사고뭉치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까?
영화가 마치 에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처럼 아주 그로테스크하고 분위기가 죽인다.
무언가 공포스러운 고성, 사연 있는 사람들, 비밀의 방, 신비스럽고 파멸적인 사건들, 살인들,
뭐 이런 것들이 있다.
마리안은 자기가 눈치 없어서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만, 그녀 덕분에
마을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드라큘라 대신에 마인스터남작이라는 흡혈귀가 등장한다.
크리스토퍼 리는 당당하고 카리스마적인 중년의 인물이지만, 마이스터남작은 아직 소년티가 나는
금발의 젊은이이다. 처음 만났을 때, 마리안은 그가 아주 연약하고 병약한
귀족적인 젊은이라고 생각하고 동정심 겸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뾰족한 이빨을 하고서 사악한 모습으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는
반전적인 장면이 충격을 준다.
반 헬싱이 등장해서 마인스터와 싸운다.
반 헬싱이 등장하면서 재미가 좀 떨어진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처럼 진행되어 오던 영화가,
이제 액션물처럼 바뀐다. 구르고 뛰어다니고 하면서 반 헬싱이 마인스터와 싸우는 것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가 된다.
이때만 해도 피터 쿠싱이 아주 젊어서, 액션장면이 된다. 쇠사슬을 빙빙 돌리고, 아주 높은 풍차를 기어올라가고,
격투를 벌이고 한다.
그리고 피터 쿠싱과 흡혈귀라는, 전형적인 대결구도를 반복한다.
얼마나 현실적인 지 모르겠으나, 마치 18세기 유럽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보는 듯한 디테일한
풍속묘사와 더불어, 그 속에서 그들의 생활 속 일부인 미신에 등장하는 흡혈귀를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흡혈귀는 거울이 비치지 않는다는 미신을 듣고, 어느 젊은 여자가 혼자 방안에 앉아 자꾸 거울을 보았다가 뒤를 보았다가 한다. 거울을 보니 빈 방에 자기 말고 아무도 없다. 뒤를 빙 둘러보니 방안은 비었다. 조금 있다가 무서워져서
겨울을 보니 아무도 없다. 뒤를 빙 둘러보니 방안은 비었다.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불안에 차서 반복하다가
뒤를 보니 흡혈귀가 이빨을 드러내고 캬아 하는 짐승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 있다. 앞을 보니 거울에 자기 말고 아무도 비치지 않는다.
마인스터가 흡혈귀인 줄 알면서도 그의 높은 신분과 사회계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속하여 살아가는 마을사람들도
중세봉건사회를 그린 듯하다.
마인스터가 "너희들은 모두 내 땅에 세들어 사는 임차인들이다"하는 것도 그렇고, 좁고 답답하고
폐쇄적인 사회분위기를 잘 그려낸다. 마인스터와 대비되어 마을사람들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신부다.
하지만 정신적인 지주는 지주인데, 마인스터로 대변되는 계급사회 속에서는 그냥 세입자들 중 하나다.
별 다른 힘을 내지 못한다.
신부는 유명한 의학자 반 헬싱을 초청하고, 외부로부터 온 반 헬싱이 봉건사회구조로부터 자유롭게,
흡혈귀와 싸운다. 영화는, 반 헬싱이 "과학의 사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반 헬싱은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사람들뿐만 아니라 타성에 젖고 권위적인 나이든 의학자와도 대비된다.
그는, 흡혈귀 마인스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활력에 넘치고 자유로운 사람들 중 하나다.
이 플롯은 고골리스러운 데가 있다.
드라큘라영화들 가운데에서도 문학적인 (고딕소설적인) 면이 있다.
성수를 맞은 마인스터의 얼굴이 구멍이 뻥 뚫려 뼈가 드러난 장면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보아도 좀 징그럽고 그럴듯하다.
해머영화 특유의 빨간 페인트 뿌린 선명한 피와 잔인하고 선정적인 분위기,
원색의 불안정한 활용 그리고 퇴폐적인 여흡혈귀들이 등장한다. 감독이 무려 테렌스 피셔다.
하지만 플롯이 훌륭하고 굉장히 안정적이다. 다른 드라큘라와 다르게 순하고 착하게 생긴 금발의 젊은이가
흡혈귀로 변해 이빨을 드러내며 잔인하고 비열한 모습으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것이
꽤 소름끼친다. 엄청 젊은 피터 쿠싱이 활발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액션을 펼치는 것이 좋다.
해머영화 드라큘라영화들 가운데에서 인상적인 영화다.
추천인 4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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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흥미로운 작품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 드라큘라 영화들이 무서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