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셔킹(1991) 리뷰
스포있어요.
잘나가는 라디오DJ 잭 루카스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방송으로 여피들이야말로 레알 악마새끼들이라고 독설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그걸 진짜로 믿어버린 한 정신나간 청취자가 여피들이 모인 한 술집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잭의 경력은 그 날로 끝장납니다.
3년이 지나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엉망이 된 잭은 만취한 채 뒷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자신을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중인 기사로 여기는 노숙자 패리를 만납니다. 알고보니 패리는 대학에서 중세문학을 가르키는 교수였지만 3년전 잭의 도발로 일어났던 술집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태였죠. 패리는 잭에게 성배 탐색 임무에 참가하길 부탁하고, 죄책감을 느낀 잭은 패리가 짝사랑하는 여인과 그를 엮어주려고합니다.
피셔킹은 영화 전체에 감독 테리 길리엄의 인장이 빼곡하게 찍혀있는 작품입니다. 몬티 파이손의 성배부터 돈키호테까지 테리 길리엄은 평생 중세에 대한 관심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의 트라우마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서 중세 환타지를 살짝 녹여넣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네온 사인이 번쩍이는 뉴욕의 번화가를 화염마를 타고 가로지르는 붉은 기사의 섬찟한 이미지는 중세덕후 테리 길리엄이 아니라면 자아내기 힘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후반 패리와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을 엮어준 잭은 이제 자기가 할 일은 다했다면서 홀가분하게 폐인 생활을 접고 다시 라디오DJ로 화려하게 복귀하죠.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패리가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막상 자신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단 하나 뿐임을 알게됩니다. 바로 패리가 성배라고 굳게 믿어왔던 어떤 컵을 구해오는거죠.
그 컵을 구하기 위해 어느 부자의 중세의 성같은 대저택에 숨어 들어간 잭은 그곳에서 패리가 겪은 끔찍한 사건과 자신의 죄의식을 환상으로 보면서 나아갑니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 피셔킹의 기원이 된 어부왕 전설의 현대적 재현입니다. 신실하고 고결한 소년이 성배를 찾아 평생을 병으로 고통받던 왕을 구해낸다는 중세의 전설이 현실과 교묘하게 엮이면서 잭은 패리의 고통을 진실로 이해하게 되고, 지금까지 자기의 행동은 그저 자기 만족과 셀프 용서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구원과 용서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잭은 패리를 사랑하는 여인과 엮어주는 걸로 자신이 패리를 구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패리에 의해 구원을 받은거죠. 애시당초 3년이나 폐인으로 지내면서 갈 곳 잃은 후회와 자책으로 망가져가던 그는 패리가 베푸는 천지무구하고 아낌없는 선량함을 통해 자기학대라는 기만에서 벗어나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기적이고 냉소적이던 잭은 패리의 성배 퀘스트를 실행에 옮기면서 미혹에서 벗어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한 생명을 살림으로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렇듯 진정한 용서와 구원은 뼈저린 자기 성찰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피셔킹은 좋은 드라마와 연출만큼이나 적시적소에 배치된 좋은 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로빈 윌리암스부터 머세이데스 룰과 아만다 플러머까지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적당히 선량하고 적당히 야비한 인간 잭을 연기한 제프 브리지스입니다. 제프 브리지스는 사랑의 행로(1989)때도 그랬지만, 놈팽이역을 할 때 유난히 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패리 앞에서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제는 도둑질까지 하라고 하냐며 방방 뜨다가도, 그럴리는 절대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내가 그 컵을 가져오면... 그땐 눈을 떠줄거냐면서 울먹이는 잭을 보세요. 이 장면에서 제프 브리지스는 츤데레의 원조 아스카 짱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할 희대의 츤데레 연기를 보여줍니다. 츤츤과 데레데레의 완벽한 비율을 맞춰가면서 말이지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제프 브리지스의 이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은 좀 잊혀진 영환데 다시 상기시켜줘셨네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