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음주자의 [어나더 라운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한 것들이 있고, 그게 글로도 잘 풀리면 꽤 뿌듯한데 [아틱]과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이 그랬습니다.
마침 매즈 미켈슨이 덴마크인으로 출연하는 작품입니다.
발음과 발성법 때문인지 영미권 작품 출연시보다 덜 세련된 캐릭터 때문인지 좀 더 까끌까끌하고 날 것의 목소리가 나는 매즈 미켈슨의 덴마크어 연기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영어쓰는 캐릭터가 그닥이냐하면 절대 아닌)
[어나더 라운드]는 무려 춤까지 춘다하니 기대치가 이미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었고,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 보고 나왔을 땐 아 이 이야기를 써야지, 했는데 너무 아끼고 아끼다보니 산화해버렸습니다 😅)
알코올을 향한 찬가에서 시작해 인생을 향한 찬가를 만들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 없이도
무기력한 0.00%
행복이 술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0.00%
술의 힘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0.00%
네 교사의 혈중알콜농도 변화와 이 3번의 0.00%을 따라가다보면 이건 술을 위한게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시사회 직후 후기)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마시는 샴페인과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마시는 샴페인처럼
루틴대로 흘러가는 무기력한 일상과
몸이 가는대로 표현해내는 활력 넘치는 춤처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닮은 듯 다릅니다.
중간 중간 철학 개념들이 언급되기는 하나 영화는 이 정도만 알면 된다고 관객들에게 짚어주듯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개념풀이까지 해줌). 많은 것을 알 때 더 상세하게 보이겠지만 영화에서 알려주는 것 이상의 지식을 꼭 요구하지 않기에 영화는 대중적입니다.
다소 동떨어져보였던 시작부 키르케고르의 찬가조차 엔딩송과 만나며 영화 전체 구석구석으로 스밉니다.
한사코 춤을 거부하던 이가 친구를 떠나보내고, 제자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보이는 춤사위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술주정으로 보일 정도로 바닥을 구르고 뛰고 헛발짓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이 있음에도 실현자의 우아한 몸짓에 더해 불규칙적으로 뿜어내는 동작은 의외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감독이 매즈 미켈슨에게 요구한대로 그 춤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을 표현하기 때문이고, 기꺼이 실패를 실패로만 두지 않고 미지의 불안으로 몸을 내던지는 우리 인생에 대한 찬가이기 때문이겠지요.
자조의 눈물에 젖은 우수 어린 눈빛부터 저래도 안 들키나 싶을 정도로 간간이 돌아있는 눈빛까지 매력발산하는 매즈 미켈슨은 시종일관 내 남자가 될 것도 아니면서 뭐 저렇게 매력적이냐 하면서 😂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술 진짜 맛깔나게 마시는 모습에 한 잔 쯤은 궁금하다..! 하게 됩니다🥃
처음 봤을 때의 감동과 눈물은 덜 하지만 봐도 봐도 재밌네요.
(이하는 덧말들)
0. 덴마크의 공교육
초반부 열정없이 시간만 때우는 교사 4인방을 보면 떠오르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0.1% 버전 마르틴처럼 카리스마와 유머를 겸비한 실력으로 수학마저 재밌게 알려주던 선생님 대신 갑자기 교체된 정년퇴직을 앞둔 노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모두 수포자로 만들었고
책을 낭독하며 다 밑줄치라고만 하던 선생님은 고3 담임을 맡은 학기 중 휴직하더니 수능을 앞두고 복직해 학생들을 멘붕에 빠뜨렸습니다.
(정말 책을 저 지경으로 만듦)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 바, 능력없고 열정없는 선생은 공교육에서 죄악입니다.
덴마크의 수능격인 시험은 모든 학생들이 응시하는게 아닌 랜덤 선발로 그 외 학생들은 담당 교사가 주는 점수가 고등학교졸업/대학입학 점수가 되기 때문에 교사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구술과 필기를 겸하는 절대평가로 문제풀이 실력으로만 되는게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수업 태도, 과제 성실성 등이 수학능력 부족을 매꾸기도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학생들은 선생님의 열정 운운하기 전에 (교사의 열정을 깨우기는 커녕 있던 의욕도 깎을 정도로) 배울 자세가 안 되어 보이지만 대다수 학부모가 모여 마르틴을 압박한 것은 우리 애들이 공부를 못 하거나 안 하는게 아니라 당신이 못 가르쳐서이니 책임을 지라는 협박이었을겁니다.
한국은 공부가 사다리를 올라가는 유일한 방법이던 때가 있었고 그에 따라 상대평가에 체점제 시스템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사교육 시장이 커졌고,
교육의 평등을 위해 낙오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공되어야 할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지 못 해 공교육 몰락이 거론되어 수준을 올리자니,
여러 요인에 의해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공교육에서조차 탈락하게 되며 (추가적인 사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의 비대면 수업조차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이 있음)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불을 지피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데
덴마크는 사회구조가 다를 뿐더러 위와 같은 교육 체계와 그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공교육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공교육만으로 필요 수준에 다다를 수 있고 오히려 사교육은 공교육으로 그 수준에 못 가는 공부 못 하는 이들이 받는 거라는 인식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요. (졸업시험을 필두로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담보로 그 권위를 유지하는 한편 철저하게 엘리트주의로 이분화된 프랑스 같은 경우일지도)
그리고 초등/중등 교사는 학사 학위로도 될 수 있지만 고등학교 이상은 최소 석사학위를 요구한다는 점도 유효하겠죠. 페테르가 말하는 "12년 전 내가 학교에 왔을 때 넌 교수도 연구자도 될 수 있었다"라는 말은, 이들 모두가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지만 그 중에서도 마르틴이 배움이 오래 되었고 그 수준도 군계일학이었다는 거겠죠. 그런 이조차 무말랭이처럼 맥아리없게 만들다니 매너리즘이란
덴마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국분이 "얀테의 법칙의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글을 봤었는데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기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는 개인의 뛰어남을 억누르게 만드는 사회풍조가 되려 이 잘생기고 똑똑하고 춤까지 잘 추는 이를 스스로 깎아내려가게 만든 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택지를 좁혀가며 자기를 상자 안에 가두기도 했을 거고요.
1. 혈중알코올농도 실험과 확증편향
젊음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그 꿈의 내용이다.
젊음과 사랑에 대한 시와 달리 영화는 젊음도 사랑도 남아 있지 않은 네 중년의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활력을 되찾을 일이라고는 4인방이 모여 서로를 위하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누는 시간 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족에게도 제자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마르틴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술조차 즐기지 못 합니다. 빼어난 외모에 뛰어난 학식, 도자기 공예 대신 춤을 배우던 청년은 이제 없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현명함이 아닌 자신감이란 용기라며 술을 권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는 다시금 즐거움을 느끼고 2시간은 걸리는 만찬에 거하게 취해 갑니다.
지나친 현명함과 이성은 때론 독이 되니,
이성을 놓게 만드는 술은 때론 해독제가 될테지요.
무기력하게 의자에만 앉아 있던 네 교사는 뛰고 구르고 웃으며 밤거리를 활보하고, 다소 부산스럽고 불안하게까지 느껴지는 핸드헬드는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즐거움에 기분 좋게 떠다니는 느낌으로 변주됩니다.
그렇게 영화는 알코올에 대한 찬가로 시작합니다.
인간에게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부족하다.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은 마르틴은 술자리 풍문을 행동에 옮기기에 이르고, 마르틴의 시도에 고무된 이들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포장까지 해가며 근무 중 술을 마시는 행위를 아주 그럴듯한 사회심리실험으로 만듭니다. 정말 혈중 알코올 농도에 의한 것인지, 근무 중 술을 마신다는 금기가 만든 흥분때문인지 그들이 당초 증명하고자 했던 가설은 신빙성을 갖게 됩니다.
도전하는 것은 자신의 토대를 잃는 것이지만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
달라진 마르틴은 익명의 후보 3명의 특징을 언급하며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선별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마르틴은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냅니다. 이들의 실험 또한 그렇습니다.
이미 술병을 들켜 교무회의가 열린 상황에서도 4명의 참가자는 음주를 컨트롤 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에 더 많은 음주를 스스로에게 허용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지를 도출하기 위해 편향된 정보들만 수집하고 다른 변수는 무시하고, 더 나아가 이 가설이 맞는 거 같으니 농도를 늘리면 효과도 늘어나지 않을까 라는 자의적인 해석까지 더하며 가설 입증을 위해서는 바꾸면 안 되는 수치마저 바꿔버립니다.
0.05% 유지를 하며 그 외 변수가 변화를 일으키는지, 혈중알콜농도가 정말 주요 요인이 맞는지가 아닌 술을 더 마시는 방식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에서 이미 그들이 음주를 통제하지 못 한다는게 드러납니다.
마르틴은 0.00%의 혈중알콜농도에도 젊은 시절의 그를 되찾고 행복한 가족 여행을 보냅니다. 그들의 가설대로라면 0.05% 이상의 알콜이 있어야 가능할텐데 말이죠.
점화에 따른 카타르시스
이미 이들의 실험은 직업적 사회적 성취가 아닌 알코올이 불러일으키는 쾌락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술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넘어 술에 잡아 먹혔습니다.
니콜라이의 생일에 진탕 취했을 때 술은 만찬의 여흥을 돋구는 정도로 곁들어졌고, 그들은 마치 아이처럼 즐겁게 공원에서 놀았을 뿐 각자의 자리로 찾아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취하기 위한 술자리는 옷을 벗어 던지고 기물을 파손해 훔치고 길바닥에 널부러지고 잠자리에 오줌을 싸는 등 자기 자리 하나 찾아가지 못 하게 만듭니다.
좋아졌다 생각한 가족관계는 사실 늘 술에 취해 있는 거 다 안다는 고백과 파트너의 불륜으로 뒤덮이고 이들의 실험은 비극적으로 종료됩니다.
그러나 끝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니콜라이, 파트너와 두 아이가 있는 마르틴, 싱글이지만 연애를 하고 아이 대신에 마음 쓰이는 제자가 있는 페테르와 달리 아내가 떠난 곳에서 거동조차 힘든 노견과 함께 사는 톰뮈.
단복을 집에서 세탁하고 부모 대신에 마음 쓰던 유소년 축구단조차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 했습니다.
최고농도실험 직전 무알콜을 선택한 마르틴과 바로 수락한 톰뮈의 모습에서 예정된 비극이기도 합니다.
2. Last가 아닌 Another round
그에게는 그가 의지하고 대등하게 소통할 인물이 없고 다 그가 보살펴야 할 존재들 뿐입니다. (<-> 마르틴과 아니카)
술에 취한 와중에도 규정을 지켜야 한다던 톰뮈는 가장 먼저 술병을 들이켰고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 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그 대신에 너의 삶과 사람을 지키라는 톰뮈의 마지막은 그마저도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술이 이성을 마비시킨 끝에 나온 무모한 행동의 불행한 결과일뿐 스스로를 던진 것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희는 다 배웠고 준비 완료예요"
술을 잃으며 자신감도 다시 잃었다 생각한 마르틴에게 다시금 현명함과 자신감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는 제자들의 모습은 그를 다시 일깨웁니다.
불안이란 실패라는 관념에 대한 인간의 대응
타인과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카페에서 톰뮈를 위한 한 잔을 들이킨 후에 톰뮈라면 어떻게 했을까? 란 의문 끝에 세 친구들은 (아마도 니콜라이의 생일파티를 했을 식당에서) 오랜만에 다같이 식사에 더해진 술을 나누며 슬픔을 승화시킨 즐거움을 공유합니다.
"춤 어디 갔어?" "지옥에" 라던 마르틴이 축제의 절정에서 톰뮈나 페테르, 니콜라이가 추던 것과 비슷한 춤을 추고- 영화는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인생에 대한 찬가로 끝이 납니다.
추천인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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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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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0.05% 맞추고 보면 어떨까 궁금하기는 합니다 ㅎㅎㅎ
얀테의 법칙...
넷플릭스 음악 다큐 보고 알게 됐네요.^^
https://extmovie.com/movietalk/66310790
북유럽 3국이 원래는 한 나라였다보니 얀테의 법칙은 다 공유하는 거 같은데 다큐에서는 어떻게 설명했는지 궁금하네요
정말 멋진 요 리뷰를 놓칠뻔했네요.
음주를 나름 사고안치고? 적당히 절제하며 즐기는 편입니다만,
이영화는 넘 맨정신으로 오전에 봐서... 나중엔 술한잔 걸치고 심야에 보고프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