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2021)
메두사라니...... 특수효과를 어떻게 하려고...... 잘못하면 그냥 어설픈 분장의 삼류영화가 되기 십상인데......
이런 걱정이 앞섰다. 거기에다가 저 만화틱한 포스터는 무언가? 대놓고 삼류도 못되는 사류라고 광고하는 듯하지 않은가?
역시 영화를 보니, 특수효과는 심형래 영구영화 수준이다. 이보다 어설픈 특수효과도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좋게 보았다.
그중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좀 과하게 말하면 무명시절의 제니퍼 로렌스를 연상시키는 메간 퍼비스 때문이다.
좀 미녀와는 거리가 먼 메간 포비스가 주인공역을 맡은 데는 이유가 있다. 미래에 더 중요한 영화에서 더 중요한 역으로 볼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만드는 여배우다.
저예산이니 이것저것 보여주지 않고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등장인물 열명 남짓 나오려나? 그리고 트레일러 서너대? 텐트 하나?
심형래 영구무비 수준의 분장? 이정도로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이 영화 주인공들은 창녀들이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포주들이다. 창녀들은 어느 숲 한가운데 트레일러에 산다. 싸구려 트레일러 한대에 창녀 하나씩 붙어산다.
이 트레일러가 생활공간 겸 사무실(?)이다. 밤이 되면 시들어빠진 중년남자들이 비틀거리면 창녀들을 찾아온다. 포주들은 교활하다. 사랑한다고 밀어를 속삭이다가,
갑자기 폭력을 행사하다가, 마약을 주고, 말로 자존심을 짓밟아 자기에게 종속되게 만들고 한다. 창녀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 트레일러를 나가서 어떻게 살아갈 지 모른다. 자신감도 없고 의지도 없다. 포주를 증오하면서도 그에게 의존하고, 포주의 폭력을 혐오하면서도 그 폭력에 굴복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자기를 경멸하면서도 마약에 의존한다.
은빛 트레일러 서너개가 있는 사방 십여 미터 정도 공터가 그들의 우주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잡담도 나누고 싸우기도 하고 고무튜브에 물을 받아 물놀이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겨우 사방 십여 미터 정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발레리라는 할머니가 이 창녀들을 총괄한다. 말하자면 매니져다. 겉으로는 창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그들에게 해결책을 상담해주는 듯하지만, 결국 그녀가 하는 일은 포주들을 위해 창녀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사실 메두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몇 안된다. 이 영화 대부분은 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이고 비참한 창녀들의 세계에 대해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선과 악의 이분법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포주는 폭력적이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인텔리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행동에 배려심까지 보여준다. 한마디로, "네가 밖에 나가서 뭐하겠냐? 이것도 네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약해빠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더러 "너는 약해빠졌잖아? 내가 그런 널 배려해줄께."하는 것이다. 그럼 궁극적으로 피해당하는 창녀들이 문제인 건가? 약해빠진 것은 그들이니까. 그런 틈을 파고드는 포주들은 오히려 배려심과 이해심까지 보여주지 않는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관계인 창녀들과 포주들은 참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이다. 이들은 현대사회의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영화 시작에서 칼리라는 주인공이 트레일러마을에 돌아온다.
트레일러마을을 떠나서 뭔가 새생활을 해보려 세상에 나갔는데, 결국 실패하고 돌아온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뭔가 억세고 똑똑하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은 의지가 약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다. 포주에게 대들지만 결국 그의 폭력에는 비명을 지르며 굴복한다. 마약을 복용하는 자기를 경멸하면서도 마약중독자다.
어느날 그녀는 트레일러를 떠나서 숲속에 있는 어느 텐트에 영업(?)을 하러가게된다. 그런데 섹X를 하는 중간에 남자는 뱀을 풀어놓고, 칼리는 넓적다리를 뱀에게 물리게 된다. 그 이후로, 그녀 몸에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특수효과래봤자 얼굴에 풀을 붙이는 것이나 눈동자에 싸구려 컨택트렌즈를 끼는 것이다. 하지만 메간 퍼비스의 박력있는 내면연기가
이 특수효과에 힘을 부여한다. 그녀는 점점 더 사람됨을 잃어간다. 뱀이 되어간다.
그녀는 외면이 뱀이 되어감에 따라 내면도 뱀이 되어간다.
그녀는 자기를 억압하는 것들에 살인충동으로 대항한다.
전의 그녀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그녀는 뱀이 되면서 자기 몸안에 가득찬 독으로
포주와 발레리를 죽인다. 그녀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뱀의 여왕 - 메두사로 등극한다.
그녀는 완벽하게 트레일러 파크 - 창녀들의 우주를 초월하는 것이다. 폭력과 위선으로 창녀들을 지배해온 계급사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엔딩장면에서 칼리가 웃음짓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초인적인 메두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캠피한 저예산영화 하나 보자고 생각했다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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