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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harvest (1942) 가장 로맨틱한 영화.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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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찍는 배우들조차, 이 촬영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랬다는 작품이다. 

내가 본 영화들 중 가장 로맨틱한 영화다.

 

1차세계대전 후, 군병원에 입원한 영국군 장교는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다. 

하지만, 정신병원에 누워있자니, 멀쩡한 사람도 정신줄을 놓을 만큼 열악한 곳이다. 

장교는 겁에 질려 밖으로 도망나온다. 말도 어눌하게 하고, 사회에 대한 모든것을 다 잊어버린 상태다.

그런 몸으로 거리에 뛰쳐나오니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다가 정신병원에서는 그를 잡으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런 그를 구해주는 여자가 폴라라는 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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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는 폴라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4살짜리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지하듯이. 

폴라는 장교를 버릴 수 없다. 연약한 장교에게 모성애도 느끼고 사랑도 느끼고 해서 말이다. 

장교를 버리고 댄서들과 함께 멀리 떠나느냐 아니면 자기 커리어를 버리고 장교와 남느냐 선택해야 할 때,

그녀는 장교와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둘이서 영국시골로 간다. 장교는 이제 많이 회복해서 보통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그는 자기가 웬일인지 문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저기 자기 글을 보내다가 마침내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받는다. 꿈에도 그리던 경제적 자립을 이룬 것이다. 당장 폴라에게 청혼한다. 자기를 위해 그동안 커리어를 희생하고,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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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은 결혼하고 폴라는 임신을 안다. 스미시 (폴라가 장교를 부르는 이름이다)는 행복하다. 

어머니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자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인 여자와 평생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아이까지 있으니. 지난 기억 필요 없다. 자기가 과거 어떤 사람이었든, 그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는 런던으로 출판사를 찾아간다. 그는 떠나기 전 폴라가 누워있는 침실을 한번 본다. 임신한 폴라는 예전처럼 스미시를 따라가 돌봐줄 수 없다. 그는 떠나면서 자기가 폴라와 함께 사는 오두막집을 본다. 꽃이 만발한 나뭇가지가 드리워져서 스미시는 불편하다고 잘라버리려는 것을, 폴라가 말려서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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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런던에 가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교통사고 때문에 자기 기억을 되찾는다. 그는 찰스라는 이름으로, 재벌가의 장남이었다. 

하지만, 폴라와 함께 했던 과거는 잊는다. 그는 자기 집을 찾아가서 대기업을 물려받은 다음,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여 대기업을 더 크게 키운다.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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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주 고전적인 멜로드라마다. 깔끔하다. 신파조나 이러이러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강요하려는 것이 없다.

단정하고 우아하게 드라마를 전개한다. 관객들은 이것을 보며 커다란 감정의 울림을 갖는다.

영화가 우아하다는 말은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찰스는 과거 기억을 하나도 못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안난다. 폴라는 남편이 갑자기 사라지자, 그 충격으로 유산을 하고 남편을 찾아 헤멘다. 

남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기에 대한 기억도 없는 남편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폴라는 비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 다음, 남편의 비서로 들어간다. 총명하고 야무진 그녀는, 비서를 넘어서서 남편에게 경영상 조언을 하기도 하는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웬일인지 결혼도 안하고 혼자 살던 찰스는, 폴라에게 청혼을 한다. 사랑해서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상 파트너로서 자기 곁에 있어 달라는 것이다. 자기가 경영하는 데, 아내가 없으니 불편한 일들이 많다. 그 일들을 해달라는 것이다. 야무진 폴라는 찰스가 바라는 것을 아주 훌륭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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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폴라와 찰스가 다시 맺어졌으니, 해피엔딩인가?

아니다. 폴라는, 남편이 자기와 함께 오두막에 살던 그 스미시로 다시 돌아와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기억을 잃고 자기를 타인처럼 대하는 남편 곁에서 아내로 살아가는 것이 더 괴롭다. 

찰스는 찰스대로, 훌륭히 자기를 위해 일해주는 아내가 고맙고 뭔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아내는 늘 우울하다. 자기가 엄청 화려한 보석목걸이를 사주었는데, 책상서랍 속에 넣어둔 싸구려 유리목걸이를 보며 눈물 짓는다. 

이렇게 폴라와 남편은 서로 하나이면서도 또한 어긋난 인생의 행로를 걷는다. 

아주 긴 시간이 이렇게 지난다. 

폴라는, 자기 과거를 잊고 주어진 현재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도 있으련만, 찰스와 오두막에서 행복하게 살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리워한다. 남편도 남편대로,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자기가 뭔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영영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자기가 꼭 지켜야 할 것을 영혼 한구석에 넣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오직 폴라만 그것을 열 수 있다. 하지만, 폴라가 곁에 내내 있는데도 기억 못하는 것이다. 

 

삼년을 함께 살고, 십년 동안 내내 서로 그리워한다. 바로 곁에 있으면서 말이다. 

폴라는 절망해서 남편을 떠나고자 한다. 남편은 폴라를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녀에게 뭔가 중요한 것이 있어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폴라는 남편과 함께 살던 그 오두막을 마지막으로 보러 간다. 그 다음 외국으로 가서 안 돌아올 생각이다. 

 

신파조가 없어서 아주 세련되게 느껴진다. 사실, 이런 고전멜로드라마와 비교하면, 오늘날 영화들이 신파조다.

오늘날 영화들이 절제되어 있고 세련되며, 과거 멜로드라마들이 신파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남편은 사업차 어떤 지방도시에 갔다가, 웬일인지 그곳이 낯설지 않음을 발견한다. 

어디 어디 가면 담배가게가 있었지 하고 가면, 진짜 담배가게가 거기 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 오두막으로 간다. 만발한 꽃가지가 문을 가리는 그런 오두막이다. 

웬지 낯설지 않다. 뭔가 그의 기억으로 서서히 돌아온다. 어렴풋하던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러자, 누가 뒤에 와 있다. "스미시" 그 사람이 자기를 부른다.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아는 자기 이름이다. 

자기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자 헌신적인 뒷받침을 해주었던 여자다. 그들은 내내 함께 있었으면서도, 십년만에 재회한다. 둘은 뜨겁게 포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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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감동적인 엔딩이다. 십년에 걸친 순애보다.

폴라가 중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그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다면 이런 결말은 없었다.

찰스가 중간에 자기 기억 속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다른 행복을 찾았다면 이런 결말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십년 동안 자기 사랑을 지킨다. 

그들은 십년 전 헤어졌던 그 모습 그대로 오두막에서 재회한다. 아주 아주 로맨틱하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감동의 폭풍이다. 이것은 직접 보아야 안다. 

로맨틱한 영화는 많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신파조를 걷어낸 깔끔한 세련됨을 가지고, 우아하게 감정을 한껏 불어넣는 로맨틱한 영화는 드물다.

"우아하다" "청순하다" "로맨틱하다" 이 말들이 딱 들어맞는 영화다. 

 

불필요하지만 들어간 부분도 없고, 필요한 데 빠진 부분도 없다. 영화적 구성이 아주 견고하다. 거장의 솜씨다. 

그리고, 로맨틱하지만 동시에 성숙한 이 두 사람의 배역을 완벽히 해내는 두 배우들 - 그리어 가슨과 

로저 콜먼이다. 그리어 가슨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번 탄 배우다. 대배우가 로맨틱한 연인역을 로맨틱하게 해내면 이런 연기가 나온다. 청순한 연인이자, 사랑스런 아내, 순애보를 지키는 연인, 헌신적인 보호자를 다 해내는 여자다.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것이 눈에 보인다. 톡 톡 튀는 청순함을 보여야 할 때는 톡 톡 튀게 연기하고, 헌신적인 여인을 연기할 때에는 부드럽고 자애롭게 연기하고, 아내를 연기할 때에는 사랑스럽게 연기한다. 팔색조다.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이들의 연기는 아주 절제되어 있고, 고전적이어서,

무엇인가를 과장하거나 직설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감정을 관객들 마음에 강하게 불러일으키니 놀라운 일이다. 

 

역대 최고의 멜로드라마가 뭐냐 묻는다면, 이 영화는 반드시 들어간다.

후대 멜로드라마에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두 사람이 오두막에서 마지막 재회하는 장면은, 로맨티시즘의 극치이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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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5

  • Sonatine
    Sonatine

  • 옥수동돌담길
  • 타미노커
    타미노커

  • 이상건
  • golgo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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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와... 할리퀸 기억상실 로맨스의 원조였네요.^^
10:55
24.07.08.
BillEvans 작성자
golgo
기억상실, 점 찍고 다른 사람으로 남편에게 돌아오기의 원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파조 영화가 아니라, 굉장히 담백하고 견고한 멜로드라마입니다.
10:56
24.07.08.
2등
고전 작품 소개 감사합니다. 이 영화가 클리셰의 원조격이군요
11:34
24.07.08.
BillEvans 작성자
이상건
현대 멜로드라마의 시조 격이죠. 하지만, 나중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담백하고 우아합니다. 처음 쓰여서 그런지, 기억상실이나 점찍고 나타나기도 아주 신선하며 효과적이구요.
11:43
24.07.08.
BillEvans 작성자
Sonatine
당장 배우들부터가 자신들이 찍는 이 영화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고 했답니다.
17:51
24.07.08.
이 글을 보고 바로 봤습니다. 진짜 로맨틱한 영화네요.
초반에 스미시를 대하는 폴라가 어찌나 다정한지. 감정을 계속 숨겨오던 폴라가 마지막에 활짝 웃을 때는 저도 벅차네요.
21:14
24.07.08.
BillEvans 작성자
dkxixid
80년 전 영화가 아직도 이런 힘을 갖고 있다니 참 놀랍죠. 이런 것을 걸작이라고 하죠.
21:28
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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