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1988) 이스트우드 감독의 탐미주의적 찰리 파커 영화
이스트우드 감독 제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이야기다. (이스트우드가 말하자 공손하게 귀 기울이는 포레스트 휘태커의 표정을 보라.)
찰리 파커는 20세기 최고의 재즈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인데 이스트우드 감독이 그의 질풍노도같은 짧은 생애를 불멸의 영화로 옮겨놓았다.
음악을 영화화할 때 어려운 것이 들리는 음악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은 빠지고 음악가만 다루기 십상이다.
아마데우스가 뛰어난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살리에리의 대사를 통해서 모짜르트 음악의 진수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해준다. 그것은
모짜르트의 일생도 살리에리의 일생도 다룬 것이 아닌, 모짜르트의 음악과 그 음악이 다른 사람의 일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떨까? 이 영화도 찰리 파커의 음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 파커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우며 늘 도취된 영혼 - 그것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이 영화는 찰리 파커의 일생을 시간 흐름대로 쫓아가는
전기영화가 아니다. 찰리 파커의 불안정한 내면과 그 내면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상처로서의 음악,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슬프고 괴롭게 했던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좀 지루하기도 하다. 무슨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찰리 파커의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영혼의 상처가 장장 161분 동안
계속되니까.
이 영화는 재즈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와닿지 않고 지루할 것 같다. 사건도 별로 없이 주인공이 몸부림치는
것만으로 161분이 채워지는 영화가 보기 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161분이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순간 순간은 계속 축적되어나가며 찰리 파커라는 복잡하고 우울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그래서 위대한 음악가였던 사람을 입체적으로 구축해나간다. 우리가 찰리 파커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거나 그의 음악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161분 동안 보면 그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던 일, 왜 그가 자기를 학대하고 파괴하여
30대에 요절하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그의 음악으로 어떻게 이어졌는가 이해할 것도 같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로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자기 파괴를 향한 오딧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불안감과 허무 열등감과 열정으로 자꾸 자기를 자기 파괴로 떠미는 사람에 대한 영화이다. 그것은 자기가 보면 비극이지만
남들이 보면 로맨틱이다.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 로맨틱한 영화이고 클린트이스트우드도 이 영화를 날것 그대로의 비극이 아니라
로맨틱하고 탐미주의적인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거의 내내 찰리 파커의 음악이 연주되어진다.
그의 아내와 찰리 파커의 관계가 이 영화의 주된 중심축이다. 아내는 찰리 파커를 이해하고 그의 음악이 어떻게 그의 상처 받은 영혼에서
분출해나오는지 이해한다. 그는 찰리 파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찰리 파커가 왜 자기를 학대하고 파괴해야 하는지도 잘 이해한다. 찰리 파커도
자신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들은 계속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한다. 하지만 아내가 찰리 파커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에도
아내는 찰리 파커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다. 찰리 파커는 혼자 가족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찰리 파커 몰래 전화로 아는 사람들을 통해 찰리 파커를 감독하고 돌봐주고 있었다.
이 영화의 끝은 찰리 파커의 자기 파괴, 파멸, 죽음이다. 다른 끝이 있을 수 없다.
그는 뉴 올리언스로 연주 여행을 갔다가 바에 앉아 자기를 지켜보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인은 찰리 파커 아내의 부탁으로 그를 감독하러 간 것이었다.
그 여인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 찰리 파커는 텔레비젼을 켜고 코메디를 시청한다.
코메디가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찰리 파코는 발작적으로 웃음을 웃는다. 웃으며 그의 시선은 밖을 향하지 않는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연기가 절묘한데,
그의 시선은 안으로 향한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해 웃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웃음은 점점 더 커져서 그의 폐가 폭발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까지 커진다. 웃으면서 동시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웃음이 마침내 멈추었을 때 그의 삶은 끝난다. 의사는 그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30대 젊은이가 내장은 60대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찰리 파커의 생애를 너무나 잘 요약하는 것 같다.
위플래쉬에서 플래쳐 교수가 찰리 파커를 만들겠다며 학생을 몰아붙인 것은 틀린 듯하다. 이런 일생을 연습을 통해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그것은 연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재능을 통해서도 아니고
그냥 운명인 것 같다. 찰리 파커가 되는 것은 운명이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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