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2002)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sf영화. 수작과 걸작 사이. 스포일러 있음.
우주 비행사 조지 클루니가
행성 솔라리스 주변에서 머물다가 연락두절이 되어 버린
우주선을 구조하러 갔다가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이런 종류 영화는 많다. 하지만, 이 영화 솔라리스는 아주 특이하다.
코지 클루니가 자는 동안, 행성 솔라리스는 조지 클루니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 조지 클루니가 마음 속으로 가장 간절히 원하는 인물을
만들어서 우주선으로 내보낸다. 이 인물은 외모나 물리적 실재성이나 정신이나 실제인물과 똑같다.
단, 그 인물의 기억은 조지 클루니가 갖고 있는 기억에 한정되어 있다. 결국 조지 클루니의 정신으로부터
만들어낸 것이니까.
조지 클루니의 과거가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내와 불안정한 행복을 유지하던 조지 클루니는
아내가 자기 몰래 임신중절을 한 사실을 알게 된다.
조지 클루니는 화가 나서 아내에게 소리치고 집을 나가 버린다. 당신이 나가면 자기는 아마 죽을 것 같다 하는
아내의 애원을 물리치고. 그러다가 후회하고 곧 집에 돌아가 보았지만,
아내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그는 평생을 두고 이것을 후회한다.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고독하게 산다.
그런데, 그가 우주선 안에서 하룻밤 자고나자 곁에 아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실제 아내와 똑같다. 단, 그녀의 기억은 조지 클루니가 갖고 있는 그녀의 기억이다.
조지 클루니는 믿을 수 없다. 그는 그녀를 속여 작은 우주선에 태운 다음 우주로 날려 버린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리 없으니까. 그렇다고 차마 제거해 버릴 수도 없고.
그날밤 조지 클루니는 잠을 못 이룬다. 밤새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곁에 아내가 다시 있다. 우주로 간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존재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 그는 이 존재를 아내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 존재도 자기가 조지 클루니의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주선 안의 다른 비행사들은, 조지 클루니더러 아내를 제거해 버리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 살아서
이 행성 솔라리스 주변으로 올 리 없으니까. 조지 클루니도 어제까지는 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내를 위해 자기 동료들과 싸운다. 그는 우주선 안에서 고립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조지 클루니의 아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자기는 실존하는 인간일까? 모든면에서 실존하는 인간과 똑같다. 심지어는 인격이나 자아조차도 똑같다.
단 유일한 차이점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기억은 조지 클루니로부터 왔다. 이런 나를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나?
인간은 자기가 겪은 시간의 연속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조지 클루니의 아내는 딱 조지 클루니를 만난 시점부터의 기억만 갖고 있다. 자기는 조지 클루니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솔라리스가 그렇게 디자인을 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닌가? 이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조지 클루니의 아내는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살하여 스스로를 소멸하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지 클루니는 그렇게 놓아둘 수 없다. 조지 클루니의 아내를 제거하려는 동료들과도 싸우고, 자살하려는 아내와도 싸우며 점점 더 고립되어져 간다.
아내가 살아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 존재가 아내라는 존재론적 근거를 찾으려 조지 클루니는 혼신을 다한다. 보통 인간이라고 해서, 내 아내와 다른가? 보통 인간의 기억이나 자아는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 형성되어지고 주어진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생도 모르고 사후세계도 모른다. 우리가 가지는 기억 또한 저 무한한 시간의 연속성 중에서 아주 작은 조각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는 감정 또한 무엇인가에 의해 그렇게 디자인된 것 아닌가? 우리들 또한 (그것이 행성 솔라리스가 아닐 지라도) 무엇인가의 의식의 투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주선 안의 동료들은 조지 클루니를 비난한다. 그는 객관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다.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중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중년여인동료에게, 조지 클루니는 "넌 누구를 죽였냐?"라고 묻는다.
네 어린 자식이냐? 부모님이냐? 자기가 자식이거나 부모라는 자아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를 소멸시킨 것이
살인인가 아닌가? 그러자, 그 강하게 조지 클루니를 위압하던 그녀는 찔끔한다.
우조선 안의 동료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인가 아니면 비관용적인 사람들인가? 그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지금 우주선과 이 안에 있는 동료들 또한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이 영화는쟝르적인 면에서는 SF에 들어갈 지 모르겠지만, 많이 연극적이다. 그들이 하는 대사 또한 구어체라기보다 철학적이다.
조지 클루니는 자기가 잠든 동안 아내가 가서 자살할까 봐 각성제를 먹으며 잠을 자지 않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의 정신은 피폐해진다. 아내는 자기를 놓아달라 애원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할 수 있냐 하고 질문한다. "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받으들일 수밖에 없어"
조지 클루니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살 생각이다.
솔라리스는 어쩌면 거대한 생명체일 지 모른다.
솔라리스가 자기 의식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영화는 애매모호하다.
솔라리스는 어떤 의식을 갖고 의도적으로 이런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떤 물리적 현상에 의해 이런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영화 내에서 보여지는 솔라리스는, 둘 중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신에 가까운 거대한 것이다.
조지 클루니가 마침내 잠이 든다. 그리고, 그동안 그의 아내는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우주선은 솔라리스의 중력에 의해 솔라리스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조지 클루니는 자기와 동료들 또한 솔라리스 안의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투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자시 자신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이 철학이 문화가
모두 솔라리스가 갖고 있는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투영이다.
조지 클루니는 솔라리스 안에서 아내와 다시 만난다. 그들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원이라는 것도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투영물이다.
타르콥스키가 1970년대 만든 솔라리스는 그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예술영화다. SF인 척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소더버그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전통적인 SF에 가깝다.
그리고, 전통적인 헐리우드 드라마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다.
철학적인 주제들이 관객들이 소화하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깊이가 1970년대 영화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쟝르적 재미와 흥미로운 전개, 훌륭한 연출, 배우들의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 등이
잘 결합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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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인데 그쪽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쥔공이 도착하기 전에 저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자극당해 미치거나 자살하고
솔라리스의 정체와 의도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채 쥔공은 씁쓸한 마음으로 지구로 돌아가죠.
(게다가 작품의 절반은 예전 탐사대가 솔라리스의 생태와 반응에 대해 관찰한 리포트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읽다 보면 내가 SF를 읽는건지 다큐를 보는건지(...))
클루니판의 결말은 처음 알았는데 어째 완전 딴 물건으로 바꿔놓은 느낌이네요.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조지 클루니 우주선이 솔라리스로 추락하는데, 조지 클루니는 갑자기 지구에서의 자기 생활로 돌아가 있습니다. 단조로운 예전 생활의 반복이죠. 그런데, 도마 위에서 칼을 썰다가 손가락을 베었는데, 보니까 상처가 나아져 있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솔라리스 안에서 자기 아내와 재회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솔라리스마저도 그보다 더 큰 어떤것의 투영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은 신의 안에서 영원을 만나는 인간의 종교적인 세계와 일치할 수도 있겠죠. 솔라리스조차도 신의 투영물이라고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타르콥스키판에서는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가 예전 오두막집에 돌아갑니다. 예전생활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그 오두막이 솔라리스 안에 작은 미니어쳐처럼 떠 있습니다. 이 오두막 자체가 솔라리스에 투영된 그 어떤 것이죠. 주인공의 예전 지구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것도 솔라리스 안에 있는 그 어떤것의 투영이었던 셈이죠.
원작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원작소설의 해석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큰 줄거리는 다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조지 클루니가 가기 전에 다른 동료들이 다 죽고 딱 한사람만 살아남아있었다는 설정이니까, 또 영화와 소설이 그렇게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솔라리스가 창조해낸 존재를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다 죽고, 그것을 냉정하게 뿌리쳤던 여자만 살아남습니다. 이것도 소설이랑 비슷한 것 같네요.
하지만, 솔라리스가 왜 이것들을 창조해냈을까 하는 문제는 열린 문제로 두고, 존재론적 고찰을 하였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