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39] 지알로의 부활과 현대적 재해석 - 디 에디터
디 에디터 - The Editor (2014)
지알로의 부활과 현대적 재해석
아담 브룩스와 매튜 케네디 감독의 <디 에디터>는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를 담은 영화입니다. 2013년에도 비슷한 영화가 나왔었죠. <버베리안 스튜디오>입니다. 두 영화 모두 공교롭게도 영화 스태프가 주인공입니다. <버베리안>에서는 음향 기술자, <디 에디터>는 편집자가 주인공이죠.
영화는 한때 유명한 편집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일을 하다 손가락 절단 사고로 지금은 몰락한 영화 편집자가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내용입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편집자가 수상한 것이죠.
<디 에디터>는 지알로 장르의 특징을 재현하고 비틀며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지알로 영화들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 초까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호러 스릴러 장르를 지칭합니다.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 에로틱한 요소, 과장된 살해 장면들의 극단적인 시각 효과와 폭력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죠. 이 장르를 대표하는 이들은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루치오 풀치 감독이 있습니다. 당연히 <디 에디터>는 이들 감독의 영화 장면들을 노골적으로 오마주하곤 합니다. <피와 검은 레이스> <딥 레드> <서스페리아> <비욘드> 등 다양하게 패러디 되고 있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해도 지알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재현입니다. 우선 지알로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을 하는데, 강렬한 원색의 사용이나 빈번한 인물의 줌인과 줌아웃, 살벌한 살인 장면들이죠. 특히 검은 장갑을 낀 살인마의 시점은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보너스로 붉은색 조명의 사용도 빠지지 않습니다.
특이할만한 점은 2014년도에 제작이 된 영화이지만, 굉장히 오래된 영화의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요. 촬영과 편집에서 의도적으로 지알로 영화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질감을 재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도적으로 필름 그레인을 추가하고 색감을 조절하여 빈티지한 룩을 만든 것이 인상적입니다. 불안정한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음악 역시 지알로 영화의 분위기를 따르면서 신디사이저 기반의 사운드트랙을 적극 활용합니다. 살인 장면에서 사용된 불협화음의 신디사이저 음악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지알로 영화의 정수를 재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지알로 영화들을 모방하면서 유머러스한 패러디 요소들을 곳곳에 녹여내고 있는 점입니다. 단순히 지알로 영화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풍자적으로 활용을 합니다. 어색한 더빙이나 톡톡 튀는 어이 상실의 스토리 전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손의 활용을 노골적으로 패러디를 하고 있죠. 영화의 주인공인 편집자가 손가락이 잘려서 장갑을 쓰는 것부터가 재미있는 유머입니다.
감독 아담 브룩스가 직접 연기한 편집자 레이는 지알로 영화의 전형적인 남성 주인공의 공식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과장된 표정 연기, 대사 치는 부분에서도 지알로 영화들의 영어 더빙의 진수를 연기하고 있죠. 형사 캐릭터 역시 지알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무능하고 우스꽝스러운 경찰의 모습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단순히 흉내만 내는 패러디에 머물지 않는 것은 지알로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존경의 마음이 영화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명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알로 영화들을 모르는 관객이 과연 감독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입니다. 장르에 대한 사전 지식과 관람 경험이 없다면 <디 에디터>는 굉장히 이상하고 엉뚱한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지알로 영화를 재현하기 때문에, 플롯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큰 장애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에디터>는 지알로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한때 전 세계 호러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던 지알로 장르를 현대적으로 부활시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추억의 영화로 기억되는 지알로 장르 특유의 과장되고 양식화된 서스펜스와 공포 묘사는 신선하게 와 닿는데, 이런 경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합니다. 장르 특성상 한국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영화이며, 해외 기준으로도 <디 에디터>는 대담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디 에디터>는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 영화 장르에 대한 메타적 비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지알로 영화의 클리셰와 놀림의 대상인 약점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매력과 가치를 재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덧붙임...
1.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편집실은 실제 필름 편집실을 세트로 재현한 것입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 이전의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필름 시대의 관객들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볼거리입니다.
2.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포스터들은 실제 지알로 영화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이는 영화의 세트 디자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줍니다.
3. 살해 장면의 특수 효과와 고어 장면들은 CG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특수 분장과 실제 효과들을 이용해서 연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70년대 영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군요.
4. 배우들의 립싱크가 의도적으로 어색하게 처리되었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는 지알로 영화들의 어색한 후시 더빙을 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5. 영화의 제목 <The Editor>는 지알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The... " 형식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예: "The Bird with the Crystal Plumage", "The Cat o' Nine Tails" 등)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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