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IMDb 트리비아 번역
IMDb에 정리된 트리비아들을 우리말로 옮겨봤습니다.
영화 보고 나서, 혹은 보기 전에 읽어두면 더 흥미롭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imdb.com/title/tt7160372/trivia/
※ 이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독일어 Interessengebiet)’는 아우슈비츠 주변 40㎢ 지역을 가리키기 위해 나치 제3제국이 사용했던 표현이다.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전 사령관이었던 루돌프 회스는 1947년 4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폴란드의 최고국가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은 회스는, 홀로코스트 당시에 자신이 수백만 명의 학살을 감독했던 바로 그 장소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입구 밖에 설치된 교수대에 매달렸다.
※ 폴란드 감독 테오도르 코툴라가 앞서 1977년에 프랑스 작가 로버트 메를의 책을 각색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사생활, 가족들의 삶을 다룬 영화(Aus einem deutschen Leben)를 만들었다.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쓴 각본은 영국 작가 마틴 에이미스 경(Sir)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 원작에 충실한 각색은 아니다. 도발적인 원작 책은 독자를 소외시키기 위해 인위적이며 코믹하기까지 한 문체를 사용, 가공의 ‘러브스토리’를 세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또 에이미스는 실제 회스 가족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캐릭터들을 그렸지만, 실존 인물들과는 다른 이름들을 사용했다.
※ 원작자 마틴 에이미스 경은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날인 2023년 5월 19일에 사망했다.
※ 이 영화는 2021년 여름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부근에서 촬영했다. 제작진은 회스가 실제로 살았던 집에서 찍고 싶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았고, 수용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 내부나 주변에서는 어떤 공사 작업도 할 수 없었다. 제작진은 차선책을 찾다가 수용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던 버려진 건물을 찾았고, 그곳을 수리하여 영화에 맞게 개조할 수 있었다. 2021년 4월부터 나무 등을 심으며 촬영에 필요한 정원을 만들었다.
※ 회스 가족이 살았던 집을 세트로 재현해 촬영했지만, 지하실 장면만큼은 실제 회스 가족의 집에 있던 지하실에서 찍었다.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회스 가족의 집과 정원 세트에 최대 5대의 고정 카메라를 설치하여 여러 장면들을 찍었는데, 배우들은 자신들을 클로즈업으로 찍는지, 아니면 와이드 샷으로 찍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배우들은 장면에 완전히 몰입하여 사실적인 환경에서 작업하는 걸 즐겼다.
※ 촬영 중 최대 10대의 카메라가 한꺼번에 동원된 경우도 있었고, 사운드 디자이너 조니 번은 약 30대의 마이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 여러 대의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 놓고 찍은 파격적인 촬영으로 인해, 제작진은 편집 작업을 진행할 때 총 800시간이 넘는 원본 영상을 얻게 됐다.
※ 이 영화에 맞는, 거리를 둔 느낌과 장면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대부분 광각으로 촬영했다.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느낌이 들도록 컬러 그레이딩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거의 모든 장면을 자연광으로 촬영하거나, 야간 장면처럼 자연광 촬영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는 등 영화적 트릭은 최소화했다.
※ 작곡가 미카 레비가 이 영화를 위해 훨씬 긴 분량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했지만,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영화의 대부분을 음악 없이 진행시키기로 결정했고, 대신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지는 스크린 밖의 공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운드 디자인을 이용하기로 했다.
※ 조나단 글레이저는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잔학 행위가 보여선 안 되고, 소리로 들리기만을 원했다. 그는 이 영화의 사운드를 “또 다른 영화”, “그 자체로 필름”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위해 사운드 디자이너 조니 번은 아우슈비츠의 관련 사건들, 목격자의 증언, 수용소의 대형 지도를 포함한 600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작성하여 소리가 들리는 거리와 울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 조니 번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 1년 동안, 공장 기계 소리, 화장터, 용광로, 장화 소리, 시대 고증에 맞춘 총소리, 기차 소음, 개 짖는 소리, 사람이 고통을 받는 소리 등을 포함한 방대한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그는 촬영이 시작되고 후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라이브러리 작업을 계속했다. 당시 아우슈비츠에 새로 도착한 수감자들 중 상당수가 프랑스인들이어서 조니 번은 2022년 파리에서 벌어진 시위, 폭동 중에 나온 사람들의 외침도 따왔다. 술에 취한 아우슈비츠 경비병의 목소리는 함부르크의 유흥가 리퍼반에서 녹음했다.
※ 제목이 뜨고 난 뒤 2분 15초 동안 검은 화면만 나온다. 그리고 20초 동안 화면이 빨간색으로 바뀐다.
※ 야외 장면에서 (스크린 상에서 보이지는 않는) 오토바이 엔진의 회전 소리가 멀리서 끊임없이 들리는데, 이것은 그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실제로 들렸던 소음이다.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는 수용소에서 들리는 비명과 총소리를 묻히게 하려고 사람을 고용해 오토바이 엔진을 계속 회전시키게 했다.
※ 영화에 언급되는 (시체 소각용) 용광로 설비는 1858년 이를 발명한 엔지니어 프리드리히 에두아르트 호프만의 이름을 딴 타원형의 호프만식 가마다. 이 설비는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1800년대 후반에 다른 여러 나라로 확산될 정도로 벽돌 생산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호프만식 가마는 탄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연료를 써서 쉴 새 없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 배우 크리스티안 프리델(루돌프 회스 역)과 잔드라 휠러(헤트비히 역)는 구 동독 출신으로, 동독 정권이 무너질 때 각각 10살과 11살이었다.
※ 배우 잔드라 휠러는 배우들이 나치 캐릭터를 맡으면 언제나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연기하기 때문에 절대 나치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헤트비히 회스 역할이 매력적이지 않다며 잔드라 휠러를 설득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겐 도전적인 역할이었다.
※ 헤트비히 회스가 모피 코트를 ‘캐나다’에서 가져왔다고 말하자, 그녀의 친구들이 캐나다(국가 Canada)산인 줄 착각하고, 헤트비히는 비웃는다. 헤트비히가 말한 캐나다(Kanada)는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에게서 압수한 방대한 물품들을 모아둔 창고의 명칭이었다.
※ 영화 속 회스 가족의 개는 배우 잔드라 휠러의 실제 애완견이었다.
※ 영화 속 어린 폴란드 소녀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사전 조사 중에 만난 알렉산드라라는 여성한테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다. 12살 때 폴란드 저항 조직의 일원이었던 알렉산드라는 굶주린 수감자들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수용소 근처에 가 몰래 사과를 숨겨두었다. 영화에서처럼 그녀는 한 수감자가 작곡한 음악도 발견했다.
※ 굶주린 수감자들을 위해 몰래 사과들을 숨겨뒀던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과 만났을 때 90세였고, 감독과 만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 소녀가 입은 옷과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실제 알렉산드라의 것이었다.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2023년 베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한밤중에 수감자들을 위해 사과 등 음식을 남긴 어린 소녀 캐릭터의 실제 인물과 열화상 카메라로 그 장면을 찍은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 속 소녀의 실제 모델은 제가 만났을 때 연세가 90이셨던 알렉산드라 어르신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가서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는 분명 모든 것들이 칠흑같이 어두웠죠. 그 모든 것들에서 비롯된 공포는 생각만 해도 무척 답답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 온통 어둡기만 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친구이자 공동 프로듀서 중 한 사람인 바텍 레인스키가 당시 그 지역에 살았고 지금도 생존한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폴란드의 지하조직이었던 AK의 어린이 게릴라 대원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록을 남기고 수용소 안팎에서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어서 의심을 덜 받았죠. 저는 알렉산드라 어르신과 만났는데, 그분이 영화에서 그려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소녀 시절에 그분은 탄광 쪽에서 일했는데, 탄광 안까지 들어가진 않으셨어요. 그 지역에서 살았던 폴란드 출신이셨는데, 유대인은 아니었죠. 그분은 수감자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습니다. 그분에 했던 일 중 하나가 낮보다는 덜 위험한 밤에 건설 현장에 가서 음식을 남겨두는 것이었죠...”
“우리는 21세기의 렌즈로 보는 영화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가급적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촬영이 최대한 선명하고 꾸밈없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영화용 조명을 쓰지 않고, 우리가 설정한 한계 내에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간) 장면이 나왔습니다. 1943년, 낮에는 강제 노동이 이루어지는 건설 현장에 한밤중 한 소녀가 나타납니다. 조명을 쓰지 않는다면 그 소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밝게 비출 주변 조명도 없습니다.”
“(촬영감독) 우카시 잘과 저는 어떻게 해야 소녀를 보이게 할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죠.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열화상 카메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퀀스를 찍기 위한 기술을 얻기 위한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장면은 빛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열로 기록된 것이죠. 그 시퀀스가 나오기 전까지 관객이 보는 영상들과는 상당히 극적인 이미지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21세기의 도구, 21세기의 렌즈라는 도그마에 대한 동일한 의도, 동일한 약속을 담아서 표현한 것입니다. 현재형으로 말이죠. 미학은 그 근본을 따르는데, 열로 찍었다는 팩트에는 아주 아름답고 시적인 무언가가 있고, 소녀는 빛을 발합니다. 그것은 그녀의 사고방식을 에너지로서 강화합니다.”
※ 회스 가족의 막내아들이 북을 치는 장면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양철북>(1979)을 풍자적으로 오마주한 것이다.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찍은 첫 비 영어 영화다.
※ 비 영어 영화로서 <추락의 해부>와 함께 2024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에 두 편의 비 영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두 작품 모두 아카데미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잔드라 휠러가 두 영화 모두에 출연했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내 영화(쉰들러 리스트) 이후 내가 본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호평했다.
이하 스포일러
※ 영화의 엔딩에서 홀로코스트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루돌프 회스가 공포에 질려서 구토하려 하지만 결국 토해내지 못한다. 이 결말은 인도네시아의 잔인한 인종 학살을 자행했던 지휘자들의 모습을 다룬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2012)의 결말과 동일하다.
※ 회스 저택의 정원사 역을 맡은 Justyna Szklarska에 따르면 그녀가 빨던 부츠에 묻은 피는 진짜 피였다고 한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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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 이스라엘 사태 때문에 두 감독이 대립하는 게 비극이네요.
글 정독 후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누구 피인지.. 그 얘긴 안 나와 있어요.^^
조나단 글레이저의 언더더스킨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영화를 볼때 줄무늬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랑 사울의 아들이 생각났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