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누가 야만인인가? - 바바리안
바바리안 - Barbarian (2022)
누가 야만인인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알아보곤 합니다. 현지의 가정집을 빌려 숙박을 하면 호텔과는 다른 현지인의 집을 구경하며 생활해보는 체험의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늘 좋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죠. 이따금씩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집주인과의 트러블이 생기곤 합니다. 만약 숙소에 도착했는데 같은 날짜에 다른 사람과 이중 예약이 되어서 누군가가 먼저 와 있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겁니다. 집주인과는 연락이 되지 않고, 해는 지고 비까지 내린다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동네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된 동네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바리안>은 그런 상황에 처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얼마나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인물은 디트로이트로 면접을 보러온 '테스'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입니다. 테스는 앞서 설명한 이중 예약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졌는데, 먼저 집을 차지한 사람은 '키스'라는 이름의 남자입니다. 키스는 동네가 위험하니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고, 테스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테스는 현실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을 모두 실행으로 옮깁니다. 위험한 동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 혼자 있는 집으로 들어가고, 남자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기도 뭣해 술도 같이 마시죠. 또 위험한 동네이니 빨리 떠나라는 면접관의 충고도 그냥 흘려듣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비밀 통로... 테스는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하면서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안을 들여다보고, 기회가 생겼음에도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바바리안>의 무대인 '브라이트무어'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지역으로 실제 2010년 전후로 많은 주택이 철거되고 폐허가 된 곳이라고 합니다. 나날이 범죄율이 증가되면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되었다는데, 영화는 그런 상황을 활용해서 과거 여자를 납치해 지하에 가둬두고 강간을 일삼은 프랭크라는 소름끼치는 남자의 이야기를 끼워 넣습니다. 그로 인해 <바바리안>은 테스와 키스가 주인공인 현재의 이야기를 담은 1장, 끔찍한 범죄자 프랭크가 등장하는 80년대 배경이 2장, 마지막으로 다시 현재로 돌아와 집주인 AJ가 테스와 엮이는 3장으로 구성이 됩니다.
가장 흥미롭고 무서운 것은 1장으로 호러 영화가 갖추어야할 대부분의 것들을 영리하게 풀어내면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1장의 교훈은 '자신의 직감을 믿고 행동하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테스는 집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위험을 감지하지만, 스스로 들어가고, 지하실 통로에서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본능적인 감각을 무시합니다. 더 심한 건 그 무서운 곳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흔히 말하는 발암 캐릭터의 전형 같지만, <바바리안>은 그걸 주제로 만든 이야기이니 어쩌겠어요. 관객은 그 상황을 가슴을 조이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1장의 이야기와 사건은 훌륭합니다.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지적인 연출과 긴장, 공포감 조성에 크게 기여하는 사운드트랙의 앙상블이 뛰어납니다. 촬영과 조명의 테크닉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죠.
2장으로 넘어가면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은 마을과 집이 나오는데, 테스가 머문 바로 그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프랭크란 인물을 따라가면서 그의 일상을 엿보게 됩니다. 1장의 이야기가 길어서, 갑작스러운 시대 변화와 인물 교체가 당황스럽게 느껴지지만, 테스가 발견한 지하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갑자기 나타난 괴물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를 프랭크를 통해 짐작하게 됩니다. 사실 2장의 이야기는 굉장히 끔찍한 사건이 오래 시간 벌어지는 것인데, 감독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길 거부합니다. 이 정도로만 보여줄 테니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1장과 연결을 잘 시켜 보라는 식 입니다. 2장에서 1장까지의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억지스러운 설정일 수도 있는데, 그 상황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상상하는 그 사건을 비주얼로 보게 되면 정말 기분이 더러워 질 테니까요.
3장으로 넘어가면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와 집주인인 AJ가 등장합니다. 그는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는데,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부인합니다. 법적인 소송 때문에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AJ는 자신이 소유한 집을 정리하려고 들립니다. 아무도 없어야 할 집안에선 누군가가 들어와서 생활한 흔적이 있고, AJ는 많은 위험 요소들이 집안에 널려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지하실에 가서 테스와 마주칩니다. 3장에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데, 테스와 AJ의 상반된 성격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테스는 경계심이 많음에도 스스로 사지로 뛰어들었고, AJ는 양심이 결여된 인물입니다. 최후의 순간, 두 사람은 도덕적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바바리안>은 최근 호러 영화들답지 않게 호흡이 느린 영화입니다. 하지만 긴장감이 넘치며 무섭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지만,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긴장과 공포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이 아쉬운데요. 이야기의 성격상 비밀이 모두 밝혀진 후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죠. 충격과 공포의 존재가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고, 진짜 무서운 것은 그 존재가 아니라 다른 것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바바리안>은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면서, 인간성에 대한 생각의 여지를 남기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과연 누가 야만인인가?
덧붙임...
1. 영화 제목 <Barbarian>의 제목이 흥미로운데요. 테스가 이용하는 '에어비앤비(Airbnb)'의 글자만 가지고 구성이 되었습니다.
2. 키스를 연기한 '빌 스카스가드'는 <그것>에서 무시무시한 광대 페니와이즈를 연기한 배우입니다. 키스는 자신을 경계하는 테스에게, “내가 괴물처럼 보이냐?”라고 말하는데... 페니와이즈가 떠올라 웃음이 터진 명장면입니다.
3. AJ의 성폭행 관련 기사가 실린 할리우드 리포터가 잠깐 화면에 나오는데, 이 기사를 작성한 인물은 실제 할리우드 리포터의 기자입니다. 하비 와인스틴 사건을 다루기도 했고, 쇼비지니스 업계의 폭로 기사로 유명한 기자라고 하는군요.
4. 엔딩에 삽입된 노래 'Be My Baby'는 <바바리안>이 다루는 이야기와 굉장히 잘 어울려서 탁월한 선곡인 것 같습니다.
5. AJ를 연기한 저스틴 롱은 후반부 눈알이 뽑히는데, 그는 <지퍼스 크리퍼스>에서 연기한 캐릭터에서도 두 눈알을 잃은 전력이 있습니다.
다크맨
추천인 7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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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 호러 소개 감사드립니다. 넷플릭스에 있던데 바로 봐야겠습니다. ㅋ
덧붙여주신 비하인드는 몰랐던 걸 알게되서 재밌네요😁
디트로이트가 무슨 마굴처럼 묘사된 게 무시무시했네요.^^
아래 영상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