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리뷰 - 우리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빛을 보았고, 행복을 찾았다. [약스포, 스압 주의]
이번에도 어김없이 리뷰를 썼습니다.
이번엔 진짜 길어요,, 예,,
그래서 이번에도 단문리뷰를 최하단에 남겨두었으니 필요하신 경우 아래 부분만 봐주셔도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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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행복'을 안겨주는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에 톱스타 아이유(이지은)과 이주영까지. 단순한 단어들의 나열에도 과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한다.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대단한 작품을 통해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라는 소식만으로도 너무도 놀라웠다. 어떠한 부분에서도 기대하지 않을 포인트들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은2022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 기대치의 최고조를 찍고 있다. 정말 수많은 취재진들의 플래시를 받고 있는 작품, <브로커>에 대해 꽤나 주관적인 내 머릿 속을 떠다니는 미천한 생각들을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 풀어보려 한다.
#이지은
이 영화는 ‘이지은’으로 시작해 ‘이지은’이 이끌어가는 영화다. 첫 등장과 힘준 듯한 장면들에는 어김없이 그의 표정이, 그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가 맡은 ‘소영’이라는 인물이 모든 일들의 중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송강호 배우가 본인은 겨우 ‘조연’에 불과하다 라고 말한 것이이해가 될 정도로 이 영화의 중심은 분명 ‘소영’이다.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의 드라마를 통해 연기 경력을 쌓아온 그녀는 그 모습을 온연히 발휘한다. 다만, 그 모습을 그대로 발휘한다는 것이 아쉬운 지점이다. 드라마만을 해왔던 그녀이기에 전체적으로 ‘영화’의 톤을 잡지 못하는 듯 보였다. 영화의 초반, 그는 소영이기보단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었고, 극이 진행될수록 약간의 ‘만월’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이 해당작품에서처럼 해달라고 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반엔 이미 내가 아는 모습의 인물이 다른 이름과복장으로 다른 곳에 와있는 괴리감이 들었다. 극이 시작하고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인상적인 장면은 ‘열심히연습한 듯한 욕’과 ‘본업이 드러나는 자장가’뿐이었을 정도였다. 물론,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캐릭터가구체화되었기 때문일지, 캐릭터의 입체감이 표면으로 드러나서일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그에 적응이 되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를 정말 시간순으로 찍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조금씩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게 보이고, 다행히도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맡은 ‘소영’은 정말 높은 차원의 입체감을 가진 캐릭터다. 물론, 이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러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면을 ‘자주’ 오가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엄청난 설득력을 보여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한 달음에 ‘주연’이 다다르지는 못한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겨우 첫 상업영화에 데뷔한 ‘신인영화배우’다. 그간유수의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본업은 물론 다양한 것을 잘하는 멀티엔터테이너이지만 대배우가 내준 ‘주연’자리를 단번에 꿰차지는 못했다. 물론, 올해 말 수많은 시상식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한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그녀에겐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하다. 나 역시 아티스트의열렬한 팬으로서 지속적으로 그를 응원하고, 그의 행보에 계속 주목하며 함께할 것이다. 그래야할 ‘배우’인것이 사실이기에.
#고레에다히로카즈
필자는 영화팬들이 사랑하는 감독께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에 격앙되었던 한 사람이었다. 물론캐스팅에서도 놀랐지만 어디까지나 외국감독이 한국에 와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고, 그가 거장이었기에 더욱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의 전작들은 늘 거리감이 주요했다. 칸에서 얘기했던 스토리텔링적 결점은 사실 그 전작들에서도 있었던 포인트라 신경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브로커>에서 그는 정말 많은 것으로부터 거리 조절을 해야했다.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거리,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 등 너무도 많았다. (어쩌면 투자자, 자본과의 거리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꽤나 그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 과정이 전부 영화 속에도 담겨있다.
먼저, 그간의 작품과는 다르게 <브로커>는 조금 더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가 짧아졌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차갑다고도 보일 법했던 전작의 냉소적 시각에 비해서는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조명했고 관망하는 시선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물론, 거장에 대한 이해가 짧은 나만이 느꼈을 수도 있는부분이기도 한다.
둘째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거리다. 아무래도 그 중심엔 ‘언어’가 있다. 아무리 긴밀한 소통을 해왔다하더라도 문화와 정서가 다른 두 국가 사이에서 완전한 소통은 어렵다. (같은 한국인끼리도 소통이 어려운 경우도더러 있지 않나.) 일본의 감성으로 작성되었을 일본어 각본은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꽤나 익숙치 않고, 혹 누군가에게는 오그라든다거나 하는 표현이 되기도 했다. 물론, 필자에게는 견딜만했지만 일본어가 들리고 자막으로 읽는 형태보다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영화적 언어’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연구였을지도 모르지만) 힘을 주고 만든 장면과 뺀 부분과의 차이가 꽤나 드러났고, 그 어떤 그의 영화보다 많이 등장하는 유머코드는 1절을 넘어 4절까지 하다 몰입을 깨기도 했다. 또한, 배우들이 그동안 자주 보여줬던 모습들이 있었기에 배우들이 하는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거리감(물론, 배두나 배우는 원래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감독과 결이 참 잘 맞는 좋은 배우다.) 역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거리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거리 조절에서 얻은 것들도 분명 있다. 최근 한국 영화산업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연출’과 ‘즐거움’이라는 요소들이 분명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가 재밌게 본 변성현 감독의 영화 <킹메이커> 역시 조금 알아차리기 쉬운 직관적 연출법을 통해 일반 관객들에게도 ‘연출자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영화에 참여시켰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영화의 명암대비는 이번 영화에서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분명 효과적이었다고 보인다. ‘즐거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위로와 행복감이 잦게 노출되면서 그들의 흘린 것의 무게를 더했고, 코시국을 버텨낸 수많은 관객들에게‘위로’의 메시지는 힐링을 안겨다 주기도 했다.
그렇게 여전히 그의 영화였던 <브로커>는 이러한 거리 조절의 과정에서 결국 양쪽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그 둘을 완벽히 어우러지게 하기보다는 ‘어중간’한 위치에 놓였다. 그의 작품들 중 아쉬운 작품으로, 좋은데아쉬운 작품으로 남았다. (가만 보면, 칸 영화제 비평들이 대체로 정말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것이 증명된다.)
#(유사)가족 - 이 부분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면 읽지 않으시길 권장드립니다.
이상한 가족이다. 애초에 가족도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한 가족이다.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엮이고, 위로를 주고 받고, 따로 또 같이 나아간다. 그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소영의 미래를 위해, 그들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파는 ‘큐피드’가 된다. 그건 누군가에게 ‘브로커’로 비춰지지만그들이 정말 ‘브로커’가맞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건강이야 ‘물건’의 상태를 소중히 하는 ‘브로커’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물티슈 하나에 화를 내고, 아이의 턱 위치나 분유 온도에도 짜증을 내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의 ‘가족’이다. 누군가의 배경, 인성,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내 주변 현 시대의 ‘가족’이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쉬이 찾아보기 어려울 수있는 것이다. 그럼 대체 그들은 무엇인가. 과연 ‘소영’에게는 강요가 정말 없었을까, 그들은 정말 ‘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한 것은 영락없는 그 모습이었고, 누구보다 행복해보였고, 누구보다 위로받았다. 이부분은 더 자세한 부분을 남기고 싶지 않다. 영화를 통해 관객 스스로가 이에 대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바꿔갈것이기에, 그러한 부분에서는 연출자가 의도한 바를 지켜드리고, 관객의 권리를 보장하고 싶다.
#극장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다시 돌아온 영화관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타이틀'이 당당하게 거론되는 영화가 극장에 걸려있고, 앞으로 수많은 한국영화를 비롯한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 대혼돈의 6월에 과연 <브로커>를 과연 극장에서 봐야할까. 글의 끝무렵이 되어서야 이에 대한 가벼운 제시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업로드 전 가볍게 첨언한다.
<브로커>는 한없이 어둡게 시작한다. 그 외에도 어두운 장면들이 꽤나 많다. 칠흙같은 어둠은 웬만한 화질의 기기로 볼 때는 장면 속의 요소들이 명확히 구분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아무도 없는 곳>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인 것은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빛과 어둠이 꽤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만큼 자주, 그리고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또한, 고레에다 감독님의 영화이기에 대체로 <브로커> 역시 한 겹의 필터가 씌워진 듯 묘한 색감이 드러난다. 물론, 다른 일본 영화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 치고는 꽤나 그쪽의 색감에 가깝다. 아무래도 그러한 색감적 묘사는 극장의 고해상도 스크린이 아니라면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화면의 명암 등을 제외하더라도 극장관람을 추천하는 이유를 꼽자면 그건 분명히 ‘음향’이다. 우선 영화를 보러가기 전 읽은 한 언론 관계자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자면, ‘정재일, 그는 미쳤다.’ 영화 속 음악은 영화의분위기를 잘 받쳐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음악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형성해낸다. 감정선이 중요한 영화이기에 정재일의 음악은 최고의 선택이라 봐도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전반적으로 대사의 톤은 잔잔한 편이고, 종종 주변의 빗소리나 다양한 형태의 소음들에 겹쳐질 때도 많다. 그렇기에 영상의 소리가 해상력 좋게 완벽히 분리되기보다는 뭉쳐져 들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연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때문에 평소라면 믿음직했을 당신의 에어팟 혹은 버즈가 이 영화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 영화의 분위기와 대사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온연하게 느끼고 싶다면 극장을 찾는 것을 권장한다.
최근에 작성한 그 어떤 영화보다 길게 작성한 리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많은 익무인들이 읽지는 못할 정도의 분량인 듯 싶지만, 길게 적어내려가고 싶었다. 작품에 대해 너무 많은 하입이 있었고, 수많은 기대와 각광을 받았기에 짧은 글로 생각을 담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브로커>는 나를 울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위로받았고, 행복을 맛봤다. 분명 엄청난 마스터피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시간이 아깝다거나 할 정도의 영화도 아니고, 분명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거장과 배우들에게는 색다른 작업이었을 것이고, 도전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이 남겨둔 ‘상실’과 ‘빈 자리’도 분명 있었지만 의미가 있었고 기억되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누군가는 불을 끄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낼 수 있는 정도의 작품이기에,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그 위에 쌓이고 더 많은 어둠과 빛을 건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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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리뷰]
-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을 바라보았고, 그 속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았다.
- 거장과 배우들의 만남 속 아쉬움과 행복감을 동시에 맛보다.
- 어중간한 위치에서 ‘씻겨내려’가거나 ‘지켜진’ 고레에다의 도전
- 이상한 게 뭐 어때서, 누가 이상한건가, 뭐가 이상한 건데, 결국 중요한 건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