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nocents (1963) 진지하게 역대최고 공포영화가 아닐까? 스포일러 있음.
부분부분 허술한 데가 보이거나 혹은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곳이 있지만
굉장히 파워풀하거나 혹은 굉장히 독창적이거나 해서 걸작인 그런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더 이노센츠는 그냥 그런 것 없이 완벽한 걸작이다.
대가급 배우 데보라 카 혼자서 이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데보라 카가 그저 이쁘고 요조숙녀같은 배우라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를 보라. 엄청나게 파워풀한 사이코 연기를 보여준다. 눈을 까뒤집고 소리소리지르며
사람을 극단적인 공포로 죽음에까지 몰아넣는 연기를 아주 실감나게 보여준다.
무대는 조용한 시골대저택, 등장인물들도 모두 조용한 사람들, 심지어는 유령(?)도 조용하고 사고치지 않는다.
그런데 데보라 카 혼자 날뛰니 그 영화적 효과가 아주 강렬하다.
원작은 소설 나사의 회전이다. 유령이 나오는 고딕소설인지 그냥 심리스릴러물인지 아리송한 소설이다.
데보라 카는 잘 생긴 바람둥이 중년으로부터 시골에 내려가 조카들을 보살펴달라는 가정교사직을 맡는다. 좀 소녀같고
명랑하고 티 없는 여자가 데보라 카다.
하지만 데보라 카는 시골에 내려가 충격을 받는다. 퀸트라고 하는 폭력배 불한당이 그 저택에서 마부로 일하며
약한 사람들 - 늙은 유모, 어린 조카들 마일스와 플로라 그리고 가정교사를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다. 이것도 다 삼촌이
자기 자유분방한 삶을 사느라 가족들을 돌보지 않은 탓이다. 마일스와 플로라는 퀸트의 영향을 아주 심하게 받아 그를 동경하고
가정교사는 퀸트에게 육체적으로 종속되어 섹X에 탐닉하다가 자살한다. 퀸트도 죽는다.
그러니까 퀸트도 가정교사도 죽고 이들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는 그런 상태에서 데보라 카가 그 저택에 간 것이다.
티없고 소녀같던 데보라 카는 이런 사건들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밤마다 악몽을 꾼다.
강렬하게 자기를 지배하려는 성욕과 자기를 방어하려는 처녀성이 충돌을 한다. 이것이 퀸트와 가정교사의 유령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그녀를 괴롭힌다. 나는 영화 처음에는 디 이노센츠가 아이들을 가리키는 줄 알았는데, 이것은 데보라 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순결성을 지키려고 발버둥친다. 하지만 이런 발버둥이 사이코적인 수준까지 발전하는 것은
데보라 카가 이미 성욕에 지배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 유령이 나오는가? 분명 퀸트와 가정교사의 유령이 나타나는 아주 무서운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유령을 본 사람은 데보라 카 혼자뿐이다. 그리고 그 데보라 카는 약간 사이코 같다. 그리고 데보라 카가 본 유령들은
섹X와 관련이 있다. 비열하고 역겨운 퀸트 그리고 그에게 매혹당해 섹X에 빠졌다가 비참하게 자살한 가정교사 - 다 순수한 성격의
데보라 카의 공포를 반영한다.
퀸트의 유령(?)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 데보라 카는 유령을 만나 공포에 질린 것일까 아니면
비열한 퀸트의 육체적 힘에 자기가 짓눌려서 자살한 가정교사처럼 될까 봐 겁에 질린 것일까?
데보라 카는 아이들이 퀸트와 가정교사의 유령에 지배당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들끼리 아마 섹X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욕도 하고 그러는 것을 보고 말이다. 나이든 유모가 "아무리 아이들은 다 그런 거다" "자라면서 이런 것들을 다 잊고 성장하게 되는 거다"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사랑에 넘치고 책임감 강한 데보라 카는 아이들의 순수를 되찾아주리라 결심한다.
그리고 사이코적이고 폭력적인 데보라 카의 질주가 시작된다.
정말 유령이 등장해서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을까? 영화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만, 이 장면은 데보라 카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선을 카메라가 재현한 것이다. 유령이 등장한다고 보아도 되고, 그냥 데보라 카가 혼자 망상에 빠진 것이라 보아도 말이 된다.
하지만 나이든 유모가 데보라 카에게 자신의 예지를 들려주는 장면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저기 저 유령을 봐라. 저 유령의 이름을 대. 그럼 너를 자유로와질 수 있어."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클라이맥스가 시작된다. 데보라 카는 억지로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마일즈와 단둘이 남는다.
데보라 카는 마일즈를 폭력적으로 몰아붙이며 "네가 퀸트에게 홀려있다는 것을 자백해라. 그러면 너는 유령이 떠나가고 순수성을
되찾을 수 있다."하고 강요한다. 그렇게 자백하면 퀸트유령이 떠난다는 근거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데보라 카는 이런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마일즈는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욕하다가 결국 폭발하고 만다.
"퀸트가 어디 있어? 이 미친 X. 퀸트가 어디 있어? 어디? 어디?" 하고 소리친다.
이것은 마일즈가 퀸트에 홀려서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데보라 카 생각이 그렇다)
아니면 마일즈가 진짜로 퀸트가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진짜 퀸트 유령이 없는데 데보라 카가 마일즈를 몰아붙이는 것이라면
마일즈 입장에서 이런 공포가 없다.
그리고 마일즈는 쓰러져 죽는다. 퀸트 유령이 마일즈를 죽인 것일까 아니면
데보라 카가 마일즈를 죽인 것일까?
그러자 데보라 카는 마일즈의 작은 입술에 자기 입술을 문지른다. 가볍게 쪽 대는 것이 아니라 좀 끈적끈적하게
뽀뽀를 한다. 이거 좀 의도적인 것 같다. 데보라 카는 마일즈의 순수성을 지켜냈다 (그리고 자기 강박관념도 만족시키고).
하지만 마일즈는 죽었다.
굉장히 잘 만든 공포영화다. 굉장히 많은 주제들이 함축되어 있어서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 이 모든 주제들을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영화 안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그리고 영화는 무척 아름답다.
데보라 카는 역대급 명연이다. 이런 연기를 내 평생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역대 1위 호러영화하면 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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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무섭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그 세계에 젖어들다가 나중에는 뼈까지 시립니다.
도덕적 교훈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주 풍부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