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강추하는 일본 평론가의 리뷰
일본 영화 평론가 이시즈 아야코라는 분이 엘르걸에 기고한 평인데..
글 마지막 줄이 훅 들어오네요.
영화 봤을 때 눈물났던 생각이 났습니다.
강 스포일러는 없지만 약 스포일러 정도는 있는 글입니다. 영화가 궁금하신 분은 보셔도 되는데,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영화 보고 나서라도 꼭 보세요.
좋은 별 아래서 태어나지 못해도
https://www.elle.com/jp/culture/movie-tv/g40143162/75th-cannes-film-festival-broker-review-pas-sous-les-bonnes-etoiles-by-ayako-ishizu-220602
이시즈 아야코
프랑스 제목 <LES BONNES ÉTOILES>이 가리키는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찍은 한국 영화 ‘베이비 브로커’(역주: 일본 개봉 제목), 영어 제목은 <Broker>. 한국 제목도 마찬가지인데, 아기를 암시장에서 매매하는 중개인을 가리킨다. 즉, 범죄자다. 하지만 프랑스 제목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LES BONNES ÉTOILES’. “좋은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즉 “행운”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 제목이 바로 이 영화의 관점이 여럿임을 나타내고 있다. 젊은 엄마가 버린 아기를, 아이 없는 커플에게 팔려는 브로커는 나쁜 사람일까? 아니면 좋은 별 아래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행운을 주는 착한 사람일까? 아이를 버릴 바에야 낳지 않는 편이 좋을까? 그리고 아이에게 있어서 정말로 좋은 별 아래에서 태어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솜씨 좋은 세탁소 주인이지만, 빚에 시달리는 상현과 베이비 박스(일본에선 아기 포스트)가 설치된 교회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동수(강동원). 두 사람은 어느 비 오는 날 밤, 젊은 여자 소영(이지은)이 두고 간 아기를 몰래 데리고 간다.
두 사람은 베이비 브로커로서, 버려진 아기를 박스에서 훔쳐서 돈 있는 부부에게 팔고 있었다. 하지만 소영이 다음 날 아침 교회로 돌아오면서 사태는 급 전개. 두 사람은 소영을 설득해 아기에게 더 좋은 부모를 찾기 위한 여행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형사 수진과 후배(배두나, 이주영)가 바짝 뒤를 쫓고 있었다.
(역주: 베이비 박스를 감시 중이던) 형사 수진은 소연이 아기를 베이비 박스 밖에 둔 것을 보고 분노한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박스 안에 아기를 옮기고서, “키우지 못할 거면 낳지를 말았어야지.”라고 내뱉는다. 많은 이들이 슬픈 뉴스를 들었을 때 할 법한 소리다. 하지만 엄마가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게 아닌 경우도 많을 것이고, 애초에 부모 중 아빠는 왜 비난받지 않는 걸까?
여러 드라마와 갈등이 영화 속에서는 웃음과 센티멘털한 감정, 그리고 범죄와 함께 동시 진행되어 간다. 사실 동수는 아동 보호 시설 출신이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괴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형사 수진은 그녀를 뒷바라지하는 남편 사이에서 아이가 없는 것에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엄마 소영에겐 아기를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이유가 있고, 상현에겐 따로 떨어져 사는 딸이 있다. 여기에 또 한 명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
사회 자체가 “좋은 별”이 될 수는 없을까
저마다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유사 가족으로서 지낸다...... 그렇다. 이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과 짝을 이루는 영화다. <어느 가족>과 다른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기대, 사람에 대한 희망(환상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좋은 별 아래에서 태어나지 못한 아이는, 그대로 불행하게 자라는 것일까? 그 대신에 이 사회 자체가 좋은 별이 되어 그 아이를 키워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전해진다.
이 리뷰를 쓰면서, 필자가 상당히 감상적이 됐음을 인정한다. 평론하기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 한 사람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느껴져서, 칸의 그 거대한 뤼미에르 극장 안에서 티슈를 한 장만 가져갔던 걸 후회했다. (야회가 있어서 차려입느라 작은 백만 들고 극장에 갔다.) (역주: 눈물 닦느라) 티슈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아기 우성과 그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세상에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무리 아이를 원해도 가질 수 없는 커플. 아무리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는 여성. 엄마가 되길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여성의 자유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은, 사회의 누구나가 바라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아니던가. 자식의 행복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런데 고레에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이래로 여러 번 소재로 삼은, 피가 이어지지 않은 대체 가족을, 영어로는 Chosen Family=선택된 가족(※)이라고 한다. 꽤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이다.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아이에게 있어서 좋은 별이 될 가족이 있는 것도 괜찮다.
[편집 각주] ※혈연, 친척 등 이미 존재하는 ‘가족’과 다르게, 자신들의 뜻과 동의로 형성된 ‘가족’을 가리킨다. ‘가족’ 자체의 정의는 법과 관습에 따라 다르다.
PTA로부터 영감을?
좀 의외였던 건, 극 중 폴 토머스 앤더슨(역주: PTA) 감독의 1999년 작 <매그놀리아>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 에이미 맨의 노래 ‘Wise Up’이 흘러나온 것이다. 형사 수진은 잠복 중 남편에게 전화해 그 영화를 둘이서 봤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해...”라고 중얼거린다. <매그놀리아>와 그 곡이 고레에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무언가를 손에 넣으려고 노력해도, 결과는 상상과 다르다. 포기하고 인생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가사를 그녀가 자신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장면에서 배두나의 멋진 표정이란!
상현을 연기하는 송강호가 훌륭하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목사 옷을 입고서 아기를 훔치는 남자. 그의 복잡한 심경과 아이들을 위해 벌이는 어떤 행동이 결말과 연관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겠다.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처음 받은 게 너무 늦었을 정도다.
강동원 사상 최고의 연기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통해,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최상의 연기를 끌어낸 것은 동수 역의 강동원일 것이다. 워낙에 몸매도 외모도 뛰어나서, 아름다운 외계인처럼 보였던 기존의 강동원이 아니다. 다소 등을 구부린 채, 중년에 가까워진 남자가 되어 슬픔과 다정함을 휘감은 채 나타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을 극복 못하고 있지만, 아기와의 여행을 통해 동수 자신이 성장한다. 그리고 강동원 본인이 껍질을 벗었음을 실감케 한다. 강동원과 이지은이 관람차 안에서 마주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명장면이다. 촬영 홍경표(<기생충>)의 솜씨도 빛난다.
좋은 별 아래서 태어나지 못했다면, 좋은 별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 별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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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본에서도 통하나보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