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극의 칼 (1995) 불안과 좌절 그리고 공포. 스포일러 있음.
서극은 일세를 풍미했던 감독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홍콩영화가 걸작들을 쏟아내며 붐이 일어나던 때,
서극은 원탑 감독으로 평가 받았다. 서극은 영화를 징그럽게 잘 만든다.
그리고 도전적이다. 기술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도전해서 철갑무적 마리아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이것은 1980년대 만들어진 트랜스포머다. 한 마디로 홍콩영화 쟝르를 넓게 만들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감독이다. 서극은 홍콩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 불리웠다. 알다시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어도 대중친화적이고 대중에게 감동을 주려는 어프로치를
놓지 않는다. 서극도 이러하다.
하지만 홍콩영화 전성기 말기에 왕가위를 비롯해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서극 감독의 이런 어프로치는 좀 낡은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서극 감독이
홍콩영화 전성기 말에 만든 이 영화는 왕가위 스타일을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지금 보아서는 잘 만든 무협영화이지만, 당시 보기에는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사람들이 느끼는 좌절, 분노, 공포, 절망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협영화의 탈을 쓴 실존주의영화다.
이 영화 원작은 1960년대 영화 왕우 주연의 독비도다. 스승의 딸에 의해 팔 한짝이 잘려나간 주인공이
외팔이도 할 수 있는 검법을 손에 넣어 외팔이 검객으로 태어난다. 그는 스승을 찾아가 위기에 빠진
스승을 구원해낸 다음, 은혜를 갚고 떠나간다. 이것은 이 영화 서극의 칼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원작 독비도는 당시 절정기를 향해가던 홍콩의 자부심과 안정감을
반영하여 비장하고 영웅적이다. 주인공은 자기 원칙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영웅주의, 의리, 비장함같은 것은
깨지지 않는 불변의 진리 같다. 안정된 철학, 사상, 윤리의 바탕 위에서 주인공 왕우는 영웅이 된다. 왕우가 집도 재산도 팔 한짝도
없는 떠돌이 신세이지만 거대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조문탁은 다르다. 그도 왕우와 마찬가지로 집도 재산도 팔 한짝도 없다. 가진 것은 천하를 뒤흔들
외팔이검법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회는 집에서 한발짝만 나서면 무정부주의적인 혼란상태에다가 짐승처럼 무윤리적으로 (비윤리가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투성이다.
강한 사람만 약한 사람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도 틈만 나면 다른 약한 사람을 수탈한다. 영웅주의, 의리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속에서 외팔이 검객 조문탁은 그냥 장애인이다. 그를 거대한 영웅으로 받들어줄
사상적 윤리적 기반같은 것은 사라졌다.
조문탁이 외팔이인 데에는 어떤 신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문탁이 악당두목과 최후에 벌이는 결투도
시골장터에서 불한당들이 개싸움을 벌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그가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고 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충이니 효, 의리같은 것이 뭔가. 사람들은 조문탁이 자기 만족을 위해 복수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영웅같은 것이 아니다.
조문탁은 그렇다고 복수라는 목적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매순간 순간 복수의 생각뿐이고 이를 실천한다.
조문탁에게 있어 복수라는 것은, 효 혹은 의리를 실현해가는 거창한 과정이 아니다. 그냥 이 날 것 그대로의 세상에서 한 존재의 방식일
뿐이다.
조문탁과 함께 한 스승 밑에 있던 경쟁자 철두는 열혈청년이다. 그는 불의를 보면 칼부터 먼저 나가고,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납치해다가 강X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 여자가 창녀이고 그 여자가 불한당들에게
잡혀 있다는 설정이 붙지만). 그는 자기 경쟁심 때문에 조문탁이 정든 무술도장을 떠나가 버리자, 조문탁을 뒤쫓아 세상으로 나간다.
그를 미워하지는 않고 사랑했기에 미안한 마음과 의무감에 그런 것이다.
복수 하나만을 추구하며 짐승처럼 잔인한 세계를 표류하는 조문탁, 그리고 그런 조문탁을 구해내서 도장으로 돌아오려고
역시 그 세계를 표류하는 철두가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어떤 윤리나 신념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본능, 갈구, 자기도 모를 어떤 기분 이런 것 때문에 짐승같은 세계를 살아간다. 그들은 불안정하고 격정적이고 분노에 찬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세개 축을 이루는 등장인물이 사부의 딸 소령이다. 소령은 아마 홍콩을 상징하는 것 같다.
조문탁과 철두라는 두 강인한 남자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연약하고 철부지같은 소녀다. 보다 보면 정말 딱하고 대책 없는 소녀다.
원작에서는 별로 비중 없는 악역 정도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나레이션을 담당하고 영화의 주제를 결정하는 중심적인 존재다.
육체적으로 약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약하다. 도장의 큰 담 바깥에 펼쳐지는 지옥도같은 세상을 그녀는
알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다. 늘 응석을 받아주는 유모와 둘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단조롭게 살아간다. 일상이 평온하고
그냥 지루하다. 그녀는 놀이 삼아 조문탁과 철두 사이를 왔다 갔다하며 그들이 자기를 놓고 싸우게 하려한다.
하지만 조문탁과 철두 눈에는 그저 철부지 아이였기 때문에 역으로 놀림만 당한다.
조문탁이 도장을 나가 버리자, 소령은 조문탁을 따라갔다가 결국 조문탁이 팔을 잘리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다.
그녀의 나레이션은 엉터리다. 세상에 나아가 날것 그대로의 짐승같은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은 비극으로 가득차 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을 이해했다"하는 식의 나레이션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데, 관객들이 보기에 자기 경험이나 이 세상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냥 소녀적이고 감상적인 편견으로
세상과 유리된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검은 기관차를 눈앞에 보면서도 "기관차의 앞에는 표범같은 사나움이 있다"하는 식의
소리를 하는 격이다. 그냥 도장으로 돌아가 높은 담 안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가 죽는 것이 딱인 사람이다.
그런데 마적때와 절대고수 사이코패쓰 비룡이 도장을 노리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소령의 운명은 딱 당시 홍콩의 상황 그것이다.
마침내 도장이 함락되고 비룡의 앞에 추풍낙엽으로 몰살을 당한다. 소령 포함 사부까지 다 몰살당하려는 순간
조문탁이 뛰어들어 외팔이 검법으로 비룡을 난도질해 죽인다. 비룡과 조문탁의 대결은 무협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서극은 이 명장면을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장사를 하는 곁에서
혈투를 벌인다. 어떻게 보면 개싸움이다. 원작에서는 고상한 무술도장 상류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결로 했는데,
여기서는 무술도장이 칼 제련소가 되고 혈투의 장소는 장터가 된다.
마침내 비룡을 이기고 조문탁은 소령을 떠나간다. 철두도 자기 갈 길을 간다. 소령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소령은 칼 제련소로로 돌아가 늙도록 혼자 산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다.
아버지도 죽고 다들 떠나가고 그 큰 제련소에 혼자서 살아가는 늙은 소령이 어딘가에 미소를 지으며 쓸쓸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영화가 끝난다. 나는 이런 소령이 당시 홍콩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절대절명의 좌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조문탁과 철두, 소령을 통해 풀어나간 걸작이다. 물론 무협영화로서도
최고걸작이다. 당시 홍콩상황을 실존주의문제로까지 승화시킨 영화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 구축한 소령의 비극은 당시 왕가위 영화가 도달하지 못했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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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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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화끈한 무협영화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기에 적어 보았습니다.
홍콩영화 황금기를 거쳐
반환하기 2년 전 쇠퇴기에
나온 쓸쓸한 명작이죠.. 서극 감독이
중국에 홍콩이 반환하기 전 모든
역량을 다 끌어 모아 만든 역작
만약 홍콩영화 황금기 시절
이 영화가 나왔다면 동방불패
버금가는 세기의 영화로 남았을듯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정말 최고였습니다!! 👍 👍 👍 👍 👍
좋은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