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페인> 단평
"세상 T인줄 알았던 제시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살포시 올려놓는 돌멩이 하나"
제시 아이젠버그 하면 보통 사회성 떨어지는 너드, 혹은 천재 느낌이 가장 친숙한 배우일 것입니다.
그의 첫 감독작이라는걸 들었을땐 쉴새없이 몰아치는 대사와 티키타카로 보다 더 유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예상했었습니다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더군요.
극장을 나오면서 제시 아이젠버그라는 사람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이 배우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고 정말 가벼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따뜻하고 섬세하다는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도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환하게 밝히는, 끔찍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 내성적인 I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영향력이 너무 지대해 자기도 모르게 주변 환경을 뒤바꾸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영혼. 우리 사회가 보듬어주기 벅찰 정도로 너무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벤지"들 옆에서 상처 받았을,또 치유 받았을 수많은 "데이빗"들이 있죠.
발 모양이 이쁘다는 실없는 칭찬으로 사람들을 두근거리게 만들다가도, 수프 맛이 이상하지 않냐 물었더니 아니 난 맛있는데? 하며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악의는 없지만 사람 참 들었다 놨다 합니다. 벤지는 강박이 심한 데이빗에겐 이따금씩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필요한 사람이면서도 나를 정말 난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죠. 한때 꿈과 이상으로 가득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향을 따라가던 도중 깊은 상처를 입고 길을 잃어버린 요즘 시대의 수많은 청년들을 대변하는 느낌도 듭니다.
석세션을 본사람들은 키어란 말고는 이 역할을 이렇게 잘 소화할 사람이 없다는걸 잘 알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세상 만사 내 알바 아니고, 내가 세상에 중심에 있는듯 행동하지만 묘하게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또 알고보면 굉장히 연약한 그런 복합적인 캐릭터를 이번에도 완벽히 연기합니다.
벤지 뿐만 아니라 데이빗도 자신만의 상처가 분명이 있을테고, 투어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사연이 다 있습니다. 각자의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나의 뿌리, 또는 나와 정서적 교감이 있었던 민족의 참혹했던 과거와 상처를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어찌 보면 참 이타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여정 속에서 본의 아니게 벤지라는 사람의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죠. 유대인의 아픔도 경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캐릭터들의 상처도 드러내고, 아주 드라마틱 하진 않지만 은은한 치유의 여정을 떠나는 모든 과정들이 참 섬세하고 절제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제시 아이젠버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고, 작은 생채기든 깊고 큰 상처든 결국엔 실재하는 "리얼"한 고통이며 그 누구도 넘겨짚어서도 안되며 자칫 내 방식대로 함부로 치유하러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 받은 이들을 보듬어주다보면 어느새 내 내면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 합니다.
* 여행 시작과 말미에 서로 옷 색깔이 바뀐걸 보면 여행을 통해 서로 동화되었다는걸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제시 아이젠버그가 한 발짝 떨어져서 우리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건네는 위로의 돌멩이같은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작은 돌이지만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은, 동그랗고 예쁜 조약돌 하나 말이죠. 새해 첫 영화로 이만한 영화가 있을까 싶습니다. 서치라이트 픽쳐스 작품들은 A24와는 확연히 다른 뭔가 따뜻하고 편안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디즈니가 폭스를 먹으면서 얻은 큰 수확중에 하나가 이 보물같은 스튜디오가 아닐까 싶네요.
빼꼼무비
추천인 2
댓글 3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영화 내내 받았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