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의 시간. 왕가위와 나.
문득 시사회 란에 출간 이벤트 보니 왕가위 영화를 사랑하던 관객으로 그의 영화를 보던 시간이 스쳐 가더라고요.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딱 두 사람의 왕가위, 한국 배구를 폭격했던 중국 배구선수 왕가위 다음으로 기억하는 왕가위입니다.
제 기억이 틀렸는지는 몰라도 지방 중소도시까지 <열혈남아>가 개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당시 즉 1990년이나 '91년 정도로 보자면 <열혈남아>는 <영웅본색>이 대히트를 친 홍콩 영화의 흐름을 타고 정말 무분별하게 들어오던 홍콩 영화 중 하나로 휩쓸렸지 않았나. 우습겠지만 저는 <열혈남아>를 지금까지 장만옥의 영화로 기억합니다. 의식적인 것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겠지만 장만옥에 대한 경외감으로 그랬지 않나 싶은.
그리고 이 영화가 나와요.(경쟁작들을 보면, 이미 흥행은 어렵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제가 <아비정전>을 기억하는 문장,
한 씬을 위해 NG 48번의 숱한 신기록을 세우며 지금 막 도착한 1990년대의 최대 화제작!
저 문구가 얼마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모릅니다. 타임리미트를 통해 긴장감을 유발했던 <경천12시>가 나름 액션영화로 선방했던 데 반해 <아비정전>은 그야말로 폭망합니다. 폭망 수준이 아니라 극장 내에서 소란과 소요, 싸움이 터지고 환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아비정전>을 액션영화로 포장한 탓이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지방 중소도시 영화관에서도 1, 2층 객석이 있던 데였는데요, 한 분이 고함치기 시작하니까 욕하고 침 뱉고 난리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진짜로 환불 받는 사람까지 생겨났던.
악평도 난무했었지요. 다들 액션영화로 알고 갔는데 왕가위 특유의 감성 천국 엣지 충만 영화였으니까요.
그러나!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왕가위의 시간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딱 4년 정도 만에 한국영화의 판을 뒤흔드는 해외 감독이 됩니다.
아마도 제가 살아왔던 시절을 되새김질해 볼 때 한 명의 영화감독이 이만큼 문화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영향을 끼쳤느냐, 하고 따져보면 적어도 이만큼이나 영향을 미친 감독은 없었던 듯합니다. 물론 비슷한 정도까지 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있었겠지만 패션, 영화, 드라마, 심지어 문학까지도 영향을 미친 감독이었습니다.
이 시기, 왕가위 스타일을 따라했던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기획되었고 실제 만들어져 상영되거나 드라마로 방영되었습니다. 이즈음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를 내세워 소위 멀티캐스팅으로 주인공을 그려낸 대부분이 왕가위의 영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후 한국에서 개봉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스코어만 보자면 "천만"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미쳤던 영향만큼은 천만에 필적할 거라 여깁니다.
<중경삼림>을 거쳐 <타락천사> 특히 <동사서독>에 이르러 아마도 인기의 정점을 찍었지 않았나. 특히 당대의 초히트작이었던 김용의 소설 중, 우리에게는 <영웅문>으로 알려졌던, 동사와 서독의 이야기를 딱 짚어내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던 <동사서독>에서는 핸드헬드가 갈 수 있는 정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핸드헬드를 통해 붓으로 그리는 듯한 액션이 아닌, 영화 그대로의 액션 모습도 보고 싶다는 열망은 품고 있습니다.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들 역시 상당히 멋진 작품들이 많습니다. 위에 보이는 영화들 상당수가 장면이 떠오르네요. 장국영이 주제가도 불렀던 <H2O>의 경우 지금도 가사와 멜로디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멜로의 정수를 보여준 <화양연화>에 이르러 씨네필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객들 역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 다다랐지 않았나...!
제가 기억하는 배우들의 코멘트도 여럿이네요. 장국영과 양조위가 인터뷰(진짜 인터뷰를 한 건지는 알 수 없는) 기사에 "다시는 왕가위 감독과 영화를 찍지 않겠다." 같은. 쪽대본으로 유명한 건 대한민국 드라마 현장만이 아니었다, 라던가. 아마도 이건 여러 기사로 나왔던 듯해요. 촬영 전날 아침에 갑자기 대본을 주거나, 대본 없이 영화를 찍기도 했다, 거나 하는. 특히 NG 48과 관련해서는 이틀을 잠을 안 자고 찍었다거나 한 장면만 일주일을 찍었다, 뭐 그랬던 듯해요.(이건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일대종사>를 기점으로 상승만을 그리던 왕가위의 영화세계가 조금은 변곡점을 맞지 않았나. 물론 문화공정이라는 중국의 정책 탓에 자유로운 창작에 방해를 받기도 하리라 판단합니다만 어느 정도 하향점으로 향한다, 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대하죠. 그 왕가위가 어디 가겠느냐고.
왕가위와 나.
처음 그의 영화를 만났던 <열혈남아>를 통해 그저 그런 감독으로 여겼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려서부터 영화와 자꾸 엮였던 저는 현재는 영화에 한발을 담근 사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되돌아가 <아비정전>을 보던 시기에는 절친의 아버지가 중소도시의 문화정책과 과장이었던 이유로 늘 초대권이 넘치는 친구를 따라 영화를 보던 때였습니다. 어릴 때라 이에 대하여 가타부타 판단할 시기가 아니었던 점은 양해 바랍니다. 또 중소도시에서 극장 체인을 가진 절친까지, 이렇세 셋이 삼총사처럼 영화를 보던 때에 나타난 왕가위는, 그저 평범한 감독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뇌리에 남은 "NG 48"이라는 홍보 문구는 잊혀지지 않고 남았습니다. 더불어 <아비정전>을 보던 극장에서 벌어졌던 소요와 환불 사태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상황이었고요.
<중경삼림>을 볼 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과 영화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논하며 맥주를 즐기던 때였습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즐거움은, 굳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동사서독>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를 지나 <화양연화>를 개봉할 때쯤에는 물론 그 사람과의 열렬했던 사랑도 종말을 맞을 때였지요. <해피투게더>를 이해하지 못하던 그 사람과 <화양연화>에 다다라 식어버린 사랑과 이별은 마치 영화만큼 애잔하지는 않았어도 영화보다 더 들끓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담담한게 아름답지 않을까.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 어느 사람과 왕가위 감독.
<일대종사>를 혼자 극장에서 볼 때는 망연히 앉아서 영화와 별개로 무수한 복잡한 감정에 뒤흔들렸지요. 사람과 영화, 복잡한 미래와 여전히 답보한 현재 등으로.
무엇보다 저의 인생영화가 그래서 무엇이냐. 바로 <아비정전>입니다. 볼 때마다 색깔과 감정, 감상과 견해가 달라지는 거의 유일한 영화!
물론 꿈도 꿉니다. 언제가 한 번 함께 작업할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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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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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태어나기전에 이런영화를!!!!
하면서 놀라워했던 기억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