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1997)> 후기 ★★★★★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걸작 <큐어> 보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은 첫 공개 후 25년만이라죠. 창작자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학수고대해온 관객들에게도 정말 감격스러울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잔상이 짙게 남는 일본 호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이 영화의 리마스터링이나 개봉 소식에도 무덤덤했는데
귀신 우글우글한 J-호러와는 차이가 있는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고 하여 극장에 방문해서 첫 관람했어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고 먼훗날 집에서 보았다면 무척 후회했을 것 같아요.
사운드가 무척이나 중요한 영화인데, 이를 최대한 지원하는 극장 환경에서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가 주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온전히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리마스터링 때문에 사운드가 훨씬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극장에서 봐야죠.
특별히 비주얼적으로 역하거나 기괴한 장면도 별로 없어요. 영화 중반 공중화장실 장면 말고는...
그래서 그런지 견딜 수 있는 역치 내에서 최대한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매 버튼 누르기 전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어렸을 적 <주온>을 단 10초 정도 봤는데도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요.
J-호러에 대한 편견 때문에 걸작을 놓칠 뻔했던, 참으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네요.
구로사와 기요시는 특별히 고려해서 만들었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일본의 당시 시대상과 결부시켜 보는 것은 공개 시기와 내용 면에서 볼 때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버블 경제의 붕괴로 장기 침체의 길에 들어섰던 길목에서 공개된 작품이기에, 영화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단순히 상상으로 구현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훑어보아도 꼭 장기 침체 시기 후론 사회 면이 시끌시끌할 만한 사건들이 많았잖아요. 당장 우리나라만해도 연쇄살인범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외환위기 시기 직후였구요.
배를 곪으면 불만이 생기고, 불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표출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불만의 표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예요. 이 영화가 주는 공포감 또한 바로 그 부분에서 나오구요.
누구나 '어떤 계기가 있다면'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감독이 이 영화를 '괴물' 영화라고 부른 것도 무척 공감갑니다.
영화 중반 흐르는 물의 연출도 괴물의 느낌을 한껏 살리는 듯이 찍었더군요. 괴물의 촉수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서 소름이 끼쳤어요.
내 얼굴을 한 심연의 괴물과 마주하는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더군요. 오히려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빌런인 '마미야'는 마치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도 같습니다.
'A Little Push'. 해당 영화에서 조커가 혼란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했던 모든 것을 함축시킨 단어죠.
마미야 역시 평범한 사람들에게 했던 것은 그리 대단하고 치밀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살짝 뒤에서 밀었을 뿐이죠.
우리도 누가 뒤에서 민다면, 우리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는 어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내 자신임을
탄탄한 각본과 훌륭한 연기 등을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그 어떤 영화보다 등골이 서늘해질 영화일 거예요.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
추천인 19
댓글 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당!
여길 봐주세요 익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