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1991)' 쇼트 분석과 교차 편집의 예술.
쇼트 분석 – 어깨 너머로 보이는 인물들의 우위 비교를 통한 촬영 예술
오프닝 장면에서 주인공이 ‘클라리스 스털링’이 FBI 건물에 들어간 후 엘리베이터에서 잡히는 수많은 남성 훈련생과 샷에 잡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클라리스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남성들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연약하게 느껴집니다. 이 장면은 당시 권위적인 남성 위주의 시대(영화 속 배경은 1983년)에서 클라리스가 남성들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등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클라리스가 앞으로 겪을 일들을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샷은 이후 클라리스가 지역 보안관들과 같은 장소에 있을 때도 사용된다.
또한 이 영화에선 인물들이 이야기 할 때 어깨너머로 다른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법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클라리스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많이 자주 사용되는데, 어깨너머 보이는 클라리스를 통해 관객들은 본인들이 직접 클라리스가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함과 동시에 영화에 직접 참여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허나, 예외적으로 이러한 기법이 사용되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호위 차량 안에서 클라리스와 잭 크로포드 국장이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클라리스는 본인만 제외하고 크로포드가 보안관과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인해, 지역 (남성) 보안관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나있는 상태인데 그런 클라리스에게 크로포드가 나름의 해명을 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선 두 인물이 한 프레임 안에 잡히며 그동안 영화 속에서 보이던 권위적인 남성 앞에 밀리는 클라리스가 아닌,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알려주며 관객들에게 편안함을 유도합니다.
이는 보안관들과 만나기 전 차량에서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크로포드의 행동과 매우 대조됨.
반대로 클라리스가 오히려 우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한니발과 상원의원이 만나기 직전 클라리스가 마지막으로 렉터 박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그녀는 칠튼 박사에게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같은 프레임에 잡히면서 둘 다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알려주지만, 칠튼 박사 어깨 너머로 보이는 클라리스를 통해 결국 여기선 클라리스가 우위에 있음을 확인해주는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크로포드가 전화를 통해 상원의원을 이름을 걸고 렉터 박사에게 가짜 제안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상사에게 질책을 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질책을 하는 상사가 아주 천천히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선 법무성 관계자가 아무 말없이 수화기를 들며 재빠르게 그의 모습이 클로즈업 됩니다. 그동안 클라리스 앞에서 매우 권위적으로 묘사되던 크로포드는 이 장면에서 이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작품에선 보다 권위적인 인물이 등장할 때 아주 천천히 혹은 재빠르게 클로즈업을 하는 기법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또한 그들에게 긴장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 다음 장면에서 똑같은 기법이 사용되는데, 바로 렉터 박사가 상원의원을 만나기 직전 경찰에게 호위를 받는 장면입니다. 경찰관이 여기서 한니발의 책임자인 칠튼 박사에게 서류에 싸인을 할 것을 요구하는데, 칠튼 박사는 재킷에 손을 넣으며 그제서야 볼펜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묶여있는 한니발 렉터의 얼굴에 클로즈업이 재빠르게 되는데, 이는 한니발이 (그전 장면에서 칠튼 박사의 볼펜을 몰래 훔침으로써) 칠튼 박사의 우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것이 한니발이 이후 탈출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또한 한니발 렉터가 상원의원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사용됩니다. 겉으로 봐서는 상원의원이 한니발의 우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한니발이 이야기를 할수록 상원의원이 뒤로 밀려나는 동시에 한니발의 얼굴이 아주 천천히 클로즈업이 됩니다. 한니발이 상원의원에게 성적 모욕을 줄 때는 이미 한니발의 얼굴이 최대로 클로즈업이 된 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결국 한니발이 상원의원이 우위를 차지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한니발이 탈출을 하는 장면 또한 유심히 살펴보면 여전히 이러한 기법이 사용됨을 알 수 있는데요. 경관들이 처음에는 한니발 렉터의 우위에 있는 듯 보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렉터가 그들의 우위를 되려 점령하는 것으로 묘사가 됩니다. 특히 (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경관과 그런 그를 (위에서) 경찰봉으로 무참히 폭행을 하는 렉터 박사의 시선을 통해 결국 렉터가 우위를 되찾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경관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불쾌함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경관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고 우위를 만끽하는 렉터 박사.
마지막 장면에선 이러한 기법이 결국 절정에 닫는다고 볼 수 있는데, 크로포드 국장이 클라리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장면에서 서로가 서로 어깨너머 보이는 연출을 통해 결국 그들이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에 렉터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클라리스를 통해 처음에는 그들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렉터가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클라리스가 점점 시선에서 멀리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마지막에 한니발이 클라리스로부터 성공적으로 벗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렉터는 해외로 도피한 칠튼 박사를 따라가며 근처에 있는 시민들과 섞여 자연스레 사라지는데, 그 과정에서 클라리스와 마찬가지로 관객들로부터 시선에서 멀어지는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렉터가 언제 어디 있을지 모르는 공포감을 관객들에게 조성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클라리스의 시선이 멀어지는 것은 그녀의 우위가 결국 꺾임을 상징한다.
이 영화의 촬영 감독인 ‘후지모토 탁(Fujimoto Tak)’은 조나단 드미의 다음 작품인 <필라델피아>에서도 같이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도 그가 <양들의 침묵>에서 보여줬던 촬영 기법을 선보이는데, 같이 비교해서 보면 매우 유용합니다.
교차 편집의 예술
<양들의 침묵>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교차 편집’입니다. 영화 속에선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영상 매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술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장면을 살펴보자면 중무장한 경관들이 저택을 포위하는 데 성공하며 벨을 울리고, ‘버팔로 빌’이 그걸 듣고 현관문을 열게 되는데, 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중무장한 경찰 대원들이 아닌, 클라리스 스털링이었습니다. 즉, 버팔로 빌이 문을 여는 순간까지 문을 노크 하는 클라리스와 문 앞에서 대기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착각을 유도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본 게시글은 대학교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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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정도 본것같아요ㅎ
좋은 글잘봤습니다
엘레베이터를 타기전에 영화 내용을 다 설명하고 시작하죠ㅎㅎ 그리고 렉터와의 첫번째 대화는 공간왜곡연출의 아주 좋은 예시죠. 그리고 마지막 교차는 비행기부터 설명해들어가는게 더 짜임새 있어집니다. 국장(부국장이었나?)과의 대화는 나방 발견으로 인한 스탈링에 대한 인정을 전후해 샷플랜을 정리해준거죠. 그냥 해명하려고 투샷으로 간건 아닙니다
전공은 아니고 일단 교양으로 듣고 있는 과목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정성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래전 본 영화를 다시 복기해보게 되네요😁
교수님 평가 어땠나요? 굉장히 알기 쉽게 잘 써주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