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피츠카랄도 (Fitzcarraldo,1982) - 위대한 영화
"이 영화를 만드는 데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난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요."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보통 영화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인격은 분리되어 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만 만든다고, 그 감독이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감독이 만든 것이다. "베르너 헤어조크의 내면 = 베르너 헤어조크가 꿈을 추구하기 = 베르너 헤어조크가 영화 만들기 = 이 영화"다. 모두 같은 것이다.
이 영화의 무대는 남미 아마존 밀림이고 시대 배경은 아마 20세기 초이다.
마치 황금광시대에 금을 찾아 알래스카에 몰려든 사람들처럼, 고무나무를 찾아 유럽인들은 남미 원시림에 몰려든다. 유럽인들은 여기에서 부를 찾지만 동시에 원시림의 공포에 굴복한다. 그들은 돈을 찢어 물고기들에게 뿌리고 의미 없는 파티를 열고 과시적인 낭비를 하지만, 아주 무료하고 조용하고 공포스런 삶을 살고 있다. 이들 중 유일하게 자기 꿈을 좇아 시간, 열정을 활활 태워버리는 삶을 사는 이가 바로 피츠카랄도다.
피츠카랄도는 아일랜드인으로 원래 이름은 피츠제랄드이다. 하지만 남미 원주민들이 피츠카랄도라고 발음하기에 그의 이름을 피츠카랄도로 한다. 피츠카랄도는, 피츠제랄드라는 평범한 유럽인이 아니다. 그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선 인물이다.
그는 오페라에 광적으로 매료된 사람이다. 원시림 속에 있는 자기 농장에 오페라하우스를 지어, 원주민들과 촌사람들에게 오페라를 관람하게하겠다는 꿈을 갖고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는 누구도 들어가본 적 없다는 아마존 원시림 핵심 중에서도 핵심에 들어가 부를 움켜쥐려한다. 목숨을 몇개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피츠카랄도는 목숨을 기꺼이 몇개라도 걸 사람이다. 가까스로 원시림 속에 들어와 땅을 차지한 다음 돌아가려하니, 돌아갈 방법이 없다.
방법은 딱 하나. 거대한 증기선을 사람들이 손으로 끌고 산 하나를 넘어가는 것이다. "배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다. 배는 거대한 증기선이고, 산은 아마존 원시림 산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증기선을 끌고 진짜 산을 넘어가도록 한다. 관객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거대한 증기선을 끌고 당기며 산 하나를 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게된다. 그것이 이 영화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꿈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특별한 개념을 갖고있는 듯하다. 그는 이것을 꿈이라고 부르지만, 일반사람들은 광기라고 부를 듯하다.
영화를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진흙구덩이 지옥 속에 내몰고 거대한 증기선을 밀고 끌다가 죽는 사람까지 나왔다. 피츠카랄도는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그 자신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리라. 로저 이버트가 "위대한 피츠카랄도를 찍는 데에는, 진주만 영화의 식사 장면 하나 찍는 만큼만 돈이 들었다. 하지만, 위대한 피츠카랄도는 대하드라마다. 진주만은 아니지만. 어느 영화가 대하드라마냐 아니냐 결정하는 것은 감독의 비젼이다. 예산의 크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영화가 대작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증기선을 산으로 끌고가기 때문이 아니다. 피츠카랄도는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 오페라극장을 지어, 원주민들에게 들려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꿈이 순수하고 간절하기 때문에 그는 기꺼이 목숨을 걸고 증기선을 산으로 끌고가는 것이다. 여기서 거대한 것은 피츠카랄도의 꿈과 순수성이다. 피츠카랄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꿈과 순수성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꿈이라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거대하고 처절하고 순수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마치 메스로 싹싹 도려내듯이 냉정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영화다.
피츠카랄도가 처음, 원주민들이 창칼을 번뜩이는 원시림 속으로 배를 몰고 들어갈 때, 그는 축음기로 오페라를 튼다.
다른 경험 많은 선원들은 무서워서 배 안에 꽁꽁 숨었는데, 피츠카랄도는 갑판에 혼자 서서 무기 대신 오페라를 틀어 원주민들에게 들려준다.
자기 꿈의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다른 모든것들을 압도해나가려는 이 인간을 광기에 찬 인물이라 불러야할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돈도 권력도 없는 피츠카랄도의 무모함을 무시한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이 원시림의 공포에 무릎 꿇고 정신적으로 몰락할 때, 피츠카랄도는 오히려 강해진다. 그의 꿈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만 가서, 나중에는 거대하고 깊은 원시림과 당당하게 맞짱뜨는 거인이 된다. 말이 그렇지, 피츠카랄도라는 이 인물의 내면을 통해서 근원적인 질문 - 인간의 꿈 그리고 인간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까지 통찰할 수 있는 거장이 몇이나 될까?
피츠카랄도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해 모든것을 잃고 자기가 살던 곳으로 쫓겨온다. 그는 파멸하였는가? 아니, 여기서 진짜 주제가 나온다.
피츠카랄도는 있는 돈을 죄다 쥐어짜서 오페라 가수들을 초청해온다. 그리고 가수들을 조각배 몇채에 싣고서, 자기 농장 원주민들 앞에서 선상 오페라 공연을 벌인다. 사람들은 좋아서 박수치고 웃고 떠들고, 이를 본 피츠카랄도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그는 승리한 것이다. 피츠카랄도의 꿈이 그를 파멸로부터 구원한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엄청난 꿈을 가진 사람은 필연적으로 파멸한다는 공식을,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부정한다.
아주 사소한 사건만으로도, 인간의 꿈은 패배를 성공으로 승리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인간의 광기가 필연적으로 파멸과 배패를 가져온다는 주제의 아귀레-신의 분노 이후로,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도 많이 성숙한 것 같다.
추천인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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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대단했어요..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님은 거진 뭐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 의지의 지휘자가 아닌가 싶어요 ㅎㅎ
아무래도 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저 시절 헤어조크 감독은 세상에 둘도 없는 기인이었어요.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