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 OST - OST가 두 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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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 말 하면 잔소리로 들릴 만큼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 ラピュタ)"의 음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 / 영화 음악의 대가 히사이시 죠가 맡았습니다. 히사이시 죠는 청명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전자 오케스트라 협주로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선율을 담아냈습니다. 아래가 1986년에 발매된 정규 OST 앨범입니다.
메인 테마이자 본 앨범의 최고 추천곡인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는 구슬픈 멜로디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협주가 더해지면서 감정을 점점 끌어올리는 선율의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음악은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의 멜로디를 중심으로 변주한 곡들의 비중이 큽니다. 엔딩 크레디트를 수놓는 주제가 "너를 태우고(君をのせて)"도 그러한 변주의 하나인데, 이노우에 아즈미의 옥구슬 같은 맑은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목소리가 맑디맑은 스기나미 아동합창단의 아카펠라 합창이 빛나는 '너를 태우고 합창 버젼'과 '라퓨타의 붕괴'도 같은 부류의 변주죠.
12번 트랙 '천공의 성 라퓨타'는 태풍을 뚫고 들어간 파즈와 시타의 눈앞에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라퓨타의 거대한 모습을 웅장한 오케스트라 협주로 묘사합니다. 그러다가 곡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뭔가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로 돌아서는데, 한때 자연을 거스르며 세상을 지배했다가 결국 사라져간 고대 문명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어울릴 듯해요.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유의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곡들도 눈에 띕니다. 3번 트랙 "유쾌한 싸움"은 해적들과 탄광촌의 광부들이 한바탕 패싸움을 벌이는 유쾌한 장면에 흥을 더하는 곡이고, 9번 트랙 "타이거모스호에서"는 해적들의 이동수단이자 본거지인 타이거모스호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재미있게 표현한 곡입니다.
작중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곡들은 2번 트랙 "슬래그 계곡의 아침"과 4번 트랙 "곤도아의 추억" 등의 곡에 흩어져 있습니다. 슬래그 계곡의 아침은 하늘에서 내려온 시타를 파즈가 받아낼 때 흐르던 신비로운 분위기의 곡과 슬래그 계곡 탄광촌의 아침을 밝히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협주와 파즈의 트럼펫 연주를 이어붙인 곡입니다. 곤도아의 추억은 광산촌의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린 파즈와 시타가 비행석의 힘 덕분에 천천히 탄광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을 수놓았던 신비로운 멜로디로 시작되어, 시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외딴 시골 곤도아의 잔잔하고 전원적인 느낌을 아련하게 담아냅니다. 그녀를 구하려다 군대의 함포에 파괴된 로봇을 보고 도라와 해적단을 따라가기로 결심하는 시타의 의지를 표현한 "시타의 결의"와, 파즈와 시타가 타이거모스호에서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장면에서 흐르던 "달빛의 운해"도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가 일품이죠.
다만 개인적으로는, 2번 트랙 슬래그 계곡의 아침과 4번 트랙 곤도아의 추억 두 곡들의 음악 구성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두 곡 모두 서로 다른 장면에 쓰이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 곡들을 연달아 이어붙여서 한 곡으로 만든 구성이거든요. 요즘 같으면 아무리 짧아도 곡마다 제목을 부여해서 따로따로 구분해 놓았을 것이고, 어느 장면에 사용된 곡인지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곡을 구성해서 수록해야 할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이런 곡 구성만 아니면 나무랄 데 없는 OST 앨범일 텐데. 각 장면들을 소개하는 제목으로 표기했다면 나았을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도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음악은 위의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외에 한 가지 버젼이 더 존재합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미국 배급을 맡고 있는 월트 디즈니 영화사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영어 더빙판을 제작하면서 음향과 음악까지 완전히 새로 녹음했거든요. 월트 디즈니 영화사가 배경음악을 미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정통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바꿔 줄 것을 스튜디오 지브리에 요구했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요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이에 따라 히사이시 죠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음악을 전면적으로 재편곡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행하였습니다. 아래가 그 재편곡된 OST의 트랙 리스트입니다.
디즈니 영어 더빙판에서 새롭게 재편곡된 음악은 오리지널에서 들리던 전자음악 특유의 신비로운 울림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 대신 오케스트라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가 가미되어 전체적인 음악에 묵직한 무게감이 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5번 트랙 "Pazu's Fanfare"는 파즈가 아침에 집 지붕 위에서 트럼펫을 부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인데, 상기했듯이 1986년에 일본에서 발매된 OST 앨범에서는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슬래그 계곡의 아침이라는 곡에 포함되어 있던 음악이었어요. 오리지널에서는 트럼펫으로만 연주되는 단촐한 곡이었지만, 디즈니 더빙판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가 추가되어 보다 풍부한 정서를 전해 줍니다.
파즈의 팡파레 재더빙판 버젼.
오리지널에선 기타 연주가 들어가지 않는다.
9번 트랙인 "Floating with the Crystal"은 파즈와 시타가 비행석의 힘 덕분에 탄광의 지하로 천천히 떨어지는 장면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드리웠던 곡으로, 이 곡도 따로 독립되지 않고 '곤도아의 추억'이라는 곡의 앞부분에 포함되어 있던 곡이었습니다. 오리지널에서는 전자 키보드와 신서사이저로 비교적 단촐하게 편곡된 음악이었는데, 디즈니 영어 더빙판에서는 현악기 연주로 대체되고 곡 후반부에 중저음의 오케스트라 협주가 추가되면서 한결 중후한 분위기를 띕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디즈니 영어 더빙판의 음악은 이러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곡들이 대대적인 편곡을 거치면서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오리지널에서는 60분 분량이었던 음악이 디즈니 더빙판에서는 90분 정도로 늘어났으며, 위의 트랙 리스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 수도 9곡이 더 많아졌어요. 1986년도 OST 앨범과는 달리 다른 곡들을 이어붙이는 구성 없이 각 장면에 맞게 음악이 세분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986년에 발매되었던 OST 앨범은 러닝타임이 40분이지만, 재편곡된 OST 앨범은 러닝타임이 6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음악 분량이 늘어난 만큼, 오리지널에서는 음악이 없는 장면인데 디즈니 더빙판에서는 음악이 나오는 장면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주제가인 '너를 태우고'는 재편곡 없이 원곡 그대로 다시 사용되었으며, 그 때문에 재편곡판 OST 앨범에는 너를 태우고가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월트 디즈니 영화사의 영어 더빙판은 원래 1998년에 모든 재녹음 작업을 마치고 1999년에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모노노케 히메가 미국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천공의 성 라퓨타의 미국 개봉이 취소되고 말았죠. 극장 개봉과 함께 발매될 예정이었던 재편곡판 OST 앨범도 마찬가지로 판매가 연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편곡판 OST 앨범은 디즈니의 영어 더빙판이 미국에서 비디오로 발매되기 1년 전인 2002년에 일본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디즈니 영어 더빙판에는 파즈 역에 제임스 반 더 비크, 시타 역에 '엑스맨(X-Men)' 시리즈의 애나 파퀸, 악역인 무스카 역에 '스타 워즈(Star Wars)' 시리즈의 마크 해밀 등 성우진에 호화 캐스팅이 동원되었습니다. 다만, 어딜 어떻게 봐도 어린 소년인 파즈의 목소리를 성인 남성 배우인 제임스 반 더 비크가 맡게 되면서 파즈의 목소리가 제법 나이 들게 느껴져요. 영어 더빙 제작진은 작중 파즈의 행보를 감안하여 목소리 연령을 높이려 했다고 밝혔는데, 오리지널 극장판을 먼저 접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큽니다. 더불어서, 파즈는 '팟주'에 가깝게 발음되고, 시타는 '시다' 혹은 '시라'에 가깝게 발음돼서 영 어색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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