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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허슬 번역 후기 & 자막 A/S 조공

작은평화 작은평화
10242 2 33

http://subtitler.net/archives/7191

아메리칸허슬은 지금껏 제 번역 인생 중에 제일 힘든 작품이었어요. 심지어 뉴스룸보다 힘들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대사가… 말도 안 되게 많습니다. 그것도 하나 같이 위트가 철철 넘치는 대사들이라 함부로 누락하기도 뭐한… -_-;; 번역을 세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재번역을 두 번 했거든요. 거의 처음부터 다 뒤집었어요. 제가 받은 대본은 대사들이 summary 수준이었고 캐릭터들은 작정을 한 것처럼 애드립을 뱉어냈어요.(브래들리 쿠퍼의 혀를 뽑아서 채를 썰고 싶었어요) 당연히 대본에 누락된 대사가 말도 안 되게 많았구요. 그 상태로 번역을 했는데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다시 보니 누락된 대사가 워낙 많고 캐릭터는 쉬지 않고 중얼대서 화면과 자막의 이질감이 컸습니다.

혹시나 제가 이런 말해서 지레 겁먹는 분이 계실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자막 읽다 지치는 영화는 아니라는 거. 제가 근 1년간 본 코미디 영화 중에 가장 빵터지는 영화라는 거 말씀드립니다.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 가볍게 빵빵 웃으면서 보고 나오실 수 있는 영화예요. 대사 많다고 겁먹을 건 전혀 없습니다.


무튼 그래서 갈등의 갈등을 하다가 자막 파일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영화 다운 받아 보실 때 있는 자막 파일 있죠? SMI라거나 SRT라거나.(불법다운은 범죄인 거 아시죠? -_-) 아무튼 자막 파일을 만들어서 화면에 자막을 붙여봤어요. 저야 케이블 작업을 워낙 오래해서 자막 파일은 지겹게 만들어 봤습니다. 이럴 때 참 도움이 되네요. 아무튼 그래서 영화관에서 보는 것처럼 화면에 자막을 띄워서 바로 확인하면서 재번역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재번역이 두 번 있었거든요. 자막과 화면이 너무 안 붙어서 반 이상을 뜯어 고치고 누락돼서 대본에 없던 대사도 어지간한 건 듣고 넣었어요. 빠지니까 어색해서 안 되겠더라구요. 이게 어느 정도 개고생이냐면… ㅠㅠ 2천 개가 넘는 자막을 하나하나 TC(time code)를 설정하고 캐릭터의 대사와 싱크를 맞춰야 합니다. 단순히 싱크만 맞추는 데도 반나절이 훌쩍 넘게 걸렸습니다.



렇게 피드백을 교환하고 수정하고 하면서 드디어 최종 대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특이하게 자막을 넣는 업체로 와 주실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워낙 대사가 날아다니고 요란하다 보니 싱크를 맞추시면서도 힘드신 모양이더라구요. 저도 자막 업체까지 가서 같이 자막을 확인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작업실에 앉아서 영화를 쭉 보면서 싱크를 확인하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면 옆에 앉아 계시던 편집자 분이 실시간으로 수정하시는 거죠. 이때도 제가 보낸 최종 자막과 틀린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A의 대사를 B가 하고 있다거나 세 마디를 말했는데 자막은 첫 마디째 그대로 있다거나. 이 부분을 또 하나하나 찾아서 다 수정했습니다. 바빠서 못 갈 뻔했는데 못 갔으면 난리 났을 거 같은;; 영화가 2시간 넘는 건 아시죠? ㅠㅠ…


아무튼 이렇게 아메리칸허슬의 자막이 탄생했습니다. 영화사의 담당 직원 분이 좋은 아이디어들을 주셔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끝나니까 뿌듯하더라구요. 진짜 작업 중반부쯤엔 오기가 생길 정도였거든요. 자막 파일도 오기로 만들었어요. 어지간하면 저런 짓까진 안 하는데…


이빗 오 러셀 감독은 작품마다 늘 미는 대사가 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구요. 그 부분들에 신경을 쓰느라 골치가 더 아픈 것도 있었고(꼭 반복해서 계속 쓰거든요) 어려운 대사도 많았어요. 마지막 대사는 솔직히 제가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래서 번역가 분들이 모인 네트워크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와… 해석이 다 다르시더라구요. 오죽하면 외국인 영화 감독님에게도 물어봤어요. 이분의 해석을 듣고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는데 그래도 완벽하겐 모르겠더라구요. 외국 포럼을 뒤져도 그 대사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고. 원래 제가 이해 못 하는 자막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쓴놈도 뜻을 모르고 썼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알까 싶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풀어 쓸까 하다가 거의 직역으로 썼습니다. 대사의 의미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연출자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 못 한 상황에서 번역가가 자의적인 해석을 들이미는 건 오만하고 위험한 방향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부디 재밌게 해석하시고 좋은 의미들을 찾으셨으면 해요.



지막으로 번역작가 최초로 영화 자막 A/S를 제공해드립니다. ㅋㅋㅋ.  아메리칸허슬의 첫 장면에 크리스천 베일이 탈모를 감추려고 머리를 손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라디오 뉴스가 쉴 틈 없이 흘러나오죠. 원래 이 부분도 자막이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 자막이라 화면에서 거의 사라지질 않고 계속 나와서 관객들이 크리스천 베일의 행동이나 표정을 못 보시겠더라구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못 보신 분들은 해당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이 부분이 정말 웃기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영화 전체로 따졌을 땐 아주 중요한 메타포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영화사에 의견을 드렸어요. 아예 이 부분 자막을 다 뺐으면 좋겠다고. 내용상 그리 중요한 자막도 아니고 이 자막 한 줄 읽느니 캐릭터의 표정을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 판단했거든요. 뉴스의 내용은 당시 시대상을 보여 주는 소식들이에요. 그래도 나름 고생해서 작업한 자막이라 빼자고 의견을 드리면서도 맘 한구석이 쓰렸어요(아주 몹시 많이 매우) -_-;;


그래도 궁금한 분들이 당연히 있을 거란 생각에 아래 누락한 자막을 적어 드립니다. 서비스 정신 쥑이죠? -_- ; 영화를 보신 분들도, 보러 가실 분들도 한번 보시면 좋을 거예요. 스포가 될지 몰라서 안 쓸까 했는데 마침 영화사에서 오프닝 영상을 공개하셨네요. 부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같은 날 개봉한 폼페이도 좀 팍팍 봐주세요. 화산으로 스트레스도 좀 날리시고 넵?!)

- 혹시 글을 옮기실 일이 있는 분은 긁어가지 마시고 그냥 블로그 글을 링크로 써주세요.



5시 뉴스를
전해 드립니다

코흐 시장은 노조와의
협상 재개를 당부하며

노조의 양보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PBA교섭인은
봉급 인상을 요구했고

나소에선 아기를 유기한
미혼모가 체포됐습니다

한 전범이 추방 전에
출두명령을 받았으며

대통령의 친중동 행보가
국회의 반발을 샀습니다

24시간 생생한 뉴스
WINS입니다

 WINS 5시 2분
뉴스입니다

시와 노조의 협상이
잠정 중단되었고

양측의 고성이
오가고 있습니다

노조는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터무니없는 제안이라
시를 비난했습니다

경찰 노조와
소방관 노조는

이번 연합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찰 노조 위원장은
증원을 요구했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뉴욕 시 발표에 따르면

2월까지 2~5백만 불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작은평화 작은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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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번역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낄낄거리면서 재밌게봤네요ㅎㅎ

from the feet up 번역으로 작은평화님의 깨알같은 센스를 엿볼수 있었네요ㅋㅋㅋㅋ

01:49
14.02.22.
벌꿀유자
작은평화
안녕하세요~ 덕분에 영화 잘 보고 왔습니다~ 번역하시느라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근데 이 영화에서 from the feet up이 상당히 많이 나오던데 정확한 뜻이 뭔가요?? 찾아봐도 잘 안나와서요ㅎㅎ
08:27
14.03.09.
profile image
벌꿀유자
그 대사는 영어에 없는 표현이에요. 비슷한 표현은 있어요.
"g'd up from the feet up"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쫙 빼입다라는 뜻인데요.
from the feet up은 어빙이 지어낸 자주 쓰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없는 표현을 만들어야 했어요. "발끝 휘날리게"라고.

왜 굳이 발끝을 넣었냐면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 그런 대사가 나와요.
"그렇게 오래 자신을 속이고 살았으면 발끝을 땅에 붙이고 살 때도 됐다"
여기서 원문에 있는 단어는 feet인데요.
아무래도 감독이 두 구문을 맞추려고 from the feet up이란 대사를 내내 썼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땅에 붙이다"와 구문을 맞추려고 "휘날리게"를 붙인 거구요.

발 휘날리게라도 해도 됐는데
"발 휘날리게"보단 "발끝 휘날리게"가 좀 입에 붙지 않아요? ㅎㅎㅎ
17:36
14.03.09.
벌꿀유자
작은평화
오옷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영화 보면서 발끝 휘날리게란 대사가 귀에 착 감기던데 리치가 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시드니나 어빙도 자주 썼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21:49
14.03.09.
profile image 2등

저도 DVD나 블루레이 자막 만들면서 TC 신경 쓰여서 직접 SMI 자막 만들어

오소링 업체에 넘기고 그랬던 경험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재작년에 개봉 영화들 몇개 TC도 번역가한테서 받은 자막을 직접 맞추면서

일부 수정도 봐서 DCP 제작 업체에 넘겼고요..^^;

암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은평화님 노고를 생각하면서 아메리칸 허슬 봐야겠네요.

08:05
14.02.22.
포인트팡팡녀!
작은평화

축하해~! 작은평화님은 3000000000000000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알러뷰!

13:46
14.02.23.
profile image
작은평화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 많이했는데
요새는 일감이 없어서
번역일은 거의 못하고 있네요^^
13:47
14.02.23.
profile image 3등
영화 정말로 재밌게 봤는데 이런 숨은 고생이 있으셨군요 ㅠㅠ 덕분에 두시간 동안 너무 행복했네요. 감사합니다 ^^
09:13
14.02.22.
포인트팡팡녀!
머드
축하해~! 머드님은 5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09:13
1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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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며칠 있다가 볼 예정인데..이런 자막하신분 글을 보다니..

정말 처음에 자막이 잇었다면 머리 손질의 그 표정을 못보고 넘어갔겟어요 정말 필요하지도 않는 자막인데...

아 점점 빠져가는 내머리...왜이래 저 속마음을 알것 같을까 이러면 안되는데 ㅠㅠ

01:35
14.02.23.
profile image

머리 손질하는 그 오프닝 장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오늘 보고 왔는데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더라고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20:35
14.02.23.
profile image
오홋~~ 능력자께서 회원이셨군요. 번역을 너무 잘 하셨더라구요. 덕분에 이질감없이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엔딩타이틀 올라갈때 번역자를 확인까지 했어요. 코엔형제의 영화를 번역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는.
02:40
14.02.24.
profile image
작은평화
헐 -.-;;; 화요일에 보러 갑니다. 이럴수가!!!!! 꿈이 엉뚱하게 이루어 지다니요!!!!!
02:44
14.02.24.
profile image
mcguffin
영화 참 좋아요. 좋은 것보다 앞서 영화가 재밌어요 ㅎㅎ.
인사이드 르윈도 꽤 공을 들인 작품인데 덕분에 이번 호 씨네21 인터뷰도 했어요 ㅋㅋ
즐거운 관람 되시길 :)
02:48
14.02.24.
profile image
작은평화
제가 코엔형제의 팬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ㅋ
인터뷰도 찾아볼게요. 무엇보다 누구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자세히 영화를 보셨을테니 추천을 믿을게요.
02:53
14.02.24.
profile image

우와 번역이 정말 중요한데..ㅎㅎㅎ영화 잘봤습니다!

23:49
14.02.24.
profile image
황석희 선생님, 인사이드 르윈에 이어 아메리칸 허슬까지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칸 허슬을 보며 나름의 섭섭했던 것을 일러 드립니다. 제가 아메리칸 허슬은 본 것은 심야 상영이었는데 10명 내외의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보던 차에 뒤에 앉은 사람들 몇몇이 막 웃는 거예요, 오버하면서. 나름 눈치채기로는 저 사람들 원어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러니까 내가 보는 자막 이상의 뭔가가 있구나, 생각을 하며 보았습니다. 나름의 위축감. 번역의 한계가 물론 있겠지만 선생님은 충분히, 기존 번역의 어느 한계를 넘어 원어를 못 알아듣더라도, 그런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껴요, 인사이드 르윈에서 충분히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밝혔듯이 아메리칸 허슬이란 영화가 번역에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 법한 영화라는 것 직감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원어 알아듣는다고 오버하면서 웃는 저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는 저 같은 사람과 저들의 간격을 좁혀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기대합니다. ... 죄송해요, 뭐... 저 혼자 그렇게 느꼈다는, 그냥 좀 그랬다는 얘기입니다.
03:19
14.02.25.
포인트팡팡녀!
후돌스
축하해~! 후돌스님은 5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03:19
14.02.25.
profile image
후돌스
낮에 엄청 길게 댓글을 달아드렸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다시 기억 더듬어서 씁니다 ㅠㅠ.
=================

말씀하신 소외감이나 위축감은 충분히 느끼실 수 있는 감정이다 싶어요.
그렇다고 하시니 괜히 죄송한데요 ㅠㅠ.
미국 개그는 자막에서 5할만 터뜨려도 대성공인 편이에요.
워낙 색깔이 진해서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거든요.
그걸 색깔도 유지한 채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번역작가의 일이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요.
테드19가 한국에서 부진했던 이유가 뭐였을까요?

말씀하신 자막의 방향은 제가 '궁극적인 자막'으로 생각하는 자막이에요.
문화의 거리를 느끼지 못 할 정도의 자막.
아직 제 수준에선 멀었단 얘기죠 ^^;
제 모토는 '들리는 자막'이에요.
영어를 잘 몰라도 최대한 문화적 거리 없이 공감하실 수 있는 자막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그쪽이구요.
당장 다음 작품부터 그런 경지를 보여드릴 수 있다 장담할 순 없구요.
(저는 약은 안 팝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상영관을 자주 찾아주시고 제 작품 보시면서 저 냥반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나 지켜봐 주세요.
도전이 되는 피드백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3:59
14.02.25.
profile image

앗 회원이셨군요. 무지 반갑네요. 이제 영화보는 바람에 뒤늦게 글 읽었네요.

09:07
14.02.26.
staycool~
수고 많으셨고 정말 너무 감각적이십니다~
저는 영어도 못 듣고 번역이나 대사에도 문외한이지안

My favourite~

마실만해요~

라고 하신 거 하나 겨우 듣고도 번역하신 분이 궁금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좋은 영화 제대로 봤어요ᆞᆢ^^
09:48
14.03.11.
포인트팡팡녀!
작은평화
축하해~! 작은평화님은 5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00:07
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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