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룩백> -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어떤 일이 좋아서 지치지 않고 열심히 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해서 이렇게까지 해냈다며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과 비교도 해보고. 그 사람과 알 수 없는 동지 의식이 생기기도 했을 것이고. 또는, 앞서 있다는 희열에 젖어보기도 하고. 그 열정 넘쳤던 것에 대하여 갑자기 김빠져 시시해진 적도 있었을 것이다.
<룩백>의 후지노도 마찬가지다. 후지노는 만화를 사랑한다. 미친 듯이. 후지노는 학보 만화를 통해 쿄모토를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쿄모토도 만화를 통해 후지노를 알게 된다. 그들은 각자의 만화를 보고 미묘한 경쟁의식과 서로에 대한 동경을 한다. 그들은 서로의 만화를 보고 나선 긴 시간 수련하듯 골방에 박혀서 만화만 그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들 방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연습 책들이 그동안의 시간을 가늠케한다.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만화를 그리면서 등만 보이고 앉아있던 우직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우직한 등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을 터. 하지만, 그 등의 모습을 본 사람은 극소수 아닐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조차 당신의 그런 뒷모습을 본 적이 많이 없을 것이다. 후지노와 쿄모토는 앞을 보고 나아간 게 아니라,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미래로 나아갔다.
그렇게 열심히 만화를 그렸던 것이 만화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인지 만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서로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동지 의식이던지. 중요한 건,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다. 서로의 장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작화 연출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퀴어물인가 생각들 정도니까.
그들은 함께 만화를 그려나간다. 공모전에서 수상도 한다. 만화책까지 출간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단일한 존재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사건은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인해 후지노는 혼란스러워한다. 쿄모토의 방에서 그녀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지나왔던 시간을 회상한다. 회상하는 그 많은 순간들이 4컷 만화 종이에 담겨 보인다. 아마도 후지노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시간을 뒤돌아 봤던 순간 아닐까. 그 순간 후지노의 감정은 어땠을까.
만화는 그들을 만나게 한 매개체였다. 직업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다른 한 명을 기억하기 위한 행위이자 절대 놓을 수 없는 대상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생각 들기도 했다. 만화를 그려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 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후지노와 쿄모토의 서사를 보고 있으니 뜬금없이 헤어질 결심의 한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룩백>은 <체인소맨>의 작가의 단편 만화영화다. 이 내용에 대한 원작도 존재한다. 이 작품의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감상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두 인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깊이 차이는 있겠다 생각 들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상영시간이지만 영화의 서사는 간결하면서 함축적이다. 작화도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다.
우정을 다뤘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의 탈을 쓰지 않은 사랑 이야기로도 보였다. 누군가 나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것, 그 누군가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앞으로도 그런 추억이 있길 바라고, 뒤돌아 봤을 때 그런 기억들이 그대로 남아 있길 바라며.
해변의캎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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