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간단 후기
최근 영화를 보면서 경험과 직관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상 즉 영화를 본 뒤 내 속에서 자기화함에 있어 반드시, 라고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이 두 가지였거든요.
이게 적절할 설명이 될 예일지는 모르겠으나, 제 주변 까마득한 후배 중에 특정 일본의 추리 작가를 작가 중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후배가 언급하는 작가는, 일본 내 평에서 중위권 정도 작가입니다. 아쉽게도 이 까마득한 후배가 읽은 글 편 수는 통계를 내기도 민망한 100편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 후배에게 1천 편을 읽어도 그 작가가 최고라고 생각하면 그건 너의 성향, 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직관과 경험으로 언급한 두 단어는 치환하면 "시간이 만들어낸 세월"과 "그 세월에 녹아든 감상 편수"가 훌륭한 내적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이들이 적절하고 빠르게 기능하는 "총합의 평균"으로 해석 가능할 겁니다. 그러하기에 특정에 편향한 영화에, 예를 들면 스타일은 좋지만 서사가 없다거나, 서사는 훌륭하지만 난해하기만 하다거나, 유명 배우가 출연해 화제가 만발하지만 영화는 형편없다거나 하는, 아무리 몇몇이 대단한 점수를 준다고 해도 총합의 평균에 대자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를 말하며 이렇게 니쥬가 길다는 건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해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기에 깔고 가는 잡설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네. 현재 하마구치 류스케는, 일본 최고의 작가주의 감독이자 향후 세계를 대표할 거장으로 자리매김할 게 분명한 감독입니다. 지금도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 물론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은 더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즉 위에서도 적은 총합의 평균을 내기에는 약간은 더 창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 영화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떤 감흥이나 분위기, 또는 상황이 매개해 만들어진 즉흥적인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고립되다시피 한 특정 마을을 방문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거기서 떠올린 어떤 즉흥적인 착상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결과물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뭐랄까, <해피 아워>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해 탄탄함의 정도가 덜했다고 할까요.
(만약 위 문장을 공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랑 영화 보는 관점이 비슷하신 겁니다.)
유명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시나리오를 잘 쓰는 작가이자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다만 이러한 최고 같은 단어를 쓰자면 늘 신중해야 하는 게, 제가 아무리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해도 그 해에 개봉하거나 스트리밍한 영화를 다 보기에는 물리적인 무리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극장 관람 영화 편수를 6편 정도라고 가정하면, 1년 동안 볼 수 있는 영화는 2,200편 정도이잖아요. 그런데 "가장" 같은 단어를 쓰려면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같은 바운더리의 제한을 두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거든요. 이 말은 정정해 드리고 싶은 게, 돋보이는 작가이자 감독 정도는 어떨까. 하마구치 류스케.
다만 아직은 진행 중인 감독이라 평가를 내리는 건 조심스럽죠. 향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이라. 그렇지만 저 역시 매우 좋아하고 어떤 영화라도 지지해주고 싶은 감독인 것은 사실입니다.
사담이 길었네요.
영화는 -"그럼 사슴은 어디로 갈까?"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작은 산골 마을에 글램핑장 설명회가 열린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타쿠미’와 그의 딸 ‘하나’에게 소동이 벌어진다.-라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산골 마을에 글램핑 장을 만들려는 침입 세력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악이 제거되었을 때 악은 존재하는 않는 것으로, 단순 해석 가능한 영화입니다. 반면 산골 마을을 타쿠미의 딸인 하나로 투과해 보면 순수한 타쿠미에게 틈입하는 도시 세력 즉 문명에 대입해 자연과 인간을 되돌아 보는 자아 성찰적인 영화로 바뀝니다.
틈입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명하는 제목과 연계한 영화의 마지막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흥을 넘은 감명으로 새겨지지 않았을까.
다만 <드라이브 마이 카>가 깔아간 서사나 이의 정립에 비하자면 밋밋하고 단순했던 게 사실입니다. 바냐 아저씨. 연극의 대사와 이를 통한 액자식 구조를 투영한 것도 모자라 액자의 바깥, 관객에까지 영향을 미친 완벽했던 영화, 즉 이에 비하자면 성찰의 정도나 무와 유, 문명과 비문명, 자연과 개발 등 대립을 통해 대조하고 대유하며 사유에 다다르는 과정은 분명 기존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 깊이감에 있어서는 '준비가 잘 되었다'기보다는 즉흥적이지 않았던가.
물론 이 영화를 통해 풍경 즉 자연과 인간, 그리고 소리와 말의 있고 없음을 통한 대비가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은 탁월했습니다. 역시 여기서 앞 문장을 제한하거나 어느 정도 부정하는 부사인 "다만"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결론하자면 바로 "대사의 없음, 즉흥적, 준비성" 등이겠지요.
즉흥적이었을지 모를 영화의 주제 즉 착상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 즉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되 하마구치의 장점이었던 대사를 최대한 자제한다, 그리고 완벽했던 영화의 상황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면 최대한 준비하지 않음으로 여백을 만들어낸 연출한다, 같은. 그렇지만 제가 이렇게 표현했다손 할지언정 이 영화가 다른 영화에 비해 못 하느냐? 절대 아닙니다. 하마구치의 영화를 보아왔던 입장에서 적은 기술이지 타 감독 즉 타 영화와 비교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껏 적은 내용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기고하는 글이라면 이렇게 표현하겠죠.
절대적인 자연과 한낱 스치기도 어려운 미미한 인간의 대비를 악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대유해 고도로 절제한 영화다, 라고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별점 다섯이라고 기준하면 이 영화는 저에게 둘 반 정도. 즉 기존 하마구치 영화에 비해 아쉽다는 거였지, 이 영화가 절대로 영화적으로 낮잡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러하기에 조금 편하게 본 하마구치 영화였습니다.
추천하느냐고요? 당연합니다.
이런 영화는 보고 저장해 두었다가 특정 경험이나 직관이 차곡차곡 내재화하여 숙성될 때 자기화시킬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거 최고야, 하고 당당히 말하는 순간이 타인에게 무식하거나 아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때, 그때 말이죠. 자기화하여 해석이 필요한 반드시 보았으면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하마구치 류스케, 정말 영화 잘 만듭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도 기대하게 되는 감독임에는 분명합니다. 총합의 평균에 대비해 제가 가장(제가 위에서 썼던 최고나 가장 같은 말의 의미를 되짚어 주시면 의미가 깊게 이해되실 겁니다) 좋아하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현 시점 일본 투 톱 감독이 아닐까.
추천인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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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말 잘 만듭니다. 이 감독에게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91266069
늘 좋은 글 올려주어서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리뷰 잘봤습니다.
늦은 밤인데 하루 마무리 잘하십시오.
늘 좋은 일 가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