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아웃 (2024) 오랜만에 보는 걸작 SF. 스포일러 아주 약간.
이 드라마는 딱 이런 느낌이다.
존 포드감독의 걸작인 "수색자"를 레퍼런스로 삼아 만든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황량한 사막을 헤메다니는 다크한 안티히어로. 잔인하고 비정하고 그러면서도
내면적으로 상처입고 황량한 영혼. 가망 없는 목적을 찾아 수십년을 헤메다니는 암울한 여정.
이 드라마에서는 사막 대신, 핵전쟁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폐허가 주무대다. 하지만 그 폐허의 모습은 위 사진의 사막과 아주 흡사하다.
이 폐허 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가망 없는 방랑을 하는 사람들이다. 각자 간절한 이유들이 있다.
그 목적 때문에 이백년 동안 이 폐허와 방사능 속을 헤메다니는 절망스런 남자가 주인공이다. 딱 "수색자"의 존 웨인 캐릭터다.
전성기 마블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드라마 내내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켜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끔씩 느슨하거나 쉬어가는 부분이
있을 법도 하건만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아주 다른 배경의 인물들이 주인공 그룹을 이룬다. 이들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황무지를 각기 다른 이유로 헤메다닌다.
마카로니웨스턴영화 비슷한 느낌도 난다. 하지만 마카로니웨스턴영화 주인공은 총솜씨가 있고
권선징악이라는 안심되는 결말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폭력과 잔인함이 일상생활의 방식이
되어있으며, 이 폭력은 끝없는 고통이 표출되는 한 방식이다. 악역조차도 혼자 안 보이는 데서는 자살하려고 입에
총구를 쑤셔박는 세계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서 진정한 악역은 누구일까? 사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주제다.
이 드라마는 아주 미국의 지금 현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부자들은 엘리트의식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담을 높이 쌓은 다음 거기 숨어서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황무지에서 방사능으로 가득한 물을 마시고 도마뱀을 먹고 사는데,
그들은 케익이며 커스터드며 심지어는 캐비어까지 먹는다. 언젠가 방사능이 사라지면
다시 담으로부터 나와 엘리트가 되어 예전인류세계를 재건하는 데 앞장서리라는 계획은 가지고 말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위기를 낳은 것은 뭐다? 이윤을 추구하느라 모기지대출을 저소득층에게까지
마구 빌려준 대기업들이다. 경제 내에 위험을 엄청나게 축적시켜 놓고 뻥하고 터지자
국민들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착복한 대기업들이다. 돈을 대기업에게 다 빼앗기고 사람들은 가난해진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빈민층구역에 몰려들어 바글거리며 산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책임을 진 대기업은 없다.
사람들이 화가 나서 월스트리트로 몰려들어 시위하자 명품옷을 입고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비웃던 것이 대기업 사람들이다. 자기들만의 담을 세워놓고 마치 금융위기라는 것이 없었다는 듯 안락하게 산다.
이 우스꽉스러우면서도 비극적인 세계를 SF쟝르 안에 재현해놓는다.
담장 안에서 태어나,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행복하게 소규모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던 세계 속의 주인공이 담장을 나오자 발견한
진실은 이것이다.
아주 잘 쓰여진 각본이라서 여러가지 주제들을 심도있게 녹여넣으면서도 드라마가 번잡하지 않다. 깔끔하다. 단, 매카시광풍을 연상시키는 공산주의 색출장면은 좀 낡은 감이 있다. 너무 많이 나와서 클리셰화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상징을 생각하지 않고서라도 이 드라마는 아주 재미있다. 마카로니웨스턴을 SF물로 변환하였기에 모든것이 탄탄하다. 수많은 마카로니웨스턴영화들이 등장해서 확고하게 수립한 클리셰며 줄거리며 하는 것을 드라마 내에 가져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나온다. 그래도, SF물로 완벽하게 변환시킨 세계관 속에서 아주 개성적인 인물들이 나와서 개연성 있는 사건들을 벌이자, 이런 것들도 아주 생생하게 살아난다. 새롭게 보인다. 기존 영화의 기계적인 차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들을 잘 살리는 방법을 안다. 처음 몇십분 본 다음, 이 캐릭터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면서도 개성적인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선역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역도 아니다. 이 모순된 세계를 살아가다보니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들 끝없이 고통 받는다.
그러고보니, 서로 괴롭히고 사람들을 죽여대고 했어도, 그들 중 자기욕심을 추구한 사람들은 없다. 순수하게 자기 가치관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위기에 처한 자기 가족을 찾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지랄맞은 세계에서는,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모가지를 자르고 해야 한다. 주인공이 아무리 순수해도 말이다. 아주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세계를 만드는 것이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대기업-권력자들은 또 무엇인가? 너무 음모론스러운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주제는 이제 시작이고, 시즌2에서 본격적으로 이것을 다룬다고 하니 그저 기대가 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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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재밌게 즐겼던 세계관인데.. 그 원작 게임 배제하고도 잘 만든 드라마인가 봅니다.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