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가여운 것들(Poor Things, 2023): 요상하고 충격적이고 황홀하고 대단한 구원의 대서사시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가여운 것들>
처음 30분, 있어보이려고 너무 꾸민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반을 지나면서, 연기와 미술은 나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후반부에 다다라, 이 영화는 내 예상이랑 다름을 직감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뭔가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죠.
결국 2회차를 했습니다.
이 영화는, 개 쩝니다.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저는 본래 특정 영화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별도의 텍스트가 필요한 경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한 그릇의 멋진 요리여야 하죠.
현실이나 역사를 다룬 영화의 사회문화적 배경지식이라는 피치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예 별도의 레퍼런스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불완전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작년에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과도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는 거부감까지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습니다.
영미문화권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최초의 SF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그저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위상을 지녔고,
따라서 이 정도의 텍스트라면 해당 문화권의 기본지식인 수준이죠.
아주 간략하게 줄거리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프랑켄슈타인'은 본디 어느 한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지적 탐구의 결정체로 시체를 기워 크리처(괴물)를 만들었죠.
그 괴물은 그저 힘만 센 야수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모습은 흉했고, 인간사회에 적응할 순 없었으며 여러 사고를 치고 말죠.
크리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자신의 아내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 요구를 들어주어 괴물의 아내가 될 다른 크리처를 만들어내지만...
이런 괴물이 또 있고, 심지어 만약 번식까지 하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결국
아내가 될 크리처를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괴물은 절망하며 복수심에 불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가족을 죽이고 말죠.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괴물은 결국 인간사회를 등지고 북극으로 떠나며,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시 복수를 위해 북극을 헤매다 결국 외로이 죽고 맙니다.
괴물 역시 이러한 파국을 개탄하며 자결을 하게 되죠.
이 줄거리를 보신 분들은 아마 묘하다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완벽한 안티테제입니다.
페미니즘 영화가 맞다. 그러나...
<가여운 것들>이 페미니즘 영화냐? 라고 물으면
당연히 답은 YES입니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창조주이자 남성인 보호자 '갓윈 벡스터(윌렘 대포)'의 보호, 동시에 구속을 받던
'벨라 벡스터(엠마 스톤)'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좁은 집을 벗어나 세상을 경험하며 자아를 찾고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흑백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는 첫 장면이 덩컨 웨더번과 벨라의 성관계 장면입니다. 보호자가 시키는 대로만 하던 벨라가 구속을 벗어나 스스로의 선택(덩컨 웨더번을 따라간 것) 끝에 성에 눈을 뜸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주체를 경험하여 첫 성장을 이루는 부분이죠.
아주 정석적인 페미니즘 영화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그게 다가 아니란 사실이죠.
영화는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 '해리'의 손에 이끌려 간 알렉산드리아에서 벨라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합니다. 실오라기 하나조차 걸치지 못한 빈민들이 빈곤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이죠.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이 사건 직후, 벨라의 말문이 트입니다. 이전에는 아주 유아적인 단문 수준의 표현만 가능하던 벨라가 유창한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죠. 강한 정신적인 충격은 벨라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벨라의 성장곡선은 아주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벨라는 그저 덩컨 웨더번의 돈을 아무에게나 기부해버리는 아주 어린 수준의 기부를 행하다가,
이후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성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스와이니 부인 앞에서도 본인의 할 말을 다 하죠.
매음굴에서도 벨라의 매춘은 남성에 짓밟히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반부에선 오히려 성관계보다 대화와 놀이에 집중하기도 하죠.
영화 중후반, 벨라가 동료 투아넷과 사회주의 모임에 참여하는 부분은 아주 노골적입니다. (다만 사회주의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벨라의 성장을 보여주고 벨라가 시도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 정도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후반부, 영화는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시도합니다.
시작은 연민 한 스푼, 돌고돌아 구원으로 결말짓다
벨라와 함께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벨라의 창조자, 갓윈 벡스터 박사입니다.
벡스터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갖은 학대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박사의 아버지는 갓윈을 데리고 온갖 생체실험을 했고, 갓윈 박사는 약물과 장치 없이는 음식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런 호로아버지(..)가 의외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길러내는 의과대학을 설립했었습니다.(초반에 언급됩니다.) 이게 힌트일 줄은 저도 몰랐었네요.
극후반부, 죽음을 앞둔 벡스터 박사는 돌아온 벨라에게 이렇게 말하죠.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연민을 가지고 메스를 들라고 말하셨지."
그렇습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갖은 기행으로 매드사이언티스트처럼 보였던 갓윈 벡스터 박사와 그 아버지는, 사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메스를 들었던 것이고,
벨라 역시 벡스터 박사의 연민으로 죽음에서 돌아왔으며,
그런 벨라는 성장하며 세상을 여행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합니다.
한가지 더, 성 불구로서 아이를 가지지 못해 가정을 꾸릴 수 없었던 벡스터 박사는 결국 자신이 행한 연민으로,
벨라와 맥스라는 새로운 가족의 따스한 품에서 죽는 것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벡스터의 연민은 돌고돌아 결국 자기 자신을 구했네요.
구원 이야기. 마지막 엔딩에 깔린 음악 혹시 들으셨나요? 마치 찬송가 같았죠.
초반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했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크리처를 실험대상만으로 대했고 결국 파국을 맞았지만,
연민 한 스푼. 그 연민 한 스푼이 <프랑켄슈타인>과 <가여운 것들>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의 오마주이자, 안티테제이자, 완벽한 한풀이입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끝이 없다
제가 리뷰한 내용은 제가 가장 감명깊게 보았던 포인트, 이 외에도 이 영화의 매력은 끝이 없습니다. 말할 것도 없는 엠마스톤과 배우들의 연기, 게다가 아카데미를 휩쓴 분장, 미술, 의상. 청불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꼭 필관을 권합니다.
오늘 <가여운 것들>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봤던 <괴물>에 견줄만한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는 올해의 no.1 이네요. 앞으로 더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렙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리뷰가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415144600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과잉의 스타일 성묘사, 특정 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우화 같아서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