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2
  • 쓰기
  • 검색

복수는 나의 것 (1979) 살인을 통해 이 남자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1329 1 2

복수는 나의 것이 

당시 사회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 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인공 에노키즈는 연쇄살인범이다. 

뭐 이거야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는 많으니까 특별할 거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살인은 좀 과하게 말하자면, 최근 벌어진 신촌역 칼부림 사건 CCTV 비디오 수준이다. 

칼로 한번 푸욱 찌르면 죽는 것이 아니라, 안 죽는 것을 사오십번 난자해서 죽인다. 그 동안 피해자는 

온갖 고통과 공포를 맛보면서 살려달라고 에노키즈에게 애걸한다. 이것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되어서 

당시 사회의 갖은 지탄을 받았을 것 같다.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딸때문에 못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남자나, 

그런 부탁을 못 들은 체하고 죽을 때까지 수십번 칼로 난자해 죽이는 에노키즈나 지극히 현실적이다. 

왜 이런 에노키즈를 주인공으로 했는지, 그리고 왜 살인장면을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자세하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살인이라는 것이 왜 잔악한 범죄인지 뼈 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인간의 의지라는 것도 얼마나 연약한가? 칼로 혈관을 잘근잘근 썰어 놓으면, 그 어떤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도 힘 없이 죽고 만다. 의지의 힘으로 버티며 남들보다 1초라도 더 살고 죽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의지, 숭고함, 고귀함같은 것은 다 허상이고 과대포장이다. 

왜 이런 불편한 진실을 감독은 관객들에게 뼈 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걸까?  

 

이 영화에서 에노키즈는 히어로도 안티히어로도 아니다. 영화는 아주 건조하게 그의 살인행각을 쫓아간다. 

에노키즈는 영웅적으로 그려지지도 않고 찌질하거나 잔악하게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냥 살인을 있는 그대로 다큐멘터리적으로 그려낸다. 설명도 해석도 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혼동스럽다. '감독은 우리더러 이 살인행각을 보면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헨리 연쇄살인자의 초상처럼, 에노키즈만을 쫓아가면서 그린 그런 영화는 아니다.

에노키즈를 그렇게 몰고 간 사람들은 그의 아내와 아버지다. 

독실한 천주교 집사인 에노키즈의 아버지는 에노키즈가 데려온 며느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적이고 카리스마가 있고 종교신념에 따라 일상을 영위하는 에노키즈의 아버지는 아들을 간섭한다. 

하지만 에노키즈가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자,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욕정을 토로하며 나체로 덤벼든다. 

수줍고 연약한 것 같던 며느리는 성적인 주도권을 가진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쫓아 버리지도 않고, 제압하지도 않는다. 가령 며느리가 나체로 덤벼들면 자기도 흥분해서 헉헉거리다가 최후의 순간에 도망가 버리는 식이다.

며느리의 성적인 권력 아래 시아버지는 무력하게 종속된다. 시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죽고 만다.

잡범으로 교도소에 갔다가 온 에노키즈는 아내와 아버지 간 근친상간 때문에 자기 자리가 집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집을 나간다. 그 이후, 에노키즈는 연쇄살인마가 되어 세상을 떠돈다.

이 말인즉, 에노키즈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현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아내와 에노키즈의 비중은 4:6 정도이다. 이 영화를 그냥 에노키즈의 범죄물이라고 생각하고 본 사람은, 아버지-아내의 근친상간이 에노키즈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데 놀랄 것이다. 

에노키즈에게 강X을 당하고 정조관념 때문에 그와 결혼당한 아내는 시아버지에게 성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그를 위압한다. 견디다 못한 시아버지가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며느리를 강X해달라고 한다. 욕구를 풀어주어서 자신에게 덤벼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며느리가 한 수 위다. 동네 아저씨랑 섹X하면서 아버님 아버님하고 큰 소리로 신음을 지르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근친상X을 알게 된다.

 

여기서 에노키즈의 아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처음 에노키즈가 데려온 여자를 보고, 천주교도가 아니라며 비난하던 근엄한 원칙주의자 아버지는 사실 얼마나 연약하고 심지가 얕고 위선적인가? 이것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에노키즈의 아내와 아버지 간 근친상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든, 이것이 에노키즈를 낳은 것이다. 

제목 그대로 복수는 나의 것이다. 에노키즈가 복수하는 대상은, 아버지와 아내일 수도 있다. 혹은, 아버지와 아내가 상징하는, 사회적인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수수께끼 장면도 이런 면에서 보면 설명된다. 

아버지와 아내는 에노키즈의 뼈를 바람에 날려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에노키즈는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악몽으로서 혹은 죄악을 상기시켜주는 아픈 상처로서 달라붙어 있으려고 한다.

그들의 대사에 따르면, 에노키즈의 뼈를 바람에 날려 보내고, 홀가분하게 진짜 결합하려고 한다. 그런데 에노키즈의 뼈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에노키즈는, 아내와 아버지에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악몽이 아니다. 늘 현재진행형으로 그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사건이다.

 

세상을 떠돌면서, 에노키즈는 자신이 피도 눈물도 없이 살해해야 할 대상들을 만난다.

하지만 여관집 여주인 하루와 그 어머니 히사노는, 에노키즈만큼이나 세상에 복수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히사노는 군국주의 희생물이다. 히사노는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다. 그 때문에, 히사노는 마을사람들에게 인간 이하 취급을 받고 공공연하게 모멸해도 좋을 이지메 대상이 된다. 

여관집 여주인 하루는 재일교포다. 마을사람들에게 경멸을 받으며 산다. 

히사노와 하루는, 자기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마을 유력자에게 몸을 팔고

그의 스폰으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 간다. 

하지만 그들은 에노키즈처럼 살인을 저지르거나 할 용기는 없는 사람들이다. 자살할 용기도 없고. 

그들은 자기 학대와 자기 모멸에 빠져든다. 그들은 에노키즈의 정체를 알게 되자, 무서워하기는 커녕, 기뻐하고 반긴다.

 

당시 일본사회를 정교하게 상징하고 비판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에노키즈에 대한 영화라기보다, 그런 괴물을 낳은 에노키즈의 아내-아버지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일본사회가 괴롭히고 이지메하던 하루-히사노에 대한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에노키즈는 정직하게 그들을 투영하는 계측기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에노키즈의 잔학한 살인행각은 에노키즈의 아내-아버지의 죄를 정직하게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1

  • golgo
    golgo

댓글 2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한국의 거장들도 많이 영향받은 작품이죠.
17:46
23.08.10.
BillEvans 작성자
golgo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당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19:18
23.08.1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4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개막식 행사에 초대합니다. 7 익무노예 익무노예 3일 전13:34 1509
공지 '드림 시나리오'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51 익무노예 익무노예 24.05.10.09:31 4466
HOT 2024년 5월 19일 국내 박스오피스 2 golgo golgo 3시간 전00:01 738
HOT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에 대한 인상 "평화로운 악... 3 Sonachine Sonachine 6시간 전21:19 719
HOT 코믹스 웨이브 단편 애니메이션 20일 0시 공개 3 GI GI 4시간 전23:05 331
HOT '자자 빙크스' 역으로 25년 동안 고통 받은 배우 2 카란 카란 4시간 전23:17 981
HOT 화성에서 온 락스타를 기억하며 3 Sonachine Sonachine 4시간 전23:39 312
HOT '골든 카무이' 재밌네요. 2 하드보일드느와르 4시간 전22:57 569
HOT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호주 대형 거리 벽화 3 NeoSun NeoSun 4시간 전22:52 626
HOT 윤아 인스타 - 칸영화제 ‘악마가 이사왔다’ 부스 2 NeoSun NeoSun 5시간 전22:33 1119
HOT 이장우 가필드 더 무비 무대인사 2 e260 e260 5시간 전22:00 542
HOT <더 에이트 쇼> 짧은 노스포 후기 2 사보타주 사보타주 6시간 전20:47 1645
HOT 여기저기서 따온 클리셰 범벅한 플롯을 잘 섞은 "더 에... 4 방랑야인 방랑야인 7시간 전20:37 848
HOT 스필버그의 최고작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12 Sonachine Sonachine 7시간 전19:46 1353
HOT 리암 니슨,액션 스릴러 <호텔 테헤란> 출연 3 Tulee Tulee 7시간 전19:49 843
HOT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감독 "요즘 만드는 건 이세계물 ... 2 호러블맨 호러블맨 8시간 전19:15 985
HOT 디즈니 플러스) 삼식이 삼촌 1~5화 - 간단 후기 4 소설가 소설가 8시간 전19:13 1386
HOT 삼식이삼촌 팝업 인증샷 6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8시간 전19:04 545
HOT 골든 카무이 영화가 공개되었습니다 3 카스미팬S 9시간 전18:36 701
HOT 더 에이트 쇼 단평 6 라인하르트012 9시간 전18:34 1184
HOT 졸업 3화까지 보고 2 라인하르트012 9시간 전18:27 554
HOT [그녀가죽었다] 예상되는 전개. 그럭저럭~~ 3 화기소림 화기소림 10시간 전17:11 576
1137194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00:17 187
1137193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00:14 307
1137192
normal
중복걸리려나 3시간 전00:08 350
113719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0:06 298
1137190
image
golgo golgo 3시간 전00:01 738
1137189
normal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23:52 299
1137188
normal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23:45 415
1137187
image
applejuice applejuice 3시간 전23:45 363
1137186
image
Sonachine Sonachine 4시간 전23:39 312
1137185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3:33 310
113718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3:28 315
1137183
image
카란 카란 4시간 전23:17 981
1137182
normal
GI GI 4시간 전23:05 331
1137181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3:02 231
1137180
image
GI GI 4시간 전22:59 520
1137179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4시간 전22:57 569
1137178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2:52 626
1137177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2:33 1119
1137176
normal
totalrecall 5시간 전22:15 338
1137175
image
e260 e260 5시간 전22:00 542
1137174
image
e260 e260 5시간 전21:59 365
1137173
image
용산여의도영등포 6시간 전21:24 318
1137172
image
Sonachine Sonachine 6시간 전21:19 719
1137171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1:16 744
1137170
image
강약약약 6시간 전21:03 232
1137169
normal
사보타주 사보타주 6시간 전20:47 1645
1137168
normal
방랑야인 방랑야인 7시간 전20:37 848
1137167
normal
totalrecall 7시간 전19:58 1800
1137166
normal
무비카츠 무비카츠 7시간 전19:51 394
1137165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9 843
1137164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9 257
1137163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9 220
1137162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8 185
1137161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8 159
1137160
image
Tulee Tulee 7시간 전19:47 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