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인어공주] 리뷰 - 파격적인 캐스팅에 보수적인 각색
디즈니의 실사 영화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2023)]가 드디어 오늘 한국 개봉했습니다. 파격적인 캐스팅에 보수적인 각색, 디즈니의 세계관과 전략, 그리고 핼리 베일리와 멜리사 맥카시의 연기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실사 영화 전략
디즈니 스튜디오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콘텐츠 회사들 중 하나입니다. 2010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0)]를 시작으로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실사로 옮기고 있는 디즈니는 대부분의 작품이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현시대의 터치를 더해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신데렐라 (2015)]와 [정글북 (2016)]은 원작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와 실사 영화로 처음 이야기를 접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반면 [미녀와 야수 (2017)]와 [알라딘 (2019)]은 원작에 없었던 성소수자 캐릭터를 추가하거나 여성 캐릭터의 강인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을 넣어 관객들의 시야를 확장하고 새로운 시대 디즈니 영화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죠. 실사화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부는 다양성 존중 흐름의 영향을 받아 레벨 업 되는 것은 디즈니 팬으로서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인어공주 (1989): 디즈니 르네상스의 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1989)]는 디즈니 르네상스의 문을 연 작품으로, 디즈니 작품들 중 가장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화 [인어공주 (2023)]는 이런 거대한 작품에서 논란이 될 만한 캐스팅을 앞세워 파격적인 시도를 했는데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디즈니를 대표하는 작품들 속 대부분의 여성 주인공은 백인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나오는 디즈니 실사 영화 주인공들을 모두 백인으로만 캐스팅한다면 시대에 뒤처지는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았겠죠. 디즈니는 이를 인지하고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지금 백인으로만 주요 캐릭터를 장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인어와 인간의 화합을 다루는 이 영화가 파격적인 캐스팅을 시도하기에 적절한 작품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파격적인 캐스팅에 보수적인 각색
그렇게 디즈니의 상징적인 캐릭터들 중 하나인 에리얼에 디즈니 백주년을 맞이하면서 변화를 줄 것이라 예측했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애니메이션과 거의 비슷합니다. 세부적으로 더해진 설정들이 있긴 하지만 영화의 큰 서사에 그다지 영향을 주는 것들은 아니죠. 34년 만에 나온 스토리가 원작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물론 이 작품으로 인어공주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겠지만 디즈니에게는 아이들 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작품이 이토록 노력 없는 실사화로 파격적인 캐스팅에 보수적인 각색을 보여준 것은 오랜 디즈니 팬으로서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인어공주 (2023)]의 이런 발전 없는 서사가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 작품들의 정체기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는데요. 단순히 오래된 2D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부활시켜서 디즈니의 유산을 이어가려는 작품에는 이제 더 이상 팬들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을 굳이 큰돈 들여 스크린에 부활시키는 데에는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 작품들의 정체기
디즈니가 실사 리메이크를 하는 데 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어공주 (2023)]는 [라이온 킹 (2019)]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롭 마샬 감독은 CG 작업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실제 바다의 생태계를 구현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나 과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런 사실적인 실사화가 진짜 관객들이 원하는 비주얼일까요? 디즈니의 기술대잔치라고 봐도 좋았던 [라이온 킹 (2019)]은 많은 이들로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인어공주도 이 문제를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했죠. 물론 영화 속 세바스찬은 꽤 웃깁니다. 다비드 디그스의 능청스러운 연기 덕분에 친근감이 더해졌습니다. 스커틀도 아콰피나의 연기가 워낙 출중해서 작품 속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하지만 플라운더의 비주얼은 정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지 원작 애니메이션의 팬으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영화의 명장면들 중 하나로 꼽히는 'Under the See' 부분에서는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영화의 명장면이자 실사화의 단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현의 다양성이 무한했던 애니메이션을 뛰어넘는 감동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아직까지 디즈니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실사화의 아주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핼리 베일리와 멜리사 맥카시
영화 [인어공주 (2023)]는 장점도 분명한 작품입니다. 에리얼을 연기한 핼리 베일리는 혼자만의 힘으로 스크린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자신만의 인어공주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목소리가 좋은 것은 물론, 호기심 많고 적당히 철없는,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해하는 순수한 10대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죠. 중반부 이후로 스토리에 탄력이 붙으면서 인물들의 관계도 흥미로워지고 화려한 연출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울슐라를 연기한 멜리사 맥카시의 장면들은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울슐라의 퇴장 장면은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었지만요.
디즈니의 세계관
디즈니는 결국 흑인 인어공주의 캐스팅을 통해 [인어공주 (2023)]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인어가 화합을 이루는 것처럼 흑인과 백인도 오랜 갈등과 반목을 넘어 화해하고 서로 잘 어울리는 동화 같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리얼의 언니들이 각각 다른 인종들로 등장하는 것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디즈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았죠. 물론 그 이면에는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는 디즈니의 야심 또한 포함되어 있겠지만 말입니다.
영화 [인어공주 (2023)]는 디즈니의 실사 리메이크 작품들 중 하나로, 파격적인 캐스팅과 디즈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핼리 베일리와 멜리사 맥카시의 연기가 빛나는 이 작품은 디즈니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죠. 하지만 보수적인 각색과 실사화의 한계로 인해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디즈니의 노력과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디즈니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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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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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정치적 방향성과 고전 동화 소재는 충돌할수밖에 없네요. 좋은 글 봤습니다.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요. 망치긴 싫습니다.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저도 실사판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멜리사 맥카시 노래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만큼은 보길 잘했다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일단은 '호'로 보이는데, 맞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