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러브 앤 썬더] 간략후기
<토르: 러브 앤 썬더>를 개봉일 아이맥스로 보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부정적 평가의 비율이 좀 더 높은 엇갈린 평가를 접해서 기대치를 내려놔서인지,
생각보다 실망감이 크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짧지 않은 여정을 이어온 프랜차이즈로서는 아쉬운 성과였습니다.
'신적 존재'인 주인공의 특성을 바탕으로 가볍지만은 않은 화두를 유머러스하게 짚으려는 감독의 의지와,
MCU의 핵심 캐릭터로서의 무게감 있는 행보가 다소 엇갈린 듯해 시도는 야심찼으나 절반의 성공에 머무른 듯 합니다.
인간 세계로 내려와 인류를 수호하는 영웅이 된 후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연인 제인(나탈리 포트만)과의 이별이라든지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를 비롯한 동료들의 죽음 등
모진 풍파도 적지 않았기에, 번아웃이 온 토르는 '엔드게임' 이후 은둔과 수련의 생활을 이어갔더랬습니다.
그 와중에 가오갤 친구들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우주 곳곳을 누비며 '토르 어드벤처'를 펼치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토르는 이른바 '신 도살자'라 불리는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우주 곳곳의 신들을 죽이고 다니며
다음 타겟으로 지금은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은 토르의 고향 아스가르드를 노린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발키리(테사 톰슨)가 왕으로 있는 '뉴 아스가르드'를 오랜만에 찾은 토르는 고르가 이끌고 온 그림자 괴물들과의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그곳에서 헤어진지 8년 7개월 6일 지난 전 여자친구 제인과 재회합니다.
그런데 그 제인은 토르 같은 코스튬을 입고서, 수년 전 산산조각 났던 묠니르를 마음껏 부리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토르는 어쩌다 전우가 된 제인을 비롯해 킹 발키리, 코르그(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 고르를 무찌르기 위한 여정에 나섭니다.
MCU 솔로무비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경쟁력이 미진했던 '토르' 시리즈에게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는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코미디에 능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풍부한 유머와 총천연색 비주얼을 바탕으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좌절에 빠진 토르의 각성 서사와 명화 속 신화를 찢고 나온 듯한 스펙터클까지 어우러져 트렌디함과 정통성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예고편에서부터 그 힙한 감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토르: 러브 앤 썬더>에 대한 기대감도 컸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전편에서 만개했던 개그 코드를 아주 폭발하다시피 구사합니다.
'아스가르드는 땅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가르침을 이어받아 지구 어딘가에 '뉴 아스가르드'가 터를 잡긴 했지만,
아스가르드부터가 예전의 위엄 넘치는 '신들의 땅'과 같은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는 북유럽의 관광 단지처럼 돼 있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신들의 도시 '옴니포턴스 시티' 역시 진중한 위엄보다 사치와 허세로 반짝거리고, 거기 있는 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진지한 곳을 찾기 힘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마블 영화인가 마블 패러디 영화인가 의아해질 정도죠.
아마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호불호를 타는 부분이 이런 지점일텐데, 개인적으로는 그 의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차고 넘치는 개그가 대부분 토르를 포함한 신적인 존재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제인을 비롯해 인간 캐릭터는 영화에서 소수에 머물지만, 인간들이 나올 때 영화는 웃기려 들지 않습니다.
덜어내도 그만이다 싶을 만큼 긴 분량으로 웃기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장면들에 중심에는 대부분 신들이 있죠.
영화가 가장 진지하게 접근하는 건 메인 빌런인 고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르의 서사를 통해 제시되는, '신은 마땅히 믿고 의지할 만한 존재인가'라는 담론이 어쩌면 영화의 핵심 주제일 것입니다.
이 생각보다 도발적인고 무거운 담론을 품고 영화를 보다 보면, 휘황찬란한 껍데기를 한 신들의 도시를 지켜 보면서
어쩌면 인간이 신보다 더 세상에 대해 진지할지도 모른다는 괴리감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 삶을 관통하는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우리 머리 위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눈을 맞추고 있는 현실의 존재들 사이에서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자기 안의 세계로 웅크려 들어갔던 신 찬란하신 신들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거치며,
쓰라린 만남과 이별을 거치며 비로소 믿고 의지할 존재의 자격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들은 모르는 인간의 고통을 지켜보고 경험하면서 인간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신의 자격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다만 이런 서사가 주인공인 토르를 통해 확실히 확보되고 공감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 이 영화의 허점일 것입니다.
제인과의 못다 푼 이야기, 고르와의 결투를 향해 가는 여정 등 토르가 또 한번 각성하고 성장할 만한 계기가 곳곳에 놓이지만
이들의 전개가 토르의 심적 변화와 유기적으로 맞붙지 않고 전형적인 영웅담 아래 머무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오히려 고르나 제인의 서사가 더 또렷한 설득력과 고유의 주제의식을 갖춰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도 '건스 앤 로지즈'의 음악을 활용하여 락스피릿 충만한 총천연색 세계와 무성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세계를 넘나들며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주지만, 전편만큼 인물의 각성과 맞물리며 감동을 자아내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도 그래서일 듯 합니다.
그래도 크리스 헴스워스, 나탈리 포트만, 테사 톰슨 등 기존 토르 시리즈의 주역들은 캐릭터의 개성과 감정을 고스란히 지키면서
영화를 잘 이끌어주었고, 특히 고르 역의 크리스찬 베일은 의욕 넘치게 인물의 서사를 표현하며 이름에 걸맞은 감정의 파장을 남깁니다.
임팩트 있게 치고 빠진 제우스 역의 러셀 크로우는 마치 <글래디에이터> 속 막시무스를 스스로 패러디하는 느낌도 들었네요.
<토르: 러브 앤 썬더>로 '토르' 시리즈는 MCU 솔로무비 프랜차이즈 중 가장 많은 편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의도적이든 실수든 한없이 달고 가벼워진 이번 영화에 대한 평가도 그래서 아마 이만큼 엇갈리는 것일테고요.
변화무쌍한 세계관과 캐릭터, 시간 즐겁게 보내기에 좋은 유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명확한 서사와 주제의식의 줄기를 갖고 지속적으로 무르익는 히어로 캐릭터의 일대기를 지켜보는 것.
시리즈 고유의 개성도 개성이지만 이것이 시리즈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진정 바라는 것일 겁니다.
안정성과 일관성보다 창작자의 개성에 좀 더 무게를 싣는 듯한 MCU 페이스 4의 매력이자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인 1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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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설득력이 떨어졌을거에요.
사람들이 실제로는 기대하지 않는 사랑, 믿음, 협동 이런 가치들은
머릿속까지 근육과 개그밖에 없는 토르가 하기 때문에 더 진심으로 와닿는 것임..
그런 의미에서 각본상의 기승전결은 완벽했다고 보고요
단지 비중의 문제.. 개그라든가 개그든지 개그캐릭의 비중이 치우쳐서
전체를 관통하는 메인줄기가 흔들린게 호불호의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중심을 잡고 개그를 쳐야 초반, 중반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바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줬을텐데 그러지 못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