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오비완 케노비'- 애잔함이 깃든 돌비 상영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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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이진 않지만 내용에 대한 미리니름이 있습니다. 주의해 주십시오)
<파이브 스타 스토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애니메이터이자 캐릭터/메카닉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가노 마모루가 월간 뉴타입에 30년 넘게 연재중인 작품으로, 조커 태양성단이라는 가상의 무대에서 신과 기사와 악마와 거대한 로봇과 인간형의 초 고성능 유기체 컴퓨터인 '파티마'가 펼치는 근사한 스페이스 판타지입니다. (작가 본인은 '옛날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는, 단행본 1권쯤에 이미 수만년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연표'를 먼저 펼쳐놓고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중간중간 설정이 바뀌거나 곁가지를 치는 등의 변화는 있었으나 독자 제위는 이미 수십년도 전에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다 알고 있는 상태로 그 전개를 지켜보고 있는 거죠.
'결과를 알고 본다'는 면에서 프리퀄의 대미를 장식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마지막은, 이야기를 보는 면에선 줄곧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일관하던 제게 무척이나 강렬한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선량한 이들이 패하고 잔인하게 도륙당하는 가운데, 오해와 애증의 가파른 감정선을 지나 도착한 마지막 장면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조용한 타투인의 사막을 건너 갓 태어난 루크를 오웬과 베루 부부에게 안겨주고, 이 순박한 부부가 아이를 안은 채 두개의 석양을 바라봅니다. 제가 '스타워즈를 보는 순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시퀄은 모르겠지만 프리퀄과 클래식은 무조건 영화 나온 순서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내가 네...'와 이 장면은 이야기 순서대로 보면 이 감흥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위에 언급한 3편의 마지막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 가슴이 옥죄는 느낌을 받았던 단 두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와 레아 오누이가 만나는 대목입니다. 영화의 완성도니 설정 붕괴니를 다 떠나서 그저 눈물만 줄줄 흐르더군요) 관람 당시에 적었던 글을 굳이 다시 찾아볼 필요조차 없이 이 장면이 제게 얼마나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착한 사람들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을 지상파 TV를 통해 처음 봤고, 당시엔 삭제처리된 시골 부부의 불붙은 시신을 나중에야 확인하곤 그야말로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인 <오비완 케노비> 감상을 적으면서 좀 장황하게 과거의 기억을 주워담은 건, '익히 알고 있는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이 이야기가 설령 아주 흥미진진하게 흘러갈지라도 화끈한 활극으로 노선을 잡진 않을 것이며 작품에 흐르는 큰 줄기는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회한이나 애잔함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제다이의 몰락과 함께 사막의 모래 속에 은신한 채 '새로운 희망'을 조심스레 지켜보는 오비완이 타이틀 롤인데 왜 아니겠어요. 아닌게아니라 여는 장면 자체가 오더 66으로 학살당하는 제다이들을 뒤로 한 채 어린 파다완들이 도망치는 대목입니다. 집 문가에 올라가 뭔가를 조종하는 흉내에 여념이 없는 어린 루크는 영락없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협>의 아나킨을 빼다 박았고, 어린 레아가 성장하고 있는 앨더란의 아름다운 풍광은 빛이 나면 날수록 먼 훗날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기에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그런 이유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전개보다는 일말의 애틋함이랄까 하는 걸 기대하고 본 <오비완 케노비>의 초반 2화분은, 만족스러운 한편 걱정스러움도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제다이의 긍지와 본성을 숨기며 오로지 '새로운 희망을 지켜보는 임무'에 자신을 내맡긴 채 추레하게 살아가는(자와한테 '너 냄새 지독하다'는 소릴 들을 정도면 말 다했죠) 오비완의 현재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반갑고, 시퀄 삼부작이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클래식 시리즈에 대한 오마쥬와 우아한 카메라는 훌륭합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불안함이 엿보이는데, 특정 연출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어요. 많은 후기에서 보이는 '도망 장면'이 대표적인 예로, 아역이 너무 어린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레아라는 캐릭터를 아역에 잘 반영한 점과 좋은 연기와는 별개로) '세번째 자매' 리바가 높은 곳에서 총격전의 징후를 찾아내고 그쪽으로 향하는 장면은 상당히 스피디하고 스타일리쉬한 연출로 묘사했습니다만, 이상해요. 점프와 포스를 이용하며 멋지게 달려는 가는데, 그게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합이 신통치 않습니다. 저거 하려고 온갖 폼을 다 잡고 저렇게 뛰어간거야?라는 인상... 한마디로 장면 설계가 좀 별로라는 이야기입니다만, 화끈한 장면이 많이 나올 일이 없다손 치면 액션 장면은 스토리와 관련지어서도 좀 인상적으로 연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번째 자매인 리바를 언급한 김에, 이 새로운 인물에 꽤 비중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 역력하나 캐릭터가 좀 겉도는 감이 있습니다. 눈썹 하나 까딱 않고 행성을 날려버리는 타킨 대총독 같은 분이 존재하는 것이 스타워즈의 세계관입니다만, 그 묘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담백한 게 또 스타워즈였습니다. 리바는 언행 모두 날것스럽고 매우 거침없는 인물인데 이게 음식으로 치면 굉장히 자극적인 MSG같은 느낌이에요.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기 전에 거부감부터 먼저 들게 만드는 것 같아 그 비중상 향후 어떻게 다룰지 기대보다 걱정이 좀 됩니다.
원전에 대한 존중과 오마쥬라는 차원에서 옹호가 어려운 시퀄 삼부작(제가 새로운 시대를 긍정하려고 하는 것과는 별개 문젭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소위 실드를 칠 수 없는 건 없는 거예요)의 거대한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보편적인 '스타워즈'의 세계를 일견 소소한 데서부터 매력적으로 되새기고 있는 일련의 드라마 시리즈의 행보와 스타일은 <만달로리안>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죠. '스타워즈 스토리' 라인업과 <오비완 케노비> 같은 드라마는 어떻게 봐도 프리퀄이나 미싱 링크에 해당하고 기실 이런 영역은 EU가 확실히 관리되던 시절에는 동인물의 영역에서나 건드릴 만한 소재였습니다만, 이제 디즈니가 모든 걸 레전드로 돌려버리고 새로운 캐넌을 만들어가는 현 시점에서 <만달로리안>의 성공에 고무되어 일찌기 다루는 것 자체를 터부시했던 지점(예를 들면 한 솔로와 츄바카의 만남 같은 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죠)까지 꺼내들 요량이라면, 모쪼록 좀더 세심하고 우아한 태도를 고수해 주었으면 합니다. 스타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지만 기실 사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즐기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얄궂게도, 이건 앞에서 언급한 '결말을 알고 본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네요. 장희빈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누구나 알지만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과 같은 걸지도) 그리운 인물들이나 정겨운 풍경들을 그저 투사하는 정도로 오랜 팬덤에 교태를 부리는 선에서 끝낼 게 아니라, '그래, 이게 스타워즈지'라는 정서적 울림을 잘 잡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대한 몰락의 뒤안길에서 모래바람 속에 여생을 묻었던 오비완이야말로 비장의 카드임과 동시에 양날의 칼 아니겠습니까. 2부 마지막에 아버님 소환을 예고하고 있기에 붙이는 사족인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다스 베이더는 그저 불러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한 게 아닙니다. '잘 다뤘기' 때문에 환호한 거죠.
좋은 자리에 불러주신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립니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큰 화면으로 '스타워즈'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 EST.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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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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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하는세 수많은 댓글이 달릴줄 알고 어떻게 감사드려야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는데,제가 두번째 댓글을 달게되는군요.영광입니다.
오랜 팬심과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깊이 공존하는 마음을 지니신 EST님의 감명깊은 리뷰,정말 잘읽었습니다.많은 부분이 공감되며 저또한 즐거운 관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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