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영화관 방문기 Part 2
프랑스에서는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여러 극장에서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Pathé-Gaumont의 Cinépass, UGC의 UGC illimité... 등이 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 범용성이 가장 좋은 UGC illimité를 구독했습니다
이 카드만 있으면 UGC, mk2의 멀티플렉스에서 상업영화는 물론이고, 그 외 연계된 예술독립영화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로 지난 한 주 동안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에릭 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데이미언 셔젤의 <라라랜드>, 그 외에도 <명탐정 코난 극장판 : 할로윈의 신부>, <탑건 : 매버릭>을 보러 갔어요
그냥 카드만 보여주면 영화 티켓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 영화를 정말 막 보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도 영화 보러 나갔습니다
오늘 파리에는 뇌우가 쏟아졌습니다... 제가 파리에 온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건 처음이네요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추워져서 비 오는 날엔 영화관을 가는 걸 개인적으로 꺼리는데 이번에는 오늘 보는 영화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습니다
Le champo(르 샹포) 극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보는 영화는...
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사랑은 비를 타고>입니다!
복원판이 올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프랑스에서 며칠 전에 재개봉을 했습니다
저는 도착하자마자 표를 끊고
좌석이 비지정석, 선착순이기 때문에 바로 줄을 섰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극장 바깥에서 줄을 서야하는 게 신기하면서도 굳이? 생각이 들었네요
지금은 이 극장에서 뮤지컬 코미디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어제 여기서 <라라랜드>를 봤었어요
드디어 입장합니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예술영화관에 가면 느끼는 거지만, 표에 적힌 상영시간과 입장 시간이 일치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사랑은 비를 타고>는 저녁 7시 15분 시간표였는데 입장은 7시 20분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예술영화관은 외관 말고는 시설 자체는 볼 게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바깥문에서 입장하자마자 찍은 극장 로비인데 매우 좁다는 게 느껴지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스 예술영화관은 단관이 거의 없고 대부분은 적어도 두 관 정도 있습니다
Le Champo도 1층에 1관, 지하에 2관 이렇게 있어요
(2관에는 아직 못 들어가봤습니다)
극장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80년 정도 운영되고 프랑스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극장답지 않게 인테리어와 시설이 매우 잘 되어있어요
아마 여기보단 한국의 광주극장에서 시간의 더께를 더 잘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한국은 영화관을 문화재로 지정하지는 않는데 반해 프랑스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인정하여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으면서도 보존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향유의 장소로 받아들이면서 꾸준한 시설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주말 저녁 상영시간이라 그런지 상영관 좌석이 한 80% 정도 찼었습니다
대기하던 관객들이 입장을 다 하고 바로 불이 꺼지고 상영이 시작됩니다
프랑스 관객들의 유독 두드러지는 특징이고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건데 사소한 것에도 엄청 잘 웃습니다
특히 젊은 관객일 수록 잘 웃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는 관객들 분위기는 대체로 활동적이었어요
영화 자체가 유명하고 이미 본 관객들도 많았는지 특히 유머가 많은 장면이 시작될 때는 관객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아래의 유명한 장면에서는 다들 정말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고 저도 같이 크게 웃었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도널드 오코너가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추는 'Make 'em laugh' 장면이 끝나고 박수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다른 관객들이 박수는 안 쳐서 조용해지기도..;
저는 이 영화를 7년 전에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 보고 이번에 다시 보게 된 건데, 당시 할리우드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비주얼과 더불어 진 켈리와 도널드 오코너의 현란한 탭댄스는 여전히 진기명기했고 아직도 진 켈리가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은 마치 영화가 축복을 내려주는 듯 행복해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후반부 브로드웨이 장면의 무성영화적인 몽타주를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 감탄을 했고요
스크린에 'The End'가 뜨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관객들이 다 같이 동시에 엄청 크게 박수를 칩니다
어떤 사람은 기립 박수를, 어떤 사람은 'Bravo!'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짧긴 했지만 고전의 정전에 올라있는 영화를 향해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이렇게 열띤 반응 보낼 수 있다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영화제도 아니고 특별전도 아니고 그저 재개봉된 영화일 뿐인데 말이에요
화장실을 다녀오고 극장 바깥을 나오니 하늘이 완전히 개어있었습니다
이제야 극장 외관 사진을 마음 놓고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오후 9시 20분 정도였어요
그리고 다음 영화를 보러 다른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파리의 Quartier latin(꺄흐티에 라탕) 지구에는 예술영화관들이 많아서 걸어서 여러 영화관을 금방금방 오갈 수 있어요
한 극장에서 쭉 영화를 여러 편 볼 수도 있지만, 극장마다 상영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에
극장을 옮기면서 보면 영화를 더 다양하게 볼 수 있죠
저는 약 5분 정도 걸어서
이 영화관에 도착을 했습니다
Écoles Cinéma Club(에콜르 시네마 클럽)이라는 예술영화관입니다
여기도 영화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큰 기획전 두 개를 하고 있어요
하나는 에릭 로메르 특별전입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녹색 광선>, 계절 연작 같은 널리 알려진 대표작들과 더불어서 17편을 상영하고 있어요
제가 어제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을 여기서 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큰 기획전 하나는 공포영화 특별전입니다
유럽, 미국의 고전공포영화를 중심으로 상영을 하고 있어요
이미 널리 알려진 걸작들도 상영을 하는 것이 보이지만, 한국의 시네마테크나 예술영화관은 공인된 걸작이 아니면 B급 영화에 매우 인색한 편인데 반해 이 특별전에는 조지 로메로의 <좀비><놀이 공원>이나 토브 후퍼의 <이튼 얼라이브> 같이 소수만 알고 있는 영화들도 상영을 해줍니다
(근데 2010년 리메이크작 <나이트메어>를 누가 보러 오나...?)
+<Zombie>에 대해서 찾아보니깐 이 영화가 사실 그 유명한 <시체들의 새벽>이었네요
<Dawn of the Dead>라는 영어 원제만 알고 있어서 몰랐습니다 ㅜㅜ
아까 사진에 영화관 입장을 대기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엑소시스트>를 보러 온 관객들입니다
상영표에 제목을 거꾸로 달아놓은 거 재치 있네요 ㅎㅎ
제가 보는 영화는...
공포영화 역사에 있어서 길을 낸 걸작인 <텍사스 전기톱 학살>입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과 공포를 잊지 못해서 보러 왔습니다
표를 또 끊고
입장시간까지 대기합니다
영화 상영을 수동으로 하기 때문인지 이번에도 상영시간이 지연되었어요
10시 상영이었는데 그전 영화가 그 때까지 안 끝나서 영사기사 분이 나와서 사정을 설명하고 "5분 뒤에 입장할게요"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D'accord(알겠다)"라고 말하고 기다려주는 프랑스인들...ㅇㅅㅇ
이 극장 앞에서 기다리면서 본 건데 그냥 길 지나가다가 어떤 영화 트는지 보고 그냥 바로 카드 꺼내서 표 끊고 보는 관객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The Texas Chain Saw Massacre>의 프랑스어 제목을 직역하면...
"전기톱 학살"? '텍사스'는 어디에?
10시 10분 쯤에 입장을 하고
영화가 바로 시작할 것 같아서 입장 후 거의 바로 휴대폰을 꺼서 이 사진 밖에 없습니다 ㅜ
다행히 구글맵에 상영관 전체 사진이 있네요;;
https://goo.gl/maps/xNqauxNnj7nd91gc9
영화관에 관객이 40명 정도 들어온 것 같았어요
영화가 영화인지라(?) 젊은 관객들이 대부분이었고 혼자 아니면 친구들과 같이 보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 50년 가까이 된 영화를 친구들과 극장에 같이 보러 온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전통적인 의미의) 시네필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돼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개봉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제작 당시에도 워낙 초저예산으로 찍어서 지금 보면 조악하고 웃긴 요소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되려 사실적인 느낌으로 생생하게 다가와서 불쾌한 공포가 극대화됩니다
특히 사운드를 활용하여 만들어내는 말초적인 공포는 정말 관객을 지치게 만들어요
전기톱 소리도 공포 자체지만 주인공의 사실적인 비명소리나 울리는 느낌의 배경음악까지 듣다보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위협을 실감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됩니다
슬래셔 영화 문법이 가공되기 이전의 거친 날것 느낌의 영화이고 신체절단과 같은 고어한 특수효과는 거의 없어서 현대 관객들에겐 시시할 지도 모르지만, 이미지부터 사운드까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서 관객의 심리를 찍어누르는 듯한 공포는 이 영화를 고전의 반열에 올릴 수 밖에 없게 합니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처음 볼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찜찜하고 무서웠어요..😱
(다른 관객들은 몇몇 장면에서 피식피식하면서 보긴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 11시 30분이었습니다
귀가길에서 저는 이유 없이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으며 인종차별을 처음 당해보고 집에 온 뒤에 이 글을 새벽 늦게까지 쓰고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랑스 영화관의 특별전 프로그램이 다양한데도 아시아 영화 관련 프로그램은 이마무라 쇼헤이, 왕가위 말고는 아직 못 봤습니다
+프랑스에도 관크는 당연히 있습니다. 특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일 수록 관크 출현 확률이 큽니다. 대체로 다들 조용하게 보는 편이긴 한데요, 휴대폰을 들고 영화 장면을 사진촬영하는 건 두 번 정도 봤습니다(<라라랜드>, <사랑은 비를 타고>). 반딧불이 관크도 물론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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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극장은 단차가 있는데 작은 극장은 대체로 공간 자체가 단차를 만들기 까다로워보였어요
그래도 대체로 스크린이 어느 정도 크기가 커서 영화 보는 동안 극장 단차 없는 게 크게 느껴지진 않는데 가끔 가다 이런 곳도 있습니다😅
예술영화관 연간 관객수가 프랑스의 연간 총 관객수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도 하니까요..😳😲
도시가 낭만이 있네여 ㅎㅎ 저렇게 지하로 내려가는 것부터 단차가 거의 없다시피한 영화관이라니 꼭 소극장같아여
프랑스는 멀티플렉스가 전체 극장 수의 50% 정도 밖에 안 되서 저 카드가 다양한 영화를 보는데 유용한 편인데 한국은 CGV, 롯시, 메박이 다 똑같은 영화를 틀고 있어서.. 좀 아쉽긴 하네요ㅠ
그래서 프랑스 영화관 얘기는 이 글로 마무리를 할려구요 ㅎㅎ
저 카드는 한 달에 22유로 정도 내요. 한화로 25~26000원인데 1년 약정입니다
제 앞에서 너무 대놓고 차별발언을 해서 그냥 무식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넘겼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조심할게요😄
한국은 원하는 고전영화를 정식으로 보기가 참 어려운 편이란 걸 느껴서 씁쓸해지도 해요🥲
여기 시간 적응이 아직도 안되고 있긴 해요 ㅎㅎ
일몰도 안 됐는데 시계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ㅋㅋ
최신영화 아니면 제가 이미 다 한번 봤던 영화들 위주로 보는 거예요😅
저도 코로나 전 미국에 있을때 극장체인에서 잘 사용했었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분위기가 잘 전해지는 방문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우리나라에도 정기권 카드 개념이 도입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상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파리 방문을 예정하고 있는데 여러곳들 들려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