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인천 (1981) IMDb 트리비아
<인천상륙작전>의 개봉에 앞서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자,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문제작,
<오! 인천>의 IMDb 트리비아를 정리해봤습니다.
※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제작한 영화이다.
※ 문선명은 이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예수나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영화를 고려했었다.
※ 역사상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영화이다.
※ 007 시리즈로 유명한 테렌스 영 감독이 연출하고 맥아더 장군 역의 로렌스 올리비에 외에 재클린 비셋, 미후네 도시로, 리처드 라운트리, 오마 샤리프 등 당대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 여기에 한국 배우 이낙훈과 남궁원도 가세했다.
※ 제작비는 약 4천8백만 달러이다. 이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이다. (제작년도인 1979년 당시 금액을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약 1억5천9백만 달러=1천8백억 원 이상))
※ 시나리오를 쓴 로빈 무어는 “인천 상륙작전에 있어 등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시나리오를 쓸 것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거부하였고, 다른 작가들이 그 부분을 쓰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 인천 등대의 미니어처 모델은 촬영 당시 태풍으로 박살나서 다시 만들어야했다.
※ 이탈리아, 아일랜드, 일본, 한국, 미국에서 촬영되었다.
※ 5달 동안 촬영되었다.
※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 영화를 오직 돈 때문에 출연했다 밝혔다. 그래도 역할을 위해 맥아더 박물관을 가거나 그를 실제로 알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연구를 했다.
※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분장을 하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고 한다. 올리비에는 그가 자기 자신도 아니고 맥아더도 닮지 않은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고 밝혔다.
※ 촬영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지자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추가 출연료를 요구했다. 매주 헬리콥터가 와서 그에게 돈 가방을 전달해주었다 한다. 그의 원래 출연료는 100만 달러였고, 3달 2주 동안 매주 2500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 배우 카렌 칸의 데뷔작이다. 그녀는 이 영화를 최악의 영화라 불렀으며,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영화 출연 자체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다고.
※ 섹시한 금발 사진사로 나오는 여인은 테렌스 영 감독의 부인이다.
※ 영화 평론가 렉스 리드가 특별 출연했지만 편집되었다.
※ 배우 데이빗 젠슨은 촬영 중 사망했다. 그가 출연한 모든 장면은 결국 편집되었지만 출연료 30만 달러를 받았다.
※ 대부분의 배우와 스탭은 현금으로 페이를 받았다.
※ 함대가 항구로 들어오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재촬영을 해야 했다. 조감독이 이해를 잘 못해서 함대를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게 촬영했기 때문이다.
※ 미국 국방부는 주한 미군 1,500명을 엑스트라로 출연시켰다. 하지만 통일교가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엑스트라들을 빼내고 영화 크레딧에 올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는 장면에서는 2,5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실제로 맥아더는 40,000명의 군인을 대동했다.
※ 맥아더 장군이 리무진에 타고 있는 장면에서 관중의 수가 너무 적다고 판단돼 두 번의 재촬영을 거쳤다. 한 번은 한국에서 촬영했지만 리무진 장면과 관중이 매치가 안 돼 더블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후면 투사를 이용해 장면을 완성시켰다. 이 3분짜리 장면을 촬영하는데 300만 달러가 사용되었다.
※ 문선명은 여러 차례 재편집과 재촬영을 원했다.
※ 영화의 시대와 맞지 않는 다양한 기술들이 등장한다.
※ 영화의 오프닝에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작가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한껏 발휘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 테렌스 영 감독은 영화의 최종 버전을 보고 제작자들이 멋대로 한국 국뽕 영화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 통일교는 직접 영화를 배급하고 싶어 했고, 테렌스 영 감독은 만약 그런다면 영화가 완전히 망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통일교는 결국 직접 영화를 배급하였고, 폭망해버렸다.
※ 1981년 워싱턴에서 열린 시사회는 관객들의 야유로 가득 찼었다. 전 세계 개봉은 취소되었고 약 30분가량이 편집된 버전이 미국에서 1년 후 개봉되었다. 캐나다에서도 개봉됐다.
※ 미국과 캐나다에서 약 5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 이 영화는 4천4백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초래했다.
※ 정식으로 홈 비디오나 DVD로 출시된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케이블 TV에서 방송이 되긴 했다. (현재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
리들러
추천인 1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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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모슬렘인 오마 샤리프가 출연을 했으나 문선명이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워달라고 했답니다.
ㅌㅇㄱ가 세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만한 돈이 있다는 건 저만한 권력과 영향력이 있다는 건데... 우리가 아는 거라곤 고작 보리음료 나오는 회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
듣기로는 《킹스맨》에서 대학살 사단이 일어나는 게 원작은 보수 기독교회가 아닌 ㅌㅇㄱ의 합동 결혼식이라는 얘기도 얼핏 들은 것 같아요.
한국에도 1천억대 영화가 있었다니 ~!
정리 잘봤습니다.. 그야말로 희대의 망작 ㅋㅋㅋ
영화역사상 이런 예가 또 있을까요...정말 종교의 힘(?)은 대단합니다..
통일교에서 제작했군요 ~
제작비가 어마어마하네요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