緋牡丹博徒 お竜参上 (1970) 여검객 붉은 모란. 상당히 잘 만든 수작. 스포일러 있음.
붉은 모란은 후지 스미코의 대표 캐릭터다.
큐슈에 있는 작은 야쿠자 조직 두목은 자기 딸 오류를 잘 키워 양갓집에 시집 보내는 것이 꿈이다.
야쿠자세계에 휘말리게 하는 것 따위는 절대 싫다.
그래서 야쿠자 세계와는 일절 접근을 안 시키고, 꽃꽂이나 서예같은 양갓집 아가씨 소양만 키우게 한다.
오류는 덕분에 교양 있고 기품 있는 아가씨로 자라서, 도시 제일 가는 상점의 아들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길에서 살해를 당하자 오류의 인생은 뒤바뀐다.
결혼은 파혼 당한다.
주변 야쿠자들이 덤벼서 아버지의 영역을 서로 찢어 가진다. 야쿠자 부하들도 모두 떠난다.
오류는 아버지의 유산이 이렇게 파괴되는 것이 싫지만,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오류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 지금은 힘이 없지만, 힘을 키워 아버지의 영역을 되찾고 조직을 재건하는 것이
꿈이다. 오류는 떠돌이 도박사가 된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곳에 갔을 때, 길가에 핀 모란꽃 위에 아버지의 피가 붉게 뿌려져 있었다.
그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 때문에 붉은 모란이라는 자기 별명을 짓는다.
오류는 어깨에 붉은 모란 문신을 새겼는데, 배우가 이 문신을 엄청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신 장면은 얼마 안 나온다.
이 영화는 아주 짜임새 있다.
등장인물들도 많이 나오고 그 등장인물들 모두 사연이 있고
그 등장인물들 간 상호 관계나 사건들이 꽤 복잡하고 액션이 계속 끼어든다 - 이것을 잘 정리해서
둥장인물들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 다 살리면서 꽉 짜인 구성의 영화를 만들었다.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등장인물이 없다. 그냥 액션을 살리기 위해 줄거리는 대략 기둥만 세워놓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붉은 모란 오류의 카리스마와 미모 그리고 화려한 검술을
영화 맨앞자리에 탁 내놓았다.
예전부터 걸작으로 일컬어져 온 이유가 있다.
야쿠자영화는, 미조구치 켄지감독의 영화를 많이 연상시킨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도 게이샤영화들을 아주 많이
만들었다. 아마 미조구치 겐지감독의 스타일이 대중영화 특유의 현란함과 직관적 호소력 그리고 섹스어필과
결합한 것이 야쿠자영화 스타일이 되지 않았나 한다. 야쿠자영화는 남기남식
어설픈 영화가 아니라, 굉장히 세련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슨 레퍼런스가 분명히 있는 영화들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오류는 눈 먼 창녀 소녀들을 찾아 다니고 있다.
오류는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죽어가는 병든 장님 창녀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창녀는 손으로 오류의 얼굴을 더듬는다. 그리고, 전에 오류를 만나 본 적 없다고 말한다.
오류는 떠나려다가, 죽어가는 창녀가 너무 불쌍해서 거액의 돈을 준다.
이 돈으로 포주에게 진 빚을 갚고, 고향으로 내려가 편히 살라고.
하지만, 창녀는 이 돈을 아버지에게 모두 보내겠다고 한다. 자기 동생이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둘 처지라고 한다.
여기서 학교를 그만두면 동생도 팔려와 창녀가 될 수밖에 없다.
창녀는 자기 동생만은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자리 보전하고 여기에서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아직 나이도 어린 소녀가 말이다.
줄거리와는 하등 무관하게 나오는 장면인데,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다. 굉장히 아름답다.
후지 스미코도 창녀역 배우도 연기들이 상당하다.
가난과 왜곡된 사회구조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는 소녀를 영화 시작하자마자 보여준다.
후지 스미코가 아무리 초인적인 검술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쩔 수 없다.
후지 스미코도 옛날 사람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보겠다 하는 생각을 못한다.
그녀도 야쿠자의 의리, 조직의 재건같은 것에 매달려 젊음을 보내고 있는 처지니까,
장님 소녀와 별로 안 다르다. 둘 모두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탈출할 수 없는
방안에 갇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방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오류의 절망으로 시작한다. 어설프고 생경하게 메시지를 산문적으로 전달하는 영화들과
너무 비교된다. 굉장히 시적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영화가 평범한 영화가 아닐 것임을 알게 된다.
후지 스미코는 마침내 도쿄 긴자에서 자기가 찾던 소녀 기미코를 발견한다. 눈은 이미 치료해서 더 이상 장님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한복판에 방어막 없이 던져져서 소매치기가 되어 있었다.
후지 스미코는 기미코를 구원해준다. 불쌍한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기미코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후견인 노릇을 해준다. 긴자는 말하자면, 도쿄에서 문화의 거리다. 대형 도쿄극장이 턱 하니 놓여서 도쿄의 문화 중심을 대변한다.
이번 영화의 무대는 도쿄극장이 된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신연극이 상연되고 자유연애가 연극 속에서 부르짖어진다.
도쿄극장 극장주가 기미코를 양녀로 삼는다.
그리고, 후지 스미코가 후견인으로 기미코를 도와준다. 연극 연출가는 기미코에게서 여주인공을 발견한다.
기미코는 장님이었어서 사람들을 뻔히 바라본다. 눈속에 근심이나 부끄러움이나 꺼리는 것이 없다.
연출가는 이것이 현대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데 딱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무엇을 상징하리라.
극장주를 중심으로 배우들 연출자들이 뭉쳐 예술가집단을 이루었다. 야쿠자로 번역되었지만,
이들을 야쿠자라고 부르는 것은 좀 안 맞다. 기미코는 이 집단에서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그런데, 야쿠자집단에서 이 극장을 접수하려고 한다. 이들은 진짜 야쿠자다. 예술가집단에서는 이들과 맞서 싸운다.
극장주는 입을 다문다. 야쿠자와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극장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즉, 예술을 상연하는 것이다.
결국 야쿠자들은 길에서 극장주를 참살하고 만다. 말하자면 예술을 위해 산 사나이의 순교다.
그는 복수를 말린다. 자기 복수 때문에 극장의 공연이 끊어지면 안된다. 예술가 집단은 부글부글 꿇어오르는 분노를
참는다. 그들도 동감이다.
이제 후지 스미코가 나설 차례다. 예술가집단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할 수 있을 리 있나?
해서도 안된다.
후지 스미코가 칼을 품고 난입해 들어가 야쿠자일당을 몰살시킨다.
일대 백명은 될 것 같다. 영화 내내 야쿠자들의 잔악함을 빌드업해놓아서
속이 후련해진다. 한번 죽이는 것이 웬지 아쉬운 그런 나쁜 놈들이다.
굉장히 처절하다. 특히, 사이코패스^^100은 될 듯한 야쿠자 두목은
더 처참하게 죽는다. 칼로 찌르고 베어버린 다음, 탑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피투성이가 된 후지 스미코는 당당한 영웅이 아니다. 야쿠자가 야쿠자를 죽인 것인데, 영웅적인 것이
뭐 있고 자랑스러운 것이 뭐 있나? 후지 스미코는 몰래 스러지는 것을 택한다.
예술과 사회의 주류로 당당히 올라선 기미코 곁에서 사라진다.
다른 야쿠자들은, 후지 스미코를 꺾을 수 없는 고고한 꽃이니 뭐니 하며 숭배하지만
자기 자신은 안다. 사회의 음지에 숨어사는 야쿠자다.
후지 스미코가 등장하는 야쿠자영화들 중 추천하라면 이 영화다.
앞부분의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에피소드도 좋고, 플롯이 복잡하면서도 구성이 좋다.
보통 일반적으로 말하는, 수작 혹은 걸작에 가장 근접한 영화다.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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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책방에서 후지 준코 상에 대한 책을
친구가 구해 준 적이 있지요
아직도 귀하게 보관 중인 ^^
넘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