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라스 폰 트리에, [멜랑콜리아] 왜 그따구로 만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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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서론
2. 그래서 무슨 내용인데? : 줄거리 되돌아보기
3. 근데 전개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다
4. 저스틴은 대체 왜 저러는 거야? : 저스틴의 감정 변화에 대한 분석
5. 그럼 하객들은 왜 저러는 거야? : 그들이 종말에 무심했던 이유
6. 연출은 왜 그렇게 한 거야? : 멜랑콜리아가 우울증을 표현는 방식
7. 결말은 왜 그렇게 끝나는 거야? : 완벽한 마무리란 없다
8. 그래도 이런 점은 좀 아쉬운데...
9. 글을 마치며
1. 서론
"우울증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 영화 '멜랑콜리아'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 '안티크라이스트' 를 통해 하드코어 호러의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전작에 비해 다소 정적인 작품 멜랑콜리아를 내놓았다. 그러나 멜랑콜리아는 폰 트리에 감독이 '안티크라이스트보다 보기 괴로운 영화' 라고 할 만큼 어둡고 음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죽하면 제목이 멜랑콜리아, 즉 '우울증'이였을까. 주제 자체가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만큼 감상하는 동안 관객에 따라 많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혹평했다면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부터 그 의문점들을 하나씩 파헤쳐보자.
2. 그래서 무슨 내용인데? : 줄거리 되돌아보기
1) 1부 : 위기의 결혼식
멜랑콜리아는 미지의 행성 '멜랑콜리아'가 며칠 뒤에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에서는 동생 저스틴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지구 멸망을 앞둔 저스틴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저택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거대한 행성이 다가오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결혼식을 즐긴다. 그러나 저스틴은 다가올 종말 앞에서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애써 억지미소를 지어봐도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던 저스틴은 결혼식을 하다 말고 자리를 비우며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하객들은 저스틴의 기행에 술렁이고 장내 분위기는 어수선해진다. 결국 엉망이 된 결혼식이 끝나고 대저택에는 저스틴과 클레어 가족만 남는다.
2) 2부 : 달아날 곳은 없었다
2부에서는 언니 클레어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결혼식을 마친 저스틴은 클레어의 집에서 형부 존, 조카 레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클레어는 우울한 저스틴을 보며 정말 행성이 충돌할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천문학자 존은 자신이 직접 계산해봤다며 클레어를 안심시킨다. 마침내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에 근접했을 때, 일행은 멜랑콜리아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곧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충격에 빠진 존은 가족을 두고 자살한다. 패닉에 빠진 클레어는 레오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달아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클레어는 저스틴, 레오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3. 근데 전개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다
1) 가장 정적인 종말
지구 멸망, 종말의 날과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재난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어떻게든 재난을 피하려는 인물들의 절박한 생존기를 그려낸다. 거대한 재난을 앞두고 혼란에 빠진 도시, 거듭된 약탈로 난장판이 된 거리,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는 사람들. 전부 재난 영화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멜랑콜리아는 '지구종말' 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도 재난영화적 요소가 전무하다. 영화는 종말 그 자체보다는 종말로부터 정신을 갉아먹히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멜랑콜리아는 내내 정적인 분위기와 느릿한 전개속도로 일관한다. 느린 호흡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켰지만,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덕분에 관객은 저스틴에서 클레어에게 전이되는 절망감과 무기력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느린 전개 속도와 정적인 분위기가 긴장감을 낮추는 단점이자 관객이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든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2) 인트로 자체가 스포일러
멜랑콜리아의 인트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슬로우 모션으로 연출된다. OST 또한 아련한 곡조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을 삽입해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오프닝의 특징 중 오프닝을 구성하는 모든 장면이 '종말' 이라는 영화의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다. 밤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행성, 명화 '오필리아의 죽음'을 오마주한 저스틴의 모습, 아들을들고 달아나는 클레어 등등. 전부 멸망이 확정된 후반부와 연결되는 장면들이다. 역설적으로 오프닝이 곧 엔딩인 셈이다.
지구와 멜랑콜리아 행성이 충돌하는 장면이 오프닝 시퀀스를 마무리하며 스포일러의 정점을 찍는다. 시작부터 결과를 암시하는 멜랑콜리아의 오프닝은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긴장감이 옅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멜랑콜리아는 결말을 암시하는 오프닝을 통해 '이 영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는 중요한 사실을 관객에게 미리 알리고 있다. 결말을 짐작하게 된 관객들은 이미 뻔해진 결과보다 그 결과를 향해 인물들이 달려가는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멜랑콜리아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방향성을 확실히 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멜랑콜리아는 느린 전개 속도, 정적인 분위기와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종말이라는 결과' 보다 종말을 앞둔 인물들이 '변화하는 과정'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저스틴은 대체 왜 저러는 거야? : 저스틴의 감정 변화에 대한 분석
1) 주인공 저스틴, 관객을 대변하다
"생명체는 지구에만 있어.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질거야"
- 작중 저스틴의 대사
저스틴은 누구보다 종말을 확신하는 비관주의자이다. 아직 행성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던 결혼식 때도 저스틴은 이미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우울해한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저스틴을 달래도 그녀는 좀처럼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종말이 확실해졌을 때 저스틴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러한 저스틴의 감정기복은 관객에겐 이해되지 않는 과민반응처럼 느껴진다. 저스틴이 종말을 그토록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저스틴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한걸까?
저스틴이 관객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해석한다면 그녀의 변화를 납득할 수 있다. 만약 저스틴이 관객이라고 가정한다면, 저스틴은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지구에 멜랑콜리아가 충돌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 이다. 저스틴이 그 장면을 봤다면 그녀가 왜 영화 시작부터 그렇게 멸망을 확신했는지 알 수 있다. 관객이 오프닝을 통해 결말을 미리 접하고 혼란스러워하듯, 저스틴도 엄청난 혼란을 느꼈을 것 이다. 충격적인 사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성대한 결혼식까지 치렀지만, 이미 죽음을 직감한 저스틴에게 결혼식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후 그녀는 점점 다가올 죽음을 차분히 수긍한다. 2부에서 클레어가 종말을 받아들이지 못해 미쳐가고 있을 때도 저스틴은 태평하게 무표정을 유지한다. 결말을 안 관객이 종말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처럼, 저스틴도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한 것이다.
이처럼 저스틴의 감정 변화의 흐름은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매우 유사하다. 이로써 궁금증이 해결되었지만, 아직 우리에겐 한 가지 큰 의문점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굳이 저스틴의 감정 변화를 관객과 일치시켰을까?
2)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을 위하여
"죽고 싶은 마음만은 죽어도 없네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재미없을 뿐인 건데"
- 쿤디판다 '오늘 할 일 게워내기' 중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해 분석해보면 답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멜랑콜리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시적 우울감 또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우울증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 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이 생각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 였다. 사실 행성충돌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기 좋은 요소는 아니다. 멀쩡한 지구에 소행성도 아닌 거대한 행성이 나타나 충돌한다니. 저스틴의 우울증을 정당화하기엔 적합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관객과는 동떨어진 소재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감독이 고안한 것이 바로 주인공 저스틴을 관객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관객은 1부에서 저스틴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저스틴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관객 자신도 저스틴처럼 우울증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망친다거나 돌연 자리를 비우는 등의 부정적인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저스틴에게 연민을 느낀 관객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저스틴에게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이 때 관객이 느낀 연민의 감정은 2부에서 공감으로 확대된다. 1부에서 우울한 감정을 모두 소모한 저스틴은 2부에선 이미 죽은 사람이 된다. 생기없는 눈빛의 저스틴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체념할 뿐이다. 1부에서 저스틴에게 이입한 관객은 저스틴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저스틴. 관객 중에는 저스틴처럼 감정이 메말라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 이다. 이들은 저스틴처럼 감정을 모두 소모한 후 공허함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저스틴을 공감하게 된다. 마침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모든 관객이 저스틴에게 온전히 자신을 이입하게 되었을 때, 결말에서 저스틴은 죽음을 맞는다. 이 때 저스틴의 무표정한 모습은 마치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처럼 비참해 보인다. 이러한 결말은 우울증을 앓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비극적인 최후, 즉 '자살'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저스틴의 감정 변화를 우울증을 겪고 있는 관객과 일치시킴으로써 '죽음을 바라던 관객들을 위한 죽음 체험기' 를 완성해낸다. 이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여정은 관객이 실제로 상상하던 죽음과 동일할 수도, 아니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가 자살을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이를 미리 경험하게 함으로써 과연 그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사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극단적인 우울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하려던 사람들이 이 영화 '멜랑콜리아' 를 우연히 보게된다면, 그들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이 라스 폰 트리에가 의도한 멜랑콜리아의 순기능이 아닐까 추측한다.
5. 그럼 하객들은 왜 저러는 거야? : 그들이 종말에 무심했던 이유
1) 종말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것들
당장 며칠 뒤에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면 저스틴처럼 불안에 떨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결혼식 속 하객들의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일상적이다. 딸의 결혼을 반대하며 축사 때 초를 치는 어머니, 어머니와 이혼 후 여자 두 명을 끼고 당당히 나타난 아버지. 결혼식 일정을 지키는 데 급급한 친언니 클레어와 결혼식을 망친 저스틴에게 비용을 운운하며 짜증을 내는 형부 존. 그리고 결혼식까지 찾아와 업무를 닦달하는 꼰대 상사 잭까지. 아무리 행성 충돌이 확실치 않다지만 충분히 가능성있는 종말을 앞두고도 태연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질적이고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인물들은 왜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걸까?
이에 대해 나는 영화가 '이들의 행동은 모두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객들의 행동은 대부분 현실적으로 무의미했다. 존이 쓰지도 못하게 될 돈에 신경을 쓰는 건 의미가 있었을까? 잭이 결혼식 이후에 처리해도 될 잡일에 집착해 저스틴을 독촉한 건 의미가 있었을까? 곧 모두가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이들의 선택 따윈 아무 의미도 없는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멜랑콜리아는 '재난 앞에서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실제로 피할 수 없는 재난이 들이닥쳤을 땐 평화와 사랑을 외치던 사람들조차 생존에 눈이 먼 광인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런 사람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인물들의 무감각하게 과장된 행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2) 관객을 비추는 거울
하객들의 역할은 단순히 풍자의 객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평소 우울증에 무심했던 관객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 마디로 관객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앞서 저스틴의 감정 변화를 분석할 때는 관객이 우울감 또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가정했었다. 이번에는 관객이 우울증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우울증을 겪지 않은 사람은 우울증 환자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증상을 과민반응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주변에 우울증 환자를 둔 사람들도 한 번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실수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우울증을 경험하지 못한 관객들은 멜랑콜리아 속 하객들의 모습을 보며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하객들은 저스틴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저스틴에게 사회가 정한 '결혼식' 이라는 상황에 맞는 규칙을 준수하고 적절한 예의를 차릴 것을 요구했다. 물론 결혼식의 주인공이 저스틴이었던 만큼 그녀가 지켜야 할 책임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지구를 향해 거대한 행성이 날아오고 있는 마당에 예의나 규칙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하객들은 저스틴을 배려하지 않는다. 관객은 하객들에게서 우울증과 그 환자들에게 섬세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하객 = 우울증 비경험자 관객, 저스틴 = (관객 주변의) 우울증 환자' 인 셈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멜랑콜리아가 관객을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하객들을 등장시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선 쉽게 공감하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게 된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상처를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우울증 환자와 일반인의 갈등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충돌인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 안타까운 상황을 관조적인 태도로 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폰 트리에 감독이 우울증 환자에게 무심한 관객들을 비난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저스틴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객들에 의해 죽게 되었을 것 이다. 그렇게 되면 우울증 환자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죽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저스틴이 자의로 운명을 순응하게끔 의도했고, 그녀의 최후를 마치 자살처럼 연출했다. 이를 통해 감독이 우울증 환자를 고립시키는 사회적 현상 그 자체보다는 우울증 환자의 타들어가는 내면과 감정 변화에 더 집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영화가 제시한 이상향
그렇다면 멜랑콜리아는 마냥 비관적인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는 걸까? 그렇진 않았다. 영화는 저스틴의 남편 마이클을 통해 우리가 이별을 앞둔 상황에서 가져야 할 이상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마이클은 저스틴의 우울을 이해하고 존중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이 저스틴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때 마이클은 남편으로서 저스틴이 기운 차릴 수 있도록 그녀를 달랬다. 저스틴의 기행으로 마음이 상했을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남은 시간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마이클. 결국 저스틴이 우울을 떨쳐내지 못해 마이클이 집으로 돌아가며 그의 노력은 좌절되지만, 마이클의 태도는 끝까지 따뜻하고 사려깊었다.
"잘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 작중 마이클의 대사
마이클도 분명 마지막 순간에 저스틴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을 것이고, 저스틴에게 크게 서운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저스틴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연인으로 남는 것을 택한다. 그것이 마이클이 바랬던 '가장 좋은 마무리'였기 때문이다. 비록 마이클이 '가장 원하던' 마무리는 아니였지만, 마이클은 저스틴과의 추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마이클의 태도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클의 행동은 영화 속 다른 인물들과 달리 가장 의미있었다.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던 저스틴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마무리할 때 유일하게 좋게 마무리된 관계가 마이클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저스틴의 부탁을 무시하고 저스틴을 떠났고, 직장상사 잭은 저스틴이 사표를 내자 접시를 깨고 분노하며 떠났다. 그러나 마이클만큼은 저스틴과의 마지막 순간을 입맞춤으로 장식했다. 영화는 다른 인물들과 상반되는 저스틴의 마무리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관계를 마무리하는 이상적인 태도' 를 제시하고 있다. 관객은 끝이 좋지 않았던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영화가 제시한 이상향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6. 연출은 왜 그렇게 한 거야? : 멜랑콜리아가 우울증을 표현는 방식
1) 우울의 색상, blue
영화는 우울증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울이란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 연출했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차가운 색감이다. 영화 속 화면은 내내 서늘한 푸른 톤을 유지한다. 파란색의 영단어 blue가 '우울한'을 의미하듯 푸른빛의 이미지는 서글픈 우울감을 상징한다. 멜랑콜리아는 이러한 차가운 색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저스틴의 우울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차가운 톤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후반부 저스틴과 클레어의 대화 장면이다.
"그 순간에 다 함께 있고 싶어..."
"테라스에서 앉아 노래를 부르고 싶은거지? 와인마시며, 셋이서."
"맞아.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 너도 좋아하길 바랄 뿐이야."
"다 쓸데없는 짓이야"
- 죽음을 앞둔 저스틴과 클레어의 대화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클레어는 저스틴에게 최대한 행복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부탁한다. 그러나 저스틴은 차가운 말투로 이제와서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나며 클레어를 쏘아붙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클레어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스틴. 이 장면에서 클레어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 잡아먹힌 클레어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뱉은 말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비참하다는 듯 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저스틴은 얼굴의 왼쪽 면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지만 오른쪽 면에는 차가운 빛이 비친다. 왼쪽 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저스틴도 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른쪽 면에 비친 서늘한 푸른 빛은 저스틴의 생기없는 눈동자를 조명하며 저스틴은 클레어와 달리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절망과 체념이 공존하는 저스틴의 얼굴은 그녀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인물의 감정변화에 따른 1~2부의 톤 변화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저스틴의 감정 변화에 맞춰 1부와 2부의 톤에 차이를 뒀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결혼식장의 주황, 노랑빛 계열의 조명을 이용해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초반부 결혼식에서 저스틴이 잠시나마 느꼈던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을 표현한다. 동시에 밤하늘의 달빛을 이용해 결혼식 도중 자리를 벗어난 클레어가 느낀 우울함을 드러내고 있다. 2부 또한 1부와 비슷한 흐름을 띄지만, 2부의 주인공인 클레어의 감정 변화에 적합하계 설계했다는 것이 다르다. 2부의 초반부는 야외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자연광을 이용해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종말이 코 앞까지 다가온 후반부에서는 클레어의 미쳐가고 있는 정신상태를 드러내듯 건조하고 차가운 푸른 톤을 유지한다. 또한 안개, 이는 클레어 뿐만 아니라 저스틴의 감정 변화에도 해당되는 설계로, 죽음을 담담히 수긍하는 저스틴의 비참한 심리를 표현한다.
이외에도 핸드헬드 기법을 주로 사용해 인물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표현한 점, 오버 더 숄더 숏을 활용해 저스틴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나타낸 점이 인상깊었다.
6. 결말은 왜 그렇게 끝나는 거야? : 완벽한 마무리란 없다
시작부터 지구 멸망을 예견했던 멜랑콜리아는 결국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후반부 클레어의 아들 레오와 저스틴은 함께 기다란 나뭇가지를 모아 텐트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짓는다. 저스틴과 클레어, 레오는 '마법의 동굴' 이라 불리는 그 나뭇가지의 조합 아래에 함께 앉아 손을 잡고 최후를 맞이한다. 이 장면은 마치 세 명의 생존자들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것처럼 연출된다. 엔딩에서 암전 직전 행성 충돌로 주인공들이 불 타 죽는 것을 고려하면 '제물로 바친다' 라는 행위는 저스틴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자살' 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눈을 감고 침착하게 숨을 내쉬는 레오, 두려움의 눈물을 흘리는 클레어. 그리고 후회스런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저스틴.
흥미로운 지점은 저스틴을 제외한 모두가 완벽한 마무리를 바랐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저스틴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결국 저스틴과 작별한다.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를 비껴나갈 거라 굳게 믿었던 존은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결국 가족을 버리고 홀로 목숨을 끊는다. 클레어는 행성 충돌 직전까지 오열하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들의 마지막 순간은 초라하기 짝이없었다.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종말 앞에서 해피엔딩 따윈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때 멜랑콜리아의 메시지는 단순히 '종말은 반드시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암전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관객에게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관객 또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아름답고 의미있는 죽음을 원한다. 비좁은 독방에서 차갑고 쓸쓸하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다가오기에 현실적으로 모두가 평화롭게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사고로 요절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투병생활 중 고통 속에서 죽게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떤 장면으로 장식해야할까? 사실 평온히 일상생활을 하던 중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그렇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아는 그런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7. 그래도 이런 점은 좀 아쉬운데...
지금까지 멜랑콜리아 속 감독의 의도를 분석해보았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선보였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 옥에 티는 있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영화를 1부와 2부로 나눈 것이었다. 1부와 2부는 비슷한 분량으로 전개되는데, 둘 다 분량이 긴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종말을 미리 알려주긴 했지만, 관객은 오프닝만으로 영화의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는 없다. 오프닝은 한 마디의 대사 없이 그저 장면의 연속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오프닝 속 장면들이 후반부와 이어질 것이라고 함부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대사로 몇 번 업급되긴 하지만, 저스틴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객은 혼란스러워 하게 된다. 때문에 지구 멸망이라는 극 중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한 관객들은 당연히 1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를 이해했다하더라도 결혼식만을 다루는 1부의 늘어지는 전개 속도 때문에 집중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멜랑콜리아가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관객을 배려해서 불필요한 장면들을 과감히 삭제하고 빠르게 2부의 내용으로 넘어갔다면 더 깔끔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불필요한 요소 중 가장 눈엣가시였던 것은 바로 캐릭터 '잭'이었다. 잭은 저스틴의 악덕 상사로, 종말에 무감각한 하객들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하객들이 잭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잭의 존재는 과하다는 인상만 남길 뿐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잭이 데려온 직원 '톰' 도 진짜 왜 넣었는지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게다가 감정적으로 피폐한 상태의 저스틴이 충동적으로 톰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은 영화의몰입을 헤치는 가장 쓸데없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주인공 저스틴을 동정해야할 관객이 저스틴의 기행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의 악영향으로 인해 저스틴에게 다시 이입하기 힘들어진 관객들은 2부에서 갑작스레 차분해지는 그녀의 감정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움만 느끼게 된다.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순 없지만, 이런 사소한 요소들 때문에 감상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이 영화 멜랑콜리아는 절대 '기분 나쁘고 난해한 영화' 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명확한 단점들이 있는게 더 아쉬웠다.
8. 글을 마치며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도끼여야 해."
나는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의 장르가 단순히 코미디, 액션, 범죄로 한정되어 있다면 영화의 장르적 매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때로는 이 영화 멜랑콜리아처럼 비극적인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상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절대 재미있고 유쾌한 오락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한 조각을 조명하는 따뜻한 독립영화도 아니다. 제목 그대로 '우울' 그 자체인 영화이다. 그런 만큼 현재 우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는 분들에겐 이 영화를 더 강력히 추천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우울에 빠져있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더 진심으로 이해하는데 이 영화 멜랑콜리아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영화과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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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된다면 봐야겠습니다 ㅎㅎ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오 일리있네요! 확실히 서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긴 했죠
고퀄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