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라투 (2024) 아아...... 스포일러 없음.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영화들이 만들어진 탓에
요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퇴폐적이고 세련된 신사, 너드, 로맨스 주인공, 레즈비안, 인간 소외에 시달리는 허무한 존재,
육체노동을 하는 듯 건장한 사나이, 황순원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 이슬람 여자,
역사 선생, 페스트를 퍼뜨리는 악 그 자체, 흡혈귀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불쌍한 존재, 퇴폐적이고 무속적인 시골을 지배하는 지주 등......
그런데, 이제 노스페라투를 다시 만든다? 난이도가 엄청 높은 프로젝트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드라큘라 영화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 바로 최초로 만들어진 원작 노스페라투다.
스틸사진 몇장으로만 남아, 다시는 볼 수 없는 호러영화 걸작으로 생각되어져 왔던 작품이다.
기적적으로 원판필름이 남미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드라큘라가 클리셰화하기 전에, "날 것 그대로 느껴지는 악 그 자체"인 드라큘라를 볼 수 있다.
나중 영화에 끼어드는 인간적인 그 어떤것도 없다. 감독과 스태프가 드라큘라라고 하는 그 존재에 대해
공포에 질려 떨면서 찍은 것같다 하고 어느 평론가가 말할 정도다.
벨라 루고시가, 검은 연미복을 입고 망토를 두른 세련되고 퇴폐적인 신사 드라큘라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날 것 그대로의 공포스런 드라큘라는 이미 없다. 드라큘라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
노스페라투 리메이크는 이미 존재한다. 1979년작 노스페라투인데,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에 클라우스 킨스키 주연 작품이다. 대감독 대배우가 만든 회심의 걸작이다. 아예 자기들만의 노스페라투를 대놓고 만든 작품인데,
늙고 쇠약하고 정신적으로 연약한 드라큘라가 등장해서 벌이는 섬세한 심리극을 연상시킨다. 혼자 폐허가 된 성 속에 틀어박혀서, 꿈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괴로워하는 연약한 드라큘라 - 이것이 먹혀서 원작과 비견되는 걸작이 나왔다.
이 영화를 굳이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을까? 원작의 그 날것 그대로의 공포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드라큘라영화들을 보아왔다. 이 영화 노스페라투 2024년판은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것 같다. '오늘날 특수효과로 스타배우들을 섭외해서 걸작인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카피 페이스트 카피 페이스트해서 원작을 복사해 만든 영화다.
결과는 실망이다.
원작 노스페라투의 핵심은 - 감독과 스태프들이 공포에 떨며 만든 듯한 그 날것 그대로의 드라큘라는- 이 영화에 안 나온다. 늘 보던 드라큘라 영화 하나 더 나왔네 하는 심정으로 보게된다.
원작 노스페라투는 1920년대 초반 영화 초창기에 만들어진 걸작영화답게 간결하다. 그래서, 디테일이 누덕누덕 붙어있지 않다. 그래서, 카페 페이스트해서 원작 노스페라투의 장면들을 재현했어도, 원작에서는 페이스가 빠르고 간결한 장면들이 2024년판에서는 느리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원작 노스페라투에서는, 공포도 서서히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공포의 본질 그 자체를 한꺼번에 날것 그대로 확!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강렬하다.
이 영화는 다르다. 요즘 공포영화 클리셰를 따라서 공포를 오래오래 발전시킨다. 그런데, 이 과정이 요즘 호러영화에 나오는 클리셰들 종합셋트다. 빙의된 여자가 침대에서 허공에 붕 뜨는 장면이라든가, CGI를 이용해서 빙의된 여자의 눈이 돌아가고 혀가 길게 나오고 (링의 사다코인가?) 등등......
원작 노스페라투에서는 페스트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속신앙적인 요소도 등장한다. 아마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걸리면 반드시 죽고 전염이 빨라서 도시 인구 1/3은 죽어나가는 코로나바이러스 정도? 원작 노스페라투에서는 페스트가 커다란 공포를 가지고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도 페스트는 나온다. 하지만, 정복되어서 이제 별 감흥도 없는 병 아닌가? 원작 노스페라투의 핵심은 다 놓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그렇다면, 원작의 핵심을 재현하지 못할 바에야, 자기 나름의 비젼과 스타일을 밀고 나가서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원작 노스페라투의 카피 페이스트 작품이다.
재미도 없다. 관객들을 흥미진진하게 몰입시켜 끌고 나가는, 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미니멈 능력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캐릭터라도 재미있게 만들든지. 그것도 아니다. 등장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모두 공허하다.
속이 텅 비어 있다.
빌 스카스가드의 연기도 인상적이지 못하다.
속이 텅 비어서 겉으로만 과대포장하는 그런 연기다.
** 올록백작이 콧수염을 기른 채 나온다. 이거,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었다는 15세기 루마니아 귀족 블라드 3를 흉내낸 것이다. 크리스토퍼 리가 나왔던 드라큘라영화들 가운데, 이렇게 콧수염이 난 영화가 있다. 하지만,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콧수염은 마구 자란 콧수염이 아니라, 시간 들여 다듬은 콧수염이다. 이런 콧수염은 올록백작에게 너무 인간적인 터치를 부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