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하얼빈] 리뷰 - 영웅의 이미지에 압도돼 간과됐던 인간적 고뇌에 첩보물의 외피를 둘러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거사를 치른다.”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라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두 알고 있다. 2022년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을 비롯해 같은 사건을 극화한 창작물들도 있다. <하얼빈>은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를 다룬 픽션들과 차별화된 길을 간다. 초반부 함경북도 신아산의 전투 시퀀스는 독립군이 크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육의 참혹함과 죽음의 공포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두렵고 위태롭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위시한 반전(反戰) 영화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게 됐다는 안중근의 죄책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동지가 곧 배신자일 수 있다는 긴장감 등을 내밀하게 묘사하며 10월26일 거사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특히 서로를 의심하며 스파이를 찾아내는 구성은 첩보 드라마를 닮았다.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이 <스카페이스> 등 범죄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장 피에르 멜빌의 프렌치 누아르의 영향을 받았다면 <하얼빈>의 후반부는 존 르 카레의 서늘한 스파이물을 연상시킨다.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몽골, 라트비아에서 진행한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오히려 숭고해지는 인간의 정신을 웅장한 필치로 그려낸다. 또한 안중근 한명의 영웅적 행위에 집중하기보다 하얼빈 의거에 당도하기까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투사들의 번민과 희생이 있었음을 고집 있게 밀어붙인 것은 성탄절 대목에 개봉하는 대작으로서 드문 선택이다.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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