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2024) 거칠다. 스포일러 있음.
전란은 약간의 좋은 점과 다수의 안 좋은 점으로 이루어진 드라마 같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일단 너무 거칠다.
나쁜 놈은 한없이 나쁘고, 어리석은 놈은 한없이 어리석고, 좋은 놈은 한없이 좋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선조를 이런 어리석고 나쁜 악역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왜군을 피해 피난가면서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는데, 신하가 와서 거친 밥하고 도로묵 한 마리 바친다고
반찬투정을 했겠는가? "이게 뭐야? 나, 안 먹어!" 이랬겠는가? 선조를 똥멍청이로 만든다.
실제는 좋아하면서 먹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도망가는데, 백성들이 배를 함께 타려고 하자, 칼로 그들의 손을 쳤다.
배에 잘린 손들이 가득했다. 선조가 바들바들 이를 보며 "어서, 저놈들을 죽여라!"하고 소리쳤겠는가?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실제로는 "우리 책임이다"하고 울었다. 이게 정상인의 행동이다.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리는데, 한양에 돌아와서 곧 하는 말이,
궁궐을 몇배로 늘려지으라고 한단 말인가? 배고파 굶어죽는 백성들을 억지로 동원해 노역을 시키라고 한다.
광해군이 그러다가 정권 빼앗겼지 않는가? 선조를 무슨 저능아에 이기주의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자기 왕위 유지하는 데에는 탁월한 감각을 보인 사람이다.
양반이 왜군에게 부역해서 왜군처럼 머리를 깎았는데,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왜군 부역 사실을 모르고 청주목사로 임명했다고 나온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왜군에게 당해 치를 떠는 왕과 조정신하들이 가득한 정부에서 목사 임명은 커녕 당장 참수했을 것이다.
드라마가 이런 식이다. 캐릭터들을 세련되게 다루지 못한다. 피식 웃음이 날 정도다.
의병장으로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위험할 정도로 많이 받는 김장령장군이 한양으로 휘하군사들을 끌고 오며
"한양에 가 왕을 뵈면, 당신들의 사정을 내 잘 말해줌세"하고 백성들에게 말한단 말인가?
왕에게 이렇게 말해 봐라. 당장 죽음이다.
왜, 왕이 해야 할 걱정을 군사를 거느린 일개 양반이 하는가?
현실은, 의병장들은 납작 엎드려서 살았다. 이게 말이 된다.
관객들을 이런 과장으로 울컥하게 만들려고 하지 말라. 속이 들여다 보인다. 얼마나 싸구려가 되려고 하나?
캐릭터도 거칠고 스토리를 이어가는 방법도 거칠고 주제도 거칠다. 세련된 점이 없다.
의병장들은 임진왜란이 끝나지 숙청당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범죄혐의를 잡아서 공식적으로 문초해서 처형했지,
몰래 궁궐로 유인해다가 총으로 쏴죽이고 하지 않았다.
무슨 조정을 신세계에 나오는 범죄조직 골드문쯤으로 생각한다.
(나중에 이런 이순신장군 영화 만들면 되겠다. 이순신장군을 선조가 몰래 부르더니, 궁궐 안에서
이리저리 복도를 따라 데려간다. 그러다가, 선조가 총을 꺼내서 이순신장군을 쏘아죽이려 한다. 이순신장군은
날래게 이리저리 피하며 담을 넘어 도망친다. -> 이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만들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실제로는 이렇다 하고 조목조목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이고 현실적으로 캐릭터나 스토리를 짰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 드라마는, 무슨 캐리커쳐가 손발이 붙어 돌아다녔던 것처럼 그려놓았다. 그렇게 안 했어도 얼마든지 신선하고 기발한 캐릭터와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상상력만 있다면......
강동원과 박정민도 캐릭터들이 너무 클리셰 덩어리에다가 입체적인 것이 없다.
이 드라마의 좋은 점은, 액션씬이 아주 훌륭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훌륭한 액션씬이 또 어디 있었나 생각해 보면, 없지는 않았겠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강동원은 이제 품위와 무게가 잡혀서 이런 역에 아주 잘 어울린다. 액션씬도 훌륭하게 잘 소화해낸다. (칼라풀한 역할을 무게 있게 소화해내는 카리스마 있는 역으로 자주 보고 싶다.)
해무가 낀 해변에서 세명이 벌이는 대결씬은 훌륭했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있다. 너무 자주, 액션씬이 끊기고 주인공들끼리 싸우다가 말고 애절한 표정을 나눈다. 칼이 휭휭 날아다니는데, 주인공들끼리 지나간 사연을 이야기하며 오해를 푼다. 누구 발상인지 참......)
다른 캐릭터들은 좀 클리셰같은데, 강동원의 캐릭터는 살아숨쉬고 박력있다. 각본 상으로도 입체적인 존재감을 주었고, 강동원의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차후에라도 속편이 나온다면, 이런 캐릭터들을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엔딩씬같은 것은 참 아이디어가 좋았다. 하지만, 특정씬들이 아이디어가 좋았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디어 좋은 씬들이 계속 등장한다 하는 정도가 되어야 드라마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연출도 좀 단조롭다. 참신한 점이 없다.
막판 엔딩은 왕의 남자 엔딩씬을 너무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성공할 것이다. 스타배우의 매력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고, 그가 멋진 액션을 펼친다. 들장미 소녀 캔디의 테리우스같은 역이랄까? 반항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가진 검술천재 미소년 - 뭐 이런 거 말이다. 화면은 깨끗하고 보기 좋게 선명 색채감 있다. 늘어지지 않게 사건들을 계속 이어가며 긴장의 흐름을 놓지 않는다. 박력 있는 검술대결이 많이 나온다. 많이 나와도 싫증나지 않게 잘 연출되었다. 결정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재미를 준다.
** 이 드라마를 보며 기억이 난 것인데, 이런 비슷한 영화 예전에 있었다.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에 의병항쟁을 벌이면서 맞서싸우는 검술천재 이야기다. 그리고, 그와 맞서는 운명을 가진 또 다른 검술천재가 나온다. 둘은 사실 친구였다. 마지막 엔딩은 둘이 마침내 검술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분위기나 사건 전개나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정적인 점에서 다르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무력 항쟁 대신,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작업에 참가함으로써 종교를 통한 국난 극복으로 방향을 돌린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라서 이정도만 기억이 난다. **
** 강동원은 뿌듯할 것이다. 정말 좋은 배역을 맡아 성공적인 연기를 펼쳤다. 다른 배우들은...... 보수를 받은 만큼 일을 했다. **
** 차승원의 선조역할은 실패다. 배우의 낭비다. 차라리 의병들 중 백정역할이나 아들 강동원을 노비로 빼앗기고 절망해서 자살한 강동원의 가난한 아버지 역할을 맡겼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
이야기의 극단성을 위해서 실존인물을 과장되고 왜곡되게 그리는 거 정말 싫어합니다.
일본인들은 보면서 뭔 생각할까요.
판타지도 아니고 하필 실제 역사 배경이라서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이고요.
차라리 중국이나 일본처럼 판타지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에 따라선 정말 예민한 소재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