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entia (1955) 미친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을 영화로 보다. 스포일러 있음.
아마츄어감독이 야심차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넘치는데, 표현이 못 따라준다. 그래서, 영상이나 이미지들을 보면
뭐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은 느껴지는데, 결과물은 그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가장 단순하고 조잡하고 유치하지만, 동시에 심오하고 기괴하고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영화가 나왔다.
초현실주의적인 것같기도 하고, 표현주의적인 것같기도 하고, 인간의 무의식 심층 탐구같기도 하고
아무튼 강렬하다.
감독의 여비서가 투덜거리던 꿈이야기를 듣고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여비서의 사생활이 궁금하다. 기왕에 이렇게 하는 거, 여비서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한다.
이 여비서, 연기는 해 본 적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해서인지, 아주 실감나게 악몽을 연기해 낸다.
아무리 명배우가 와도 이정도로 진실한 연기는 못한다.
영화도 아무 소리가 없다. 여성의 목소리로, 우우우~~하는 불길하고 신비로운 소리를 낸다. 한 3초정도되는
짧은 멜로디를 영화 내내 0.1초도 쉬지 않고 무한반복한다. 이것이 효과가 강렬하다.
미친 여주인공의 머릿속에는 늘 이 음향이 울려퍼진다.
대사도 없고 묵음에다가 이 음향만 끊임없이 무한반복되는 바람에,
영화 자체가 미친 여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악몽처럼
느껴진다. 초현실주의적으로 느껴지고, 미친 여자의 무의식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차갑고 더럽고 검은 도시. 한밤중에 빈민가 아파트에서 젊은 여자가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거울 속 자기를 들여다보다가 서랍에서 칼을 꺼낸다. 그리고, 썩소를 날린다. 무언가 긴장이나 서스펜스를
자아내기에는 감독의 연출능력과 배우의 연기력이 부족하다. 우우우~~하는 여자의 불길한 허밍음이 들리는 가운데, 여배우는 동작이 거의 없다. 이것이 오히려 강렬한 효과를 준다. 여자는 무언가에 묶이고 감금된 것처럼 느낀다.
마침 심해 속에서 움직이려 하듯 움직일 수도 없다. 눈동자만 봐도 미친 여자다. 여자는 밤거리로 나간다. 도시를 떠들썩하게 하는 연쇄살인마가 이 여자다. 하룻밤 동안 이 여자에게 벌어지는 일이 이 영화 내용이다.
미친 사람이 세상을 보면 이럴게 보일 것 같다. 거센 파도가 자기를 덮치는 환상도 보고,
아버지 어머니 묘지에 끌려가서, 죽은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들 묘지 앞에 서 있는 것도 본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는 아버지를 죽이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비웃고 비난한다.
어머니는 음탕한 여자여서, 주인공은 어머니도 경멸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섹스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꽁꽁 자기 쳐녀를 방어하고 묶는다. 아무도 없는 빈 해안을 (몽롱하게 보여지는) 혼자 걷는다.
순간순간 눈앞에 이런 이미지들이 확확 지나간다. 이런 사람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그녀는 칼을 손에 들고 밤거리를 배회한다.
누구도 대사 하나 없다. 음향효과 하나 없다. 그저, 우우우~~하는 여자의 허밍음이 무한반복이다.
여자를 리무진이 태운다. 펜트하우스에 사는 뚱보 부자가 밤거리를 헌팅하러 다니다가
이 여자를 태운 것이다. 부자는 자신만만하다. 엄청난 부를 과시하며 뽐낸다. 여자는 썩소를 날리며
그를 경멸한다. 이 여배우 연기력은 형편없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때문인지
아주 섬세한 뉘앙스를 잘 표현해낸다. 굉장히 강렬하고 신뢰성이 가는 연기다.
자기 펜트하우스에 여자를 데려온 부자는, 여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
프라이드 치킨을 게걸스레 먹는다. 입가가 온통 기름범벅이 되고 닭고기가 묻었다. 여자는 점점 더 혐오스럽고
역겹다는 표정을 짓는다. 부자는 이 여자를 강간하려고 한다. 여자는 부자를 칼로 찔러 죽인다. 부자의 시체는
저 아래로 떨어진다. 이 장면도 액션이나 긴장같은 것 전혀 없다. 우우우~~하는 똑같은 허밍음에
어색한 연기들 - 마치 진짜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미친 여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악몽처럼도 느껴진다.
이것은 사실상 계급사회가 되어버린 미국을 풍자하는 것같기도 하다.
여자는 잔인하고 차가운 그리스신화의 순결과 처녀의 여신 다이아나를 상징하는 것같기도 하다.
어쩌다가 자기 누드를 보았다고, 무고한 남자를 발기발기 찢어죽인 처녀 말이다. 순결과 투명함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잔인하고 불관용에다가 타인에 대한 경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자가 아래로 내려갔을 때, 거리에서는 부자의 시체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뿔싸! 부자는 손에 이 여자의 목걸이를 쥐고 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자기 목걸이를 시체 손아귀에서
빼앗으려고 한다. 하지만, 부자 손은 굳어 있다. 여자는 부자의 손을 칼로 자른다.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없다. 경찰이 달려온다. 여자는 도망간다.
여자는 어느 재즈카페로 도망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자에게 악보를 주고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여자는 엉겁결에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이 모두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웃는다.
죽은 부자의 시체도 창으로 들여다보며 웃는다. 경찰도 창으로 들여다보며 웃는다.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여자는 영화 처음과 마찬가지로 악몽에서 깨어난다. 이것이 악몽이었을까?
여자가 서랍을 열자 잘려진 손이 그 안에 들어있다. 잘려진 손은 저 혼자 움직이며 여자의 목걸이를 꽉 쥔다.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여자는 깨어난 것이 아니라, 악몽 속에 있는 것이다.
악몽 속에 악몽 그 속에 또 악몽...... 이런 식으로 무한히 액자식으로 되어 있어서, 여자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것이 미쳤다는 것일까?
이 영화는 병맛나는 똘끼영화가 아니다. 아주 잘 만들고 심오한 영화다.
우뢰매 하나 만들 예산과 아마츄어 주연배우를 가진 영화이지만,
감독이 영화에 대해 엄청 박식하다는 것과 문화적인 소양이 대단하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강렬하다. 인간의 광기와 악몽에 대해 이렇게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린 영화 드물다.
** 원래 당시 극장개봉에서는, 배경음악을 빼고 주인공의 독백을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했다면, 영화는 악몽이라기보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드라마영화로 바뀌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실패했다고 한다. 아마, 당시 관객들 수준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이 영화는 그래서 한동안 괴작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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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하게 느껴진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