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rate (1948) 주디 갈란드와 진 켈리의 시대액션뮤지컬. 스포일러 있음.
대배우 주디 갈란드와 진 켈리 그리고 감독에는 빈센트 미넬리, 각본에 무려 조셉 멘케비츠, 작곡은 콜 포터 -
대가들이 모였다. 예산도 대규모다.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범작이 나왔다.
이 사람들이 모여 이런 작품이 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주제 자체가 억지스럽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만든 1830년대 스페인을 다룬 영화라니.
전혀 스페인스럽지 않다. 그냥 이국취향 환타지다.
스페인의 어느 귀족가문소녀 주디 갈란드가, 본 적도 없는 카리브해의 전설적인 해적두목 마코코를 동경한다.
그녀는 넓은 세계로 나가서 모험하고 방랑하고 싶다. 스타를 선망하는 소녀의 심정으로
카리브해에서 배들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던 마코코를 짝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마코코......
주디 갈란드는 귀족 가문 소녀로서 인생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 마을 시장 돈 페드로와 결혼해서 따분한 일생을 보내야 한다. 어디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몸이다.
그런데, 그녀를 짝사랑하는 유랑극단 광대 진 켈리가 스토킹을 하기 시작한다. 진 켈리는 주디 갈란드를 꼬시기 위해 자기가 마코코라고 거짓말한다. 주디 갈란드는 진 켈리가 진짜 마코코인 줄 알고 사랑에 빠진다.
누가 이런 각본을 썼는지. 대가들이 모여서도 구제하기 힘든 각본이다. 그러니까, 주 줄거리 전개는
유랑극단광대 진 켈리가 거짓말을 하면서 주디 갈란드를 스토킹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범죄다.
그리고 뜬금없이 점잖은 시장 돈 페드로가 진짜 마코코였다는 설정부터 해서
줄거리 전개를 하려고 인위적으로 비비 꼰 흔적도 나온다.
주디 갈란드와 진 켈리가 어떻게든 이 뮤지컬을 살려보려고 애썼다. 특히 진 켈리의 열연은 아주 훌륭하다.
젊었을 적 성룡처럼 허공을 붕붕 날고 뒹굴고 하는 액션을 보여준다. 영화사에서는 혹시 부상을 입을까 걱정해서
진 켈리더러 스턴트를 직접 하지 말라고 했지만, 진 켈리는 고집 부리고 자기 스턴트는 자기가 했다고 한다.
젊은 진 켈리는 열정과 에너지 덩어리 그 자체다. 그리고 젊었을 적 성룡처럼,
자기 열정과 에너지 안에 겸손과 코메디를 불어넣을 줄 안다. 진 켈리의 영화 속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우러러보거나 영웅처럼 보지 않을 것이다. 씩 웃으면서 다가오는 친근한 친구의 모습이다.
진짜 마코토가 잡히고 주디 갈란드와 진 켈리가 맺어진다는 결말도 억지같다.
그리고 주디 갈란드는 진 켈리를 쫓아가서 유랑극단 광대가 된다는 것도 헤피엔딩일까? (뮤지컬에서는 해피엔딩이라고 우기지만 말이다.) (귀족가문 처녀가 피에로분장을 하고서 "Be a clown"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작가 나름대로 어떤 주제의식을 내비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는 본의 아니게 뮤지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들 중 하나가 되었다. 바로 싱잉 인 더 레인의 Make them laugh 가 바로 이 노래를 개작한 것이다.)
주디 갈란드가 아무리 대배우라고 하더라도, 현실감 없이 인위적인 1830년대 스페인 귀족가문 처녀를 연기하기에는
무리였던 것 같다. 열심히 카리스마는 발산하는데, 설득력 없는 내용에 빛 바랜다.
콜 포터의 노래도 영화와 섞이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노는 경향이 있다.
대가들이 모여서 이런 뮤지컬이 나오다니, 안타깝다.
P.S. 그러고 보니, 각본을 이 사람이 수정하고 다른 사람이 수정하고 또 다른 사람이 수정하고 마침내 조셉 멘케비치한테까지 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이름을 크레딧에 넣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영화사 사람들도 이 뮤지컬 각본이 엉터리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각본의 힘이 이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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