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유][댐즐] 던전에 떨어진 공주가 SSS급 펫을 길들인 사연

넷플릭스로 공개된 [댐즐]을 봤습니다.

 

제목 댐즐이 얼핏 듯은 기억은 있는데 뜻이 무엇인지 아리까리해서 찾아보니 '결혼하지 않은 어린 처자'군요

영화 초반부는 말 그대로 댐즐인 주인공 엘로디가 바다건너 먼 나라 왕자의 신붓감으로 간택되어 혼인을 치르는 과정입니다.

할리퀸 서적에서 볼 법한 공주/왕자의 운명적 사랑이야기 같은 분위기를 공들여 보여주는데

중간중간 불안한 복선들이 깔리지만 그걸 제외하고 이 파트만 보여준다면 

정석 판타지 로맨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요.

 

(Damsel in distress....가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 받은 아가씨)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런 거 실은 없고 현실은 시궁창이 펼쳐집니다.

예고편을 통해 짐작 가능한 드래곤 레어에 희생양으로 내던져진 소녀의 고생담이죠.

이후로 이야기는 사실 쉽게 짐작 가능한 길로 변화구 없이 술술 흘러가고요.

 

주연인 밀리 바비 브라운이 제작에도 참여한 이 작품은 

역시나 그녀가 제작에 참여하고 넷플릭스로 공개된 [에놀라 홈즈]시리즈와 유사합니다.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로맨스인척 하지만

실은 기존질서를 전복하는 진취적 여성상을 보여주는 패미니즘에 기초한 가벼운 오락물 말이죠.

 

중반부 대부분을 비롯하여 영화 상당부분은 드래곤 둥지인 동굴에서 펼쳐지는데

마치 게임 스테이지처럼 구성된 동굴의 생태계와 환경의 비주얼은 인상적입니다.

부분부분 사람 홀리는 설정과 미술, 액션 등이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고요.

예고편에서 인상적이던 장면 대부분은 여기에서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드래곤의 디자인과 캐릭터 설정도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CG가 발달할 수록 어째 영화 속 드래곤의 사이즈는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긴 합니다. 

여기 나오는 드래곤 역시 두돈반 트럭 정도 크기로 비교적 아담한 사이즈에요.

아무튼 이 크리쳐의 사연과 관련된 사정이 드러나는 후반부 파트는 뻔하긴 하지만 당위성은 충분합니다.

 

여성서사인 만큼 주인공도 여자, 드래곤도 암컷, 마지막에 생존하는 것도 모두 여성입니다.

남자 캐릭터는 대부분 배경이거나 소악당, 것도 아니면 주인공 레벨업을 위한 소모성 캐릭터고요

이 와중에 왕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로 선전하는 거 보면 기특하달까...

 

그래도 최종보스도 로빈 라이트가 연기한 여왕으로 설정함으로서

여성 대 여성의 구도에 집중한 점.

모성 서사와 관련하여 '주인공-계모'/'드래곤-여왕'/'주인공-드래곤'의 정반합은 영리한 구성이었어요.

 

반면 엘로디가 미로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동굴에서 이전 희생자들이 벽에 남긴 기록들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미로를 이용한 뭔가 나오려나 했는데

그냥 '엘로디는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내지는 '세이브 포인트' 같은 느낌으로 끝나버리니까요.

더군다나 영화를 다 보고나면 벽에 그려진 미로 겸 지도가 좀 묘합니다.

'빅토리아'의 동선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어째서 그런 벽화를 남긴 것인지 더 그걸 기록하는 게 가능은 했는지

굳이 맞춰보자면 수직 수정벽 직전까지 가서 '아, 저기서 해가 드니까 탈출구다'라고 확인한 후에

세이브 포인트인 벽화 방으로 돌아가서 지도를 그려서 남겨두고

이후에 다시 수정벽을 올라갔다가 막판에 '여기가 아닌게벼' 낙서와 함께 죽은 거란 얘기인데

엘로디의 상황에서도 내심 느꼈지만 드래곤이 참... 멍청한 건지 나태한 건지

 

+

 

밀리 바비 브라운은 아마도 소녀/처녀 역할이 어려운 나이가 되기 전까진

이와 유사한 기획의 작품들을 계속 제작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뽑아낸 성과들을 보면 여전히 기대는 됩니다.

(에놀라3편 어서 내놓아라)

 

++

 

전투형 공주가 등장하는 메르핸 풍 액션서사....라고 본다면

이 작품 보다 더 날것이고 화끈한 조이 킹 주연의

2022년작 [프린세스]도 추천하고 싶네요.

 

예복을 입고 시작한 공주가 한층 한층 아래로 내려가며 피투성이 누더기 복장이 된다는 점도 유사....

 

+++

 

주인공 엘로디의 이름을 드래곤이 끝어 칭하며 마치 l.o.d처럼 들리게 부르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게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 궁금하더군요. 철자를 다시 잃으면 귀족/지배자(lord)처럼 들리기도 합니다만

제 세대에게는 Lord of Destruction 도 떠오른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