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복과 기관총 (1981) 1970년대 일본 야쿠자영화의 마지막 맥이 남아있다. 스포일러 있음.
세일러복과 기관총이라니 무슨 제목이 이런가?
아마 감독은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기관총을 난사하는 이미지로부터 이 영화를 시작했을 것 같다.
제목만 보고, 머신건같은 만화적인 영화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야쿠자영화의 맥을 이은 영화다.
매끄럽지 않고 꺼끌꺼끌한 영상의 결이 느껴지는,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잔인함과 비정함이 난잡한 총천연색 속에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끈적끈적한 영화들 말이다.
이런 세계 속에 세일러복을 입은 여고생이
들어가게 된다. 칼로 찔러죽이고 총으로 쏘아죽이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
보여지는 인의 없는 전쟁 속에 여고생이 뛰어든 것이다.
매끈한 코메디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세상의 더러움과 잔인 추악함을
있는 그대로 내비치는 영화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나는 그점이 오히려 더 좋다.
이 영화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거리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고 성장해 가는 여고생의 이야기다.
이즈미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어느날 이즈미에게 경악스런 일이 벌어진다.
야쿠자들이 떼지어 학교에 몰려든 것이다. 선생이니 학생들이니 모두 공포에 질려 발칵 뒤집힌다.
그들은 이즈미를 찾는다. 이즈미의 먼 친척인 야쿠자 두목이 죽으면서 이즈미를 후계 오야붕으로
지명한 것이었다. 야쿠자 오야붕 친척이 있는 줄도 몰랐던 이즈미는 경악한다.
그것도 네명 야쿠자가 전부인, 가난하고 허름한 야쿠자 단체다.
그녀는 야쿠자 오야붕 되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즈미는 자기가 엄청 야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야쿠자들이 여고생에게 넘어갈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은 이제 문 닫는다고, 전원 옥쇄하자고 일본도를 빼든다.
그리고 다른 야쿠자 조직에 몰려가서 칼싸움을 벌여 전원 옥쇄하자고 나가려 한다.
이즈미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서며 오야붕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여고생 이즈미는 방과 후에 특별활동부에 출근하듯이 야쿠자 사무실에 오야붕으로서 출근한다.
여고생 이즈미역은 숏다리에다가 덜 자란 티가 역력한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맡았다.
그래서 진짜 평범한 여고생 같다. 늘씬한 패션모델같은 여배우가 아니라서 좋다.
야쿠자역을 맡은 배우들도 1970년대 야쿠자영화에서 보던 배우들이다.
그들은 코믹한 연기라기보다, 1970년대 야쿠자영화에서 그들이 하던 대로 한다. 코믹하고 희화화된
야쿠자가 아니라, 진짜 잔인하고 혐오스런 야쿠자를 연기한다.
이즈미가 다른 야쿠자 조직들을 물리치고 자기 조직을 거대하게 키워낸다 따위의 만화적인
줄거리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즈미는 자기를 이지메하는 다른 야쿠자 오야붕들로부터 견제와 무시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즈미가 자기를 당당한 야쿠자 오야붕으로 성장시킬 만큼, 야쿠자세계에 의욕이 있는 것도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즈미는 마약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다른 야쿠자 조직들로 받고 계속 습격을 받는다.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놔 두지 않는다.
이즈미의 조직은, 거대 야쿠자조직에 의해 하나 하나 살해 당한다.
겉으로는 호탕한 체 했던 야쿠자조직들은
사실 비열하고 잔인한 놈들이었다. 마약이 뭐라고
이제 가족같은 조직원들을 잃은 이즈미는, 진짜 옥쇄를 각오하고 야쿠자 거대조직에 난입한다.
손에 기관총을 들고서. 그리고, 비극의 핵심이 되었던 마약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그런데, 이즈미가 기관총을 난사할 때, 카메라의 위치가 바뀐다.
이즈미가 기관총을 관객들에게 난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것도 슬로우비디오로.
파릇파릇한 여고생이 기관총으로 성인관객들을 향해 난사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거대야쿠자 조직을 걸어나오자, 이즈미에게 남은 유일한 야쿠자 부하가 말한다.
"당신도 이제 성장하십시오. 여기에서 벗어나십시오. 야쿠자들은 센 체 하지만, 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갈 줄 모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항상 과거에 머물 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도 야쿠자에서 탈피하여 사회인으로 새출발할 것을 결심한다.
이즈미는 아마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는 기성세대를 향해 기관총을 갈긴 것이 아닐까?
굳이 카메라 방향을 바꿔서, 야쿠자들을 향해 총을 갈기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향해 총을 갈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소위 적폐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맞았다고 본다.
일본은 당시 역사상 절정기를 맞고 있었지만, 그것은 버블이었고,
최악의 상황을 새로운 세대에 전가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번영에 마취된 기성세대는, 모순이 차곡차곡 적립되어 가는 사회를 보지 못했다.
그들을 향해 이즈미는 기관총을 난사한다.
일본 대중영화의 한 기발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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