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0
  • 쓰기
  • 검색

만추(晩秋)의 기억

BillEvans
3618 9 10

AKR20210819162100005_07_i_P4.jpg

이만희란 감독이 지금은 다소 잊혀진 듯하다.

하지만 황소 그림을 그린 화가 이중섭이 천재화가의 전형이 되었듯,

천재감독하면 이만희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만희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클루조감독의 디아볼릭을 한국식으로 번안한 마의 계단이라는

영화를 보면, 잘 모방했다 정도를 넘어서서 원작의 섬뜩한 분위기를 "창출해낸다." 오히려 디아볼릭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정숙 주연의 귀로라는 영화를 보면, 나루세 미키오의 세련되고 섬세한 멜로드라마를

나루세 미키오 그 자신보다 더 섬세하게 연출해낸다. 

아래 휴일이나 귀로에 나오는 세련되고 황량한 장면들을 보라. 1960년대 열악하던 우리나라 한국영화계에서 

이런 화면을 뽑아내고 거기에다가 능숙한 스토리텔링, 군더더기도 모자란 부분도 없는 편집 - 

영화에서 배어나오는 세련된 예술성 등을 만들어낸 것이다.  

 

20191203503522.jpg

44b71615-efe9-4ede-a1a1-20de9465c206.jpg

 

 

그런가 하면,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도 잘 만들었다. 

th (1).jpg

84f5c74c-dc2d-4650-bcb0-80beb48b6f76.jpg

thumb-cc47af911f665f7ef86ca59dd42e8f84_1689357693_8707_600x0.png.jpg

물레방아같은 문예영화의 걸작도 만들었다. 

 

검은 머리같은 느와르물도 만들었다. 

th (2).jpg

b56965bfc2e699f42e104fcba097e3a4.jpg

 

당시 영화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이만희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 예산을 적게 주어도,

해외 영화를 모방해 만들라면 원작에 맞먹는 혹은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니까 말이다. 

나도 해외영화를 볼 기회가 적었을 때에는, 이만희감독이 여러 쟝르에서 걸작을 남긴 불세출의 천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디아볼릭도 보고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도 보면서,

이만희감독이 그 창의성을 다른 데서 가져왔음을 알고 맥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만희감독에 대해, "예산이 제약되고 해외의 명작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 열악한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의미가 있었던 천재"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무엇을 시키든 평균 이상은 했던"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이만희감독이 충분한 예산을 얻고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했더라면 어떤 작품들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질문이다. 그 자신 거장이었던 김수용감독이 헐리우드를 방문했을 때, 프렌치 커넥션의 자동차 추격씬이 촬영되고 있었던 중이었다. 헐리우드 관계자가 대단하지 않냐고 자랑하듯 묻자,

김수용감독은 '우리나라에는 이만희라는 감독이 있단 말이다. 이만희감독에게 이만한 지원을 해줘 봐라. 그는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뽑아낼 거다."하고 생각했다 한다. 김수용감독은 그 자신 거장이었고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김수용감독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분명 그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는 거장들 중에서도 거장이었다. 

 

이만희감독을 따라다니는 배우들 코메디언들이 군단을 이루었다. 이만희는 존경을 받는 거장감독으로 한 시대를 군림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성공이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그래서, 자기가 버는 막대한 돈을 파티 등으로 다 흥청망청 써 버렸다. 결국 죽을 때에는 "너희한테 물려줄 것이 없구나"하고 자식들에게 탄식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만희감독의 딸이 배우 이혜영이다. 

 

이만희감독의 가장 걸작은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만추"라고 대답했다. 김태용감독이 리메이크한 만추 바로 그 영화다. 내용도 여죄수와 어느 남자의 짧은 사랑이야기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는 이 영화에 대해 "우리나라 영화사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사라진 것이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글로 이러이러한 장면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영화 전체를 구술로 복원한 책까지 나왔을까?

(신상옥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후, 김정일의 영화 컬렉션에서 만추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최은희도 만추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번에 발견된 이만희감독의 "휴일"이라는 영화는, 나오자 마자 걸작으로 등극했다.

만추도, 발견된다면, 한국영화사 완벽한 영화까지는 아니겠지만, 걸작으로 금방 등극할 것이다. 

 

이만희감독이 죽을 무렵, 혼신을 다해 찍은 유작이 "삼포 가는 길"이다. 신성일에게 주인공 제의가 갔는데,

하필 그가 바쁜 바람에, 김진규가 주인공역할을 했다고 한다. 대배우 김진규가 주연역할을 했던 마지막 걸작영화다.

삼포 가는 길은 거장의 마지막 숨과 노스탤지어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하지만, 걸작이 되기에는

너무 감정이 넘치고 신파적인 감이 든다. 전성기를 이미 지나 온 감독의 백조의 노래다. 

 

굉장한 천재로 존경 받으며, 거장들의 거장으로 인정 받았던 이만희감독이

지금 감독들과 비교하여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지금도 거장들의 거장이라는 지위가 굳건할까?

 

일단 그의 영화는 강렬하다. 마의 계단같은 스릴러에서는 공포와 긴장 서스펜스가 강렬하다. 김진규의 열연에 힘입어,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의사의 성공에의 집념 그리고 그것이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을 아주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히치콕감독의 사이코에 나오는 나선계단을 우리 현실에서 아주 그럴 듯하게 이용해서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다. 

귀로나 휴일같은 멜로드라마에서는, 세련된 멜랑콜리와 러브스토리가 영화를 강력한 자장처럼 감싼다. 

삼포 가는 길에서는,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잃은 떠돌이들의 비극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의 영화는 늘 뜨겁다. 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강력한 감정적 자장을 가지고 그려낸다. 나는 이것이 그의 진정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근친상간이니 아동살해니 하는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임신해서 고뇌하는 백수 청년, 

신분의 사닥다리를 올라가고 싶어하는 젊은 의사, 바람난 아내 등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만희감독의 영화를 보면, "이거 잘 모방했네"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의 내면과 세계에 빠져들면서, 이만희감독의 세련된 영화에 감탄하게 된다. 

단순히 "시키면 잘 만들었던 감독"이라면, 이런 강렬한 영화적 힘이 존재할 리 없다.   

그의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않기란 힘들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9

  • Hide
    Hide
  • 노튼
    노튼
  • 콘스탄트
    콘스탄트
  • 사보타주
    사보타주

  • champ3
  • VADER
    VADER
  • golgo
    golgo
  • 해리엔젤
    해리엔젤
  • Sonatine
    Sonatine

댓글 10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이만희 감독 영화중에서 마의 계단(1964)을 가장 좋아합니다 ㅎㅎ

21:36
24.06.10.
BillEvans 작성자
Sonatine
저는 귀로같은 멜로드라마도 좋더군요. 아주 걸작입니다.
21:43
24.06.10.
profile image 2등

오리지날 만추가 필름 소실이라니...처음 알았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21:36
24.06.10.
BillEvans 작성자
해리엔젤
소실된 영화가, 한국영화사 최고걸작이란 말을 듣던 영화이니 참 안타깝죠.
21:44
24.06.10.
profile image 3등

김정일 컬렉션.. 언젠간 공개될까요?

13일의 금요일 광팬이란 소문은 들었는데....

21:39
24.06.10.
BillEvans 작성자
golgo
언젠가는 공개되겠죠. 잘 보존되어야 할 텐데요.
21:44
24.06.10.
profile image

만추가 공개된다면 한국영화걸작리스트가 바뀌게 될거라 확신합니다!

22:56
24.06.10.
BillEvans 작성자
VADER
어딘가에 존재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 봅니다.
00:20
24.06.11.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파문]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9 익무노예 익무노예 2일 전11:36 2471
공지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시사회에 초... 25 익무노예 익무노예 6일 전20:03 4333
HOT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의외의 영화) 리쎌웨폰 1편 오프닝... 3 80's 31분 전22:17 276
HOT 슈퍼맨 티저 예고편 200만 돌파!! 1 zdmoon 58분 전21:50 289
HOT 왓이프 시즌3 에피소드 3,4 리뷰(스포) 4 기다리는자 1시간 전21:43 294
HOT <사조영웅전:협지대자> 양가휘의 특이한 이력 3 손별이 손별이 1시간 전21:26 301
HOT (약스포) 수유천을 보고 1 스콜세지 스콜세지 1시간 전21:19 226
HOT (약스포) 무도실무관을 보고 2 스콜세지 스콜세지 1시간 전21:07 265
HOT <아름다웠던 우리에게>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예정 2 손별이 손별이 1시간 전20:52 240
HOT (약스포) 위민 토킹을 보고 2 스콜세지 스콜세지 2시간 전20:48 161
HOT < 하얼빈 > 후기 (노스포) 2 blue08 2시간 전20:43 735
HOT 고천락 주연 <악행지외> 예고편 공개 1 손별이 손별이 2시간 전20:39 204
HOT 오게2 팝업도착입니다 1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시간 전17:46 1115
HOT [오리지널 티켓] Re.31 예고 3 무비티켓 5시간 전17:05 1160
HOT DCU <플래시> 단독 영화는 아직 미정 4 카란 카란 7시간 전15:46 1531
HOT <데드풀> 감독 팀 밀러, 첫 작품으로 번 돈과 헐리우... 카란 카란 7시간 전15:32 2359
HOT <나홀로 집에> 감독이 밝힌 맥칼리스터 가족의 직업과... 2 카란 카란 7시간 전15:23 1496
HOT '평화' '독립' 꿈꾼 안중근이 2024년에... 2 카란 카란 7시간 전15:19 812
HOT 하얼빈 (짧게, 스포 있음) 9 min님 7시간 전15:14 2048
HOT [영화리뷰] <위키드(The Wicked: Part 1), 2024> : 모... 5 바비그린 12시간 전10:16 1056
HOT <크리스마스 특선> 이스턴 프라미스(2007) 8 해리엔젤 해리엔젤 1일 전19:44 1697
HOT [성탄절 호러] 피로 물드는 크리스마스 - 블랙 크리스마스 15 다크맨 다크맨 1일 전14:18 2191
1161819
image
NeoSun NeoSun 5분 전22:43 48
1161818
image
NeoSun NeoSun 10분 전22:38 77
1161817
image
중복걸리려나 15분 전22:33 175
1161816
normal
80&#039;s 31분 전22:17 276
1161815
image
zdmoon 58분 전21:50 289
1161814
normal
기다리는자 1시간 전21:43 294
1161813
image
손별이 손별이 1시간 전21:26 301
1161812
image
스콜세지 스콜세지 1시간 전21:19 226
1161811
normal
울프맨 1시간 전21:12 329
1161810
image
스콜세지 스콜세지 1시간 전21:07 265
1161809
image
e260 e260 1시간 전21:06 171
1161808
image
e260 e260 1시간 전21:05 334
1161807
image
e260 e260 1시간 전21:05 202
1161806
normal
울프맨 1시간 전20:55 306
1161805
image
손별이 손별이 1시간 전20:52 240
1161804
image
스콜세지 스콜세지 2시간 전20:48 161
1161803
file
blue08 2시간 전20:43 735
1161802
image
손별이 손별이 2시간 전20:39 204
1161801
image
손별이 손별이 2시간 전20:32 281
1161800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19:48 316
1161799
image
진지미 4시간 전18:46 575
1161798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4시간 전18:34 628
1161797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시간 전17:46 1115
1161796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7:30 443
1161795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시간 전17:05 551
1161794
image
무비티켓 5시간 전17:05 1160
1161793
normal
울프맨 5시간 전17:01 491
1161792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시간 전17:00 433
1161791
image
초록면상 6시간 전16:23 886
1161790
image
처니리 처니리 6시간 전15:58 259
1161789
image
카란 카란 7시간 전15:46 1531
1161788
image
카란 카란 7시간 전15:32 2359
1161787
image
카란 카란 7시간 전15:23 1496
1161786
image
카란 카란 7시간 전15:19 812
1161785
image
min님 7시간 전15:14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