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2023) 어설프지만 웃긴. 스포일러 있음.
거미집을 보면서 무척 재밌게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 자체의 힘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들, 감독이 어떻게 행동했겠구나 하는 것이 눈앞에 그려져서 재미있었다.
김기영감독 (영화 속 김열감독)이 다 만든 영화를 갈아엎고 새로운 결말로 만들겠다고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찍어누르고 억지로 밀고 나간다. 그는 그랬을 법 하다.
주연배우 강호세 (김진규인 듯하다)와 이민자 (김진규의 부인 대배우 이민자인가?) 그리고
젊은 신예 여배우 한유림 (김열이 발탁해서 키웠는데 자기는 드라마로 스타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드라마 장희빈으로 대스타가 되었지만 영화적 출발점은 김기영감독인 여배우 - 바로 젊은 윤여정이다.) 등이
영화 촬영장으로 몰려든다.
충청도 양반 속없이 사람만 좋은 성격과 손찌검을 하는 폭력적 성격이 뒤섞인 김진규가 촬영장에서
어떻게 했을 지 상상이 간다. 그는 지성인 역할을 끝없이 했지만 무식한 사람이었고
선량하지도 않았다.
굉장히 모순적인 인물이었고, 그것이 복잡한 연기로 남았다.
혹시 남자주인공 강호세가 김진규인 것을 관객들이 눈치 못챌까 봐
영화 속 강호세는 김진규가 "마의 계단"이라는 걸작에서 한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김진규는 바람을 피운 상대가 집으로 쳐들어오면 이층으로 달려가 숨었다. 그러면 김진규의 아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찾아온 여자를 달래고 돈을 주어 보냈다. 이 영화 속 강호세를 보며, 김진규의 그 에피소드가
떠올라 더 몰입이 잘 되었다. 결말을 보니 역시 강호세는 김진규가 맞다. 한유림이 강호세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속여왔는데도 불구하고, 강호세는 한유림을 감싸안고 보호해준다.
하지만 김진규가 과연 영화 촬영 중에 이런 소동을 벌였을까? 신성일은 촬영장에 여자를 끌어들였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김진규는 프로페셔널하게 영화 촬영에 임했을 것 같다.
김진규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론을 손으로 써서 닳을 때까지 읽고 다니던 사람이다.
배우는 순수 연기로 남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믿었고,
수건 등 소품을 사용해 연기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도 증오하였다.
우리는 한국영화사 최고배우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그는 스타이기 이전에, 배우로서 최고수준을 추구했던 진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생활은 정말 개판이었다.)
강호세의 어머니역으로 나온 노장여배우 오여사는 누구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당시 어머니역 배우하면 황정순 그리고 한은진이었을 텐데, 둘 다 그렇게 성격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는 스타였고 연기력이 엄청 탁월한 사람들이어서 자존심도 아주 높았다. 영화에서 말해지듯이
"돈만 주면 아무 연기나 하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황정순은 악극단 시절부터 스타였고, 한은진은 조금 늦게 태어났다면 명품조연이 아니라 주연여배우로 대성했을 것이다.)
가장 악의적으로 나온 사람이 신상옥감독의 부인 최은희다. 한국영화사 대여배우인 최은희를
"단역배우가 남편 잘 만나 출세했다" 정도로 비방수준에 가까운 욕을 했다.
최은희는 남편 신상옥감독을 만나기 전 악극단시절에 이미 전국적인 스타였다. 당시 악극단에는 "삼순이"라고 불리며 서로 경쟁심을 불태우던 여배우들이 셋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최언순 (최은희의 본명이다) 그리고 황정순이었다.
십대에 이미 마음의 고향이라는 걸작에 나와서 미모와 연기를 선보였는데, 젊은 신성일은 이 영화를 보고 최은희에게
얼마나 감동했는지, 나중에 진짜 만났을 때는 긴장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한다.
신성일은 이후에도 최은희를 숭배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백사부인같은 영화에서 함께 공연했을 때에도
상대역인 최은희를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최은희 곁을 떠돌며 이제나 저제나 말을 붙여 볼까 하던 사람은 남편 신상옥이다.
최은희가 영양실조로 공연 중 졸도하자 잽싸게 달려들어 업고서 병원으로 감으로써, 신상옥감독은 최은희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신상옥감독이 최은희와 만나기 전부터 명감독에 대성공을 거두고 한국영화계를 지배했던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이었던 신상옥감독과 여배우 최은희는 말하자면, 예술가동지같은 것을 이루어서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오면서 성공을 향해 나아갔다. 김진규와 최은희가 함께 공연하고 신상옥감독이 감독한
춘향전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상옥감독이 아무리 천재였다고 하더라도, 최은희가 가지고 있던 스타파워가 없었더라면 또 몰랐다.
우리나라 영화계를 지배한 신필름에서, 최은희는 공식적인 지감을 가지고 조직을 지배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상옥감독의 아내라는 타이틀과 대배우로서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신필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신상옥감독이나 최은희나 신필름을 통해 돈은 엄청나게 벌었지만, 그 많은 돈을 영화계를 위해 다 써 버리고도
눈 하나 깜박 않았다. 둘 다 존경 받아야 한다.
영화에서 신상옥감독이 죽는 순간에 그의 아내가 몰래 영화사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가방에 돈을 챙겨 도망가는
장면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최은희는 조선시대 순종적인 여성 비슷한 것을 내면에 품고 있던 지라,
죽는 남편을 두고 돈을 찾으러 가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못 낳는 것을 무슨 칠거지악 비슷하게 괴로워했다. 오죽 그것이 괴로웠으면, 나중에 신상옥감독이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을 따지러 갔다가, 갓난아이가 놓인 것을 보고서는 다 잊고 눈물이 왈칵 났다고 했을까?
최은희는 감독으로서도 세 작품을 감독했는데, 다 수작들이다. 그 중 첫번째 작품 민며느리는 걸작이다.
신상옥감독도 민며느리에 대해서는 걸작이라고 단언을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기영감독에 대해서도 고인모독 수준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영화감독 김열은
신상옥 감독 밑에서 독립해서 만든 첫영화의 히트로 인기감독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동료감독들은, 김열이 신상옥 감독의 시나리오를 훔쳐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비웃는다.
(나중에 이는 사실로 드러난다.)
동료감독들에게 "언제나 영화 한번 제대로 만들어 볼래?" 하고 놀림을 받는다.
같은 감독 취급도 안 하는 수준의 놀림이다.
김열감독은 원래 신상옥 감독 밑에서 빨래 하고 감독이 바람 피우면 망을 보고 하던 딱가리였다는 설정이다.
배우들도 동료감독들도 이를 잘 안다. 알면서 비웃는 사람들 그리고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
두 부류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김열이 예술적인 성공을 거두려고 하는 강박관념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김기영감독과 전혀 다르다. 아들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이런 영화를 만들어놓고 김기영감독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하는 식의 말을 하다니 무신경하다.
김기영감독은 신상옥감독보다 십여 년은 나이가 많은 윗세대다. 신상옥감독의 딱가리라니.
그리고 김지미를 데뷔시킨 영화 죽엄의 상자를 통해 1955년에 이미 대성공을 거두며 흥행감독 반열에 올랐다.
1950년대 만든 영화들 - 죽엄의 상자 그리고 양산도는 영화사에 남을 정도 작품들이다.
첫감독작도 히트, 둘째 감독작도 히트 이런 식이었다.
아마 1950년대에 이미 흥행+거장성을 인정 받는 박찬욱 감독 포지션에 있었을 것이다.
1960년대 만든 하녀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고작을 꼽을 때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다.
그리고 1960년대 만든 또 다른 작품인 고려장도 하녀 못지 않은 걸작이다.
당시 사람들도 이것을 잘 알았다. 자신도 자기 가치를 잘 알았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김기영감독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서 신상옥감독을 비롯 다른 감독들과
유사한 데도 없다.
그리고, 김기영감독은 서울대 의대 졸업생이다. 당시 영화계에는 도제식으로 영화판에 들어온 감독들도 다수 있었던
지라, 서울대 그것도 의대 졸업 김기영감독은 높은 위치에 있었다.
본인 말이기는 하지만, 교토에 유학도 다녀 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찌질이로 만들어 놓다니 유족들의 분노가 엄청났을 것이다.
아마 이 영화가 진짜로 김기영감독의 일생 중 취한 것은 -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 마지막 순간에 엔딩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주변과 싸우는 것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당대 거장 신상옥감독을 그린 것은 사실에 비교적 부합되지 않나 느낌을 받았다.
정우성이 오버액션을 했는데, 신상옥감독 본인이 좀 오버액션을 하는 편이 아니었나 싶다.
불길 속에서 엄청난 장면이 나왔다고 혼자 카메라를 돌리다가 타 죽는 것은 좀 심하기는 해도 본인 성격 그대로다.
절벽에서 좋은 화면을 잡는다고 뒷걸음질치다가 떨어진 실제 에피소드가 있다.
스태프들이 놀라 달려갔더니 껄껄 웃으면서 "아주 좋은 화면을 잡았었는데, 아깝네......"했다는 것이다.
본인 목숨같은 것은 신경도 안 쓰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열정 속에는, 이 열정을 내보여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위압하려고 하는 속물적인 면이 또 있어서
사람들은 신상옥감독 카리스마에 "푹" 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눈꼴 시어하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도랑 아래 물속으로 주저없이 뛰어들어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왜 바지를 최고급 바지로 입어서, '이렇게 비싼 바지도 영화를 위해서라면 버린다'라고
과시해야 하느냐 말이다.
이 영화에서 김열감독이 신상옥감독을 바라보며 존경하는 시각이 딱 이것이다.
보스기질이 있는 신상옥감독답게 밑에 있는 조감독들에게 아낌 없이 베푸는 사람이었는데, 일설에는
조감독들이 연출한 영화들 중 신상옥감독이 사실상 찍어준 영화들이 다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상옥감독 본인이 입을 다물었으니 확인할 도리는 없다. 영화 속 김열이 훔쳐간 시나리오도,
아마 신상옥감독에게 달라면 그냥 주었을 것이다. 신상옥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감독타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이 쉰들러 리스트에 예술성을 능숙하게 불어넣듯이) 자기 영화에 예술성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오락성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중적인 걸작들을 만들기 전, 신상옥감독도 당대 트렌드를 따라 리얼리즘걸작들을 몇편 찍었다.
악야와 지옥화가 그것이다. 신상옥감독은 악야와 지옥화를 두고두고 써먹었다.
자기는 대중적인 걸작들을 안 만들었으면, 비대중적인 리얼리즘걸작들을 많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악야같은 작품들을 계속 만들었으리라고.
사람들은 신상옥감독의 자기자랑에 눈꼴이 시었지만, 어쨌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야는 사라졌고, 지옥화는 리매스터링이 되어 남아 있다. 장비도 무대도 없이 미팔군기지에 가서
독립영화 찍듯이 만든 영화다. 하지만 거장이 만든 걸작이다. 신상옥감독이 악야나 지옥화같은 작품들을 몇 작품만
더 만들어줬어도 우리나라 영화사가 달라졌을 지 모른다.
이렇게 내 위에 사람이 없는 오만하고 보스기질이 가득한 신상옥감독이 숭배하고 말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거장이 있으니 바로 나운규감독이다. 그의 영화 아리랑을 보고 감동 받은 것이, 신상옥감독이 감독의 길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리랑의 몇 장면을 회고하는데, 그 어투에는 존경심과 숭배가 가득하다.
아리랑은 언제 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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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김열의 입봉작이 상 받은
3회 대종상이 몇년도인가 찾아보고
하녀가 몇년도인지 찾아봤다
오히려 1960년 영화여서 놀랬어요
딱 독재가 끝나고 새로운 독재가 다시 오기 전
독재의 공백기 때라 오히려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정우성이 분한 신상호는 딱 신상옥이겠구나
싶었는데 검색해봤다가 오히려
신상옥이 한참 후배 기수라 놀랬었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빠삭한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불타는 세트장에서 거액의 돈이 금고에 들어가있다면 당연히 돈부터 빼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