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 페레즈>를 보고 (스포O)
<예언자>, <러스트 앤 본> 등을 연출하고, <디판>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신작 <에밀리아 페레즈>를 보고 왔습니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네 명의 여배우들이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해 오스카 레이스에서 초반에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다 후반으로 갈수록 주연배우인 칼라 소피아 가스콘의 논란과 영화의 문화적 전유 등 논란으로 도마에 오르내리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은 또 오랜만인데 개봉한 주말에 서둘러 보고 왔습니다.
영화는 멕시코 도심의 야경을 비추며 그 위로 멕시코풍의 노래가 깔려서 멕시코를 배경으로 했음을 곧바로 알려줍니다. 그리고 흔하지 않은 ‘흔한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 ‘리타’를 먼저 관객에게 소개합니다. 무수한 영화들 속에서 흔히 보았던 ‘돈이면 뭐든 하는’ 변호사 캐릭터랄까요. 여기서 흔하지 않은 ‘흔한 사건’이란 아내를 살해하고도 아내가 자살한 것처럼 변호해야하는 사건처럼 만연하게 퍼져있지만 그 죄의 경중이 가려진 극 중 배경의 실태에 대한 일종의 비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 샐다나가 연기하는 ‘리타’는 인간적으로 양심을 가지고 있어 관객이 그에게 몰입할 여지를 줍니다.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리타’를 통해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입니다. 그런 ‘리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넘버, 핸드헬드, 쪼개는 편집, 보이스 오버 등 기술적인 장치를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어떻게 알고 ‘리타’에게 전화했는지 모를 멕시코 갱단 보스 ’마니타스‘의 제안을 받는 ‘리타’의 동기가 설명이 될 수 있고,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뮤지컬은 연극에 비해 직관적인 장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뮤지컬 장르를 택한 건 최고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고뇌하고 속내가 복잡한 인물들의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는 장치로 뮤지컬을 택해서 과잉의 에너지가 가득하니까요. 이야기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헤드윅>이나 <킹키부츠>와도 유사한 이유로 뮤지컬 장르가 쓰인 것으로 다가와서 영화의 화법과 텍스트가 사뭇 일치한다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뮤지컬 장르에 충실해서 러닝타임의 거의 절반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형식으로 1막과 2막을 구분 지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러닝타임의 40분 되는 지점에서 ‘마니타스’가 성전환해서 ‘에밀리아 페레즈’가 되면서 이야기를 한 번 끝내고 4년의 간극을 둡니다.
이야기의 중간 뼈대에서는 이제 영화의 무게가 ‘에밀리아 페레즈’에게 기울어 성전환 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고, 이기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에밀리아 페레즈’의 심경과 행동들은 논리적으로 개연성이 타당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호소가 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뮤지컬적인 연출이 강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지만 과거의 삶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온전히 새로운 삶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의 ‘이도 저도 아닌 혼란스러운 심경’을 시각화했달까요. 가족을 두고 성전환 수술을 하며 새로운 삶을 택했지만, 시간이 흘러 고모로 속이고 아이들을 멕시코로 데려오는 점. 갱단보스였으면서 ‘라루세시타’ 활동을 통해 마약 관련 사건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점. 죄를 묻지 않고 새 삶, 새 평화를 위해 ‘라루세시타’ 활동을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제일 새 삶, 새 평화가 필요한 점.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지만 실은 후원자들이 범죄자들이고 후원금은 더러운 돈이라는 점. 그런 복잡한 혼란을 ‘마니타스’와 ‘에밀리아 페레즈’ 두 인물로 나누면서도 두 인물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현재의 ‘에밀리아 페레즈’의 심경으로 묘사해내는 방식입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벌어지는 오해의 간극은 ‘마니타스’가 죽은 줄 알고 있는 주변인물들과 ‘에밀리아 페레즈’, ‘리타’가 각자 가지는 정보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이 감정선이 뚜렷한 영화에서 혼란과 오해가 덮어지면서 끝내 강렬한 감정의 직선대로를 내달려 파국의 종착점으로 향하게 됩니다. ‘에밀리아 페레즈’가 인질이 되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되는 후반부에서 다시 이야기의 중점이 ‘리타’에게 쏠리게 됩니다. 이때 ‘에밀리이 페레즈’의 손가락이 배달되는 봉투에 카메라가 포커스를 맞춰 이동하는 장면 등 영화적인 언어를 통해 이 영화가 단순히 뮤지컬이라는 장르 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말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극단적인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여성과의 우정이자 여성 간의 연대라는 점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변호사인 ‘리타’의 성별, ‘마니타스’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성별, ’에밀리아 페레즈‘로 성전환하고나서도 그가 만난 상대의 성별, ‘리타’가 ‘에밀리아 페레즈’를 구하기 위해 대동한 암살자로 처음 소개된 인물의 성별, ‘에밀리아 페리즈’의 죽음 뒤로 송가를 부르는 이들의 성별. 이 극의 주요 인물은 모두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초반에는 거액의 돈이나 폭력 때문에 ‘마니타스’를 도왔지만 이제는 우정때문에 ‘에밀리아 페레즈’를 돕게 된 ‘리타’의 여정을 봐도 그렇고요. 나아가 ‘리타’는 ‘에밀리아 페레즈’의 자녀들의 양육자가 되기로 하고요.
이 작품은 이야기의 논리가 물질 만능주의나 폭력에서 의해서 작용되고 있습니다. ‘리타’가 ‘마니타스’의 제안을 수락한 동기나 ‘마니타스’의 제안을 수행하면서 얻은 보상으로 일등석, 구두 등이 따름을 확인시키고, 완전히 일이 끝맺기까지 생명 위협 등 협박을 해서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사건이 홍수처럼 쏟아져서 그렇지 그런 단순한 동기가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는 있어서도 그 자극에 드문드문 의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더불어 비중과 달리 ‘리타’를 연기한 ‘조 샐다나’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의구심을 남겼는데 확실히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이틀도 그렇듯 ‘에밀리아 페레즈’가 맞긴 합니다. 앞서도 말씀들렸지만 ‘리타’는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인물의 서사의 문을 열고 닫는 나레이터격이랄까요. 그러니까 <위대한 개츠비> 속 ‘닉 캐러웨이’와 같은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확실히 ‘리타’는 이 영화의 외부 플롯의 주인공이라서 저 역시 여우조연상보다는 여우주연상으로 지명되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추가로 문화적 전유에 대한 이슈도 있는데, 제가 멕시코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국민만큼의 불쾌함이나 이상한 부분을 캐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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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전유 시빗거리 없애고 멕시코인이 제대로 참여했더라면 정말 좋은 영화로 남을 텐데, 저도 영화 좋게 본 입장에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