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프리드킨의 최고의 영화
인디와이어 기사 번역·정리해봤습니다.
밴드의 소년들 (1970년)
프리드킨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67년 <굿 타임스>였지만,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첫 작품은 1970년 <밴드의 소년들>이다. 마트 크롤리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게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메이저 미국 영화 중 하나이며, 퀴어 영화사에서 획기적인 순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키친 싱크 드라마는 훗날 프리드킨 감독이 주특기인 팝콘 스펙터클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배우들에게서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그의 재능을 증명했다.
프렌치 커넥션 (1971년)
<프렌치 커넥션>에서 프리드킨은 뉴욕의 슬레이즈와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카체이싱 시퀀스를 훌륭하게 결합했다. 그 결과, 시대를 초월한 경찰 이야기가 탄생했다. 진 해크먼이 연기한 지미 ‘뽀빠이’ 도일은 뉴욕시 경찰로, 헤로인 대량 수송을 막으려는 그의 집념은 끝이 없다. 이 영화는 프리드킨의 미학을 정의하게 된 뉴 할리우드 캐릭터 개발과 할리우드 세트 피스의 융합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다.
엑소시스트 (1973년)
<프렌치 커넥션>으로 경찰과 강도 장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프리드킨은 자신의 커리어를 결정지은 <엑소시스트>를 통해 호러 장르에도 비슷한 아드레날린을 불어넣었다. 이 획기적인 명작은 이전에는 스트레이트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어 묘사를 사용하고 어두운 주제를 끊임없이 다루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한 무명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 수익을 창출한 이 영화는 이후 반세기 동안 공포 영화의 공식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프리드킨은 진정한 공포 영화를 단 한 편만 만들었지만, 그의 영향력이 가장 큰 장르로 남아 있다.
소서러 (1977년)
프리드킨은 네 명의 남성이 폭발성이 강한 니트로글리세린을 싣고 험난한 정글을 헤쳐나간다는 가장 단순한 소재를 금세기 가장 매력적인 액션 영화 중 하나로 탄생시켰다. 이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지만, 프리드킨은 네 남자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는 긴장감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버그 (2006년)
증명할 것이 없어진 말년에도 프리드킨은 결코 안전지대를 택하지 않았다. 21세기 초, 프리드킨은 극작가 트레이시 레츠와 함께 그의 편집증적 심리 스릴러 <버그>를 영화화하기 위해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프리드킨은 다시 한 번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일성과 할리우드 스펙터클을 결합하여 하나의 세트를 편집증에 대한 통렬한 영화적 묘사로 바꾸었고, 마이클 섀넌이 그의 최고의 역할 중 하나를 연기했다.
킬러조 (2011년)
프리드킨은 2011년 레츠와 다시 손을 잡고 레츠의 연극 작품인 <킬러조>를 파격적으로 각색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매튜 맥커너히가 청부살인업자를 부업으로 삼는 형사를 연기한다. 한 청년의 생명보험금 사기를 돕게 되면서 그는 남부의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프리드킨 감독의 가장 어두운 코미디 영화 중 하나다. 이 작품은 노령의 프리드킨 감독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케인호의 반란>의 감독으로 재등장해, 올가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추천인 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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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도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리브앤다이 To Live and Die in L.A. 추천합니다.
소서러도 죽이죠. 원작이 그유명한 공포의 보수
체크해놓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