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리뷰] 더 문 ★★ "달에 신기전 쏘는 기분"
저기 꽂혀 있는 게 신기전입니다. 세종 때 개발된 이 무기는 문종 때 신기전을 꽂아 쓰는 화차가 개발되면서 최대 100발까지 한 번에 발사할 수 있게 되었죠.
달에 신기전을 쏘면 어떻게 될까요? 구식 무기인 신기전으로는 백 발을 쏴도 달을 한 발도 맞추지 못하고 전부 지구로 떨어지고 말 겁니다. 이 영화가 딱 그 모양입니다. 백 발을 쏘는데 단 한 발도 와 닿지 않아요. 이게 정녕 2023년 영화인지, 정녕 '신과함께'로 우리 가족과 친구 가족 전원의 눈물샘을 폭발하게 만든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에 안주하기에는 이 영화가 거둔 영화적 퇴보가 너무나도 심각해서, 결국 '한국은 SF 불모지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하나 더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뛰어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280억 원의 예산으로 이 정도의 영상미를 구현해 냈다면 대성공이라고 평할 만합니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달 표면과 우주선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CG 면에서 전혀 어색함 없이 구현되었는데, 특히 하이라이트인 유성우 충돌 장면에서 이러한 기술적 진보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olby Cinema로 관람할 경우 이 장면에서 사방을 감싸며 들려오는 유성우의 중후한 충돌음과 암부 표현이 완벽하게 구현된 낸 우주 공간 특유의 색감 덕분에 할리우드 SF 못지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성취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잊히고 맙니다. 영상미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인데, 이는 서사의 구조적 실패에서 기인합니다. 영화는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고, 주인공은 이를 해결합니다. 그러면 즉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고, 다시 해결하죠. 이러한 갈등-해결 무한 루프를 120분 내내 선보입니다. 하나의 갈등-해결 시퀀스가 15분을 넘어가질 못하니 장편 영화가 아니라 차라리 단편 영화 모음집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요. 제작비의 문제로 공간을 최대한 한정적으로 구현했다 보니 자연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도 한정되었는데, 어쩌면 이는 적은 제작비로 무리하게 SF 영화에 도전한 여파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문제는 단순히 서사 구조에만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궁극적인 문제는 연출이예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터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서의 연출이 지나치게 구시대적입니다. 1년 동안 100편에 가까운 영화를 보면서 이 정도로 연출이 낡아빠진 영화는 처음 봤어요. 극중에서 놀랄 땐 눈을 크게 뜨면서 외치고, 슬플 땐 주변 사람 모두가 울고 있음을 부각하고, 긴박한 장면에서는 으아아아 하고 기합을 넣으며 구도를 왜곡하고, 이런 건 그 한창 유머 1번지 유행하던 시절 드라마 수준이잖아요? '신파'의 원 의미는 단순히 눈물 범벅 영화가 아닌 감정의 과장과 극대화를 나타내는 용어인데 이 영화가 딱 그 모양입니다. 이러니까 갈등-해결 신기전을 백 발을 쏴도 한 발도 못 맞추죠. 개인적으로 작품을 볼 때 연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이 점에서 평가가 급속도로 깎여 나갔습니다.
조금 더 알아볼까요? 의도적으로 무능하게 묘사된 일부 캐릭터들은 극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끊어 버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초반부터 등장하여 상황 파악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관 캐릭터입니다. 처음부터 이 캐릭터를 관객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로 설정하다 보니 자연히 이 캐릭터가 입을 열면 영화 전체적으로 구상된 드라마가 마치 되감기 효과음을 내며 끊기는 기분이 들고, 특히 눈물을 뽑아야 할 장면에서 얘도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몰입할래야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무능한 높으신 분을 비판하면 관객이 들어온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굳이 극 전반에 자신의 비호감을 뿌리고 다니면서 활개 치도록 방치해야 했을까요? 주인공의 경고를 흘려 들으며 사연을 팔다가 초반에 사건을 맞이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연이 주된 무기였을 텐데 거기에 집중할 수가 없고요.
대사도 문제가 많습니다. 무전으로 연락하는 장면이 대다수라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건 둘째치고, 몇 개 들리는 대사들도 과학 용어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다 보니 전반적인 대사를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한국 영화치고 영상미가 좋다'는 결론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는 무엇일까요? 한국 영화가 외국 영화에 비해 특출난 장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장점 중 하나는 자막을 볼 필요 없이 원어로 소통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관람의 편리함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사가 이래서야 차라리 '인터스텔라'를 자막 켜고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서사적 무리수도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앞서 갈등-해결 구조만 언급했지만 사실 이러한 구조를 반복하다 보면 과학적인 전개로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를 타파하려면 주인공 황선우를 위기에 빠뜨리기 위해 점차 편의주의적으로 구상될 수밖에 없고,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수를 숨기는 데 급급해지죠. 그러다 보니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캐릭터가 잘 짜여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주인공의 동기와 그 동기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는 작업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는 거고요.
김용화 감독도 영상미를 사실상 서사적 전개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 모습을 보이고 그것이 감독 특유의 스타일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영화 자체의 재미와 감동이 모두 뒤떨어지다 보니 일차적 목표는 실패하고 이차적 목표는 더 이상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4점을 준 이유는 김용화 감독이 발전시킨 CGI 기술을 다른 감독이 빌려다 쓰면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비롯된 점수예요. 그러한 결과물이 나오면, 그제서야 비로소 기술적 성취라는 용어를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도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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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전인데 벌써 본 기분이 드는군요 ㅋ
cg 자체는 훌륭한것 같은데 감정표현이 부족하고
스토리 감정선이 섬세하지 않고 뭔가 ‘ 나 슬퍼’, ‘기뻐’정도의 단순한 감정만 표현하고 영상미에만 집중한 느낌?!ㅠㅠㅠ
저는 섬세한 스토리, 감정선이 중요하게 생각해서
쫌 아쉬웠어요
오히려 전작 신과함께-죄와 벌이 감정선 면에서는 (섬세함은 몰라도) 자극하는 힘이 훨씬 더 강하다고 느꼈어요.
영화의 흐름에 공감할 수 없다 보니 영상미도 잘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Cgv 에그 보니 높아진 관객 눈높이에 미달인 게 보이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