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팩션이라면 이렇게.. 유해진 연기 대폭발한 영화!
어제 영화관 갈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소문이 좋아서 갑작스럽게 극장 가서 봤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좋은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웰메이드 팩션 사극. 메타포로 둘러놓긴 했지만 거의 직접적으로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고발 영화입니다. 경수가 궁으로 들어가기까지 좀 서론이 길지만 이후부터는 끝까지 팽팽하게 전개됩니다.
1. 정치적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는 영화
한 최고 권력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지만, 두 권력의 탐욕과 갈등을 비판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대통령', '대통령의 여당과 반대편의 야당', 좀 더 나아가면 '미국과 중국'을 대입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붕당정치가 판을 치는 사회였고 두 권력의 탐욕과 갈등이 나라를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다가 갑자기 힘 합치고, 근데 합치려면 명분이 필요하니까 누군가를 이간질시키거나 치거나 해서 명분을 만드는 행태들. 이 영화는 그런 부패 덩어리의 권력에 대해 메타포를 얹어 침처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정말이지 그들의 행태를 현실적이고 잘 공감되게 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뼈가 있는 대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 "이 침을 더 찔러 넣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을 망칠 수 있습니다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제가 다 보았습니다" (민중들은 권력이 없더라도 감시는 하고 있다)
- "다 들려!" (나쁜 짓을 범해놓고 민중들에게 숨기는 태도)
- 확대경 주면서 "보이는구나" (모든 권력자가 다 나쁜놈은 아니다)
- "저같이 미천한 것들은 못 본 척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저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힘이 없으면 정의로운 일도 모른 척해야 먹고 살 수 있다)
- "소경이면 소경답게 눈 감고 살아라" (권력자들이 민중에게 바라는 점)
메타포치고는 꽂아버리는 대사들이 참 많죠. 저는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권력을 비판한다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진 점도 있었습니다.
2. 유해진의 최고작 아닐까?
코믹 연기의 아이콘이 아니라 그냥 연기를 잘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대로 입증, 신경쇠약한 인조의 서늘함과 폭주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여담이지만 20여 년 전 <왕의 남자> 촬영했을 때는 광대로 나왔는데 지금은 왕으로, 그때와 이번 영화 촬영지가 다수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출하신 안태진 감독이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이라고 하네요.
3. 빛과 어둠, 그리고 메시지
캐릭터 설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치들이 따라간 것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조명이나 자연광 활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인조가 컷의 중심일 때, 소현세자가 중심일 때, 경수가 중심일 때의 빛의 톤이 다릅니다. 각기 미세하게 다른 톤을 통해 캐릭터 설명이 금방 되고, 특히 경수가 중심일 때 오는 빛의 변화는 그의 상황과 심정에 더욱 몰입하게 해주더라고요.
빛과 어둠을 이분법적으로 잘 그려내면서, 영화 속 권력자들은 어두울 때 나쁜 짓들을 범하는데 경수는 어두울 때 비로소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감시자가 되고 밝아지면 그 역할을 할 수 없는거죠. 그래서 영화 제목이 '올빼미' 아닌가 싶습니다.
(기타 생각들)
- '보지 못하는 자가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 정말 좋은 소재.
- 팩션이라면 이렇게. 기록에만 의존해야 하는 '과거'의 허점을 적당한 선에서 영화적 기능으로 잘 파고들었다.
- 궁(권력)이 너무 어두울 때는 경수가 힘을 발휘하더라. 마치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 다만 '우리'가 아닌 힘없는 한 명의 개인이었을 때는 어둠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다.
- 너무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신선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경수'라는 정말 좋은 캐릭터 설정이 크다. 물론 류준열이 연기를 잘했기에 가능했다.
- 큰 사건 안에서 또다시 생기는 작은 사건들이 서스펜스와 몰입감을 내내 유지시킨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반전 요소와 재미도 있지만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의 설득력이 무너져내리는 측면도 있다.
- 대사 잘 들린다.
- 이렇게 리뷰를 모아놓으면 정말 재밌게 본 것 같지만 크게 심금을 울리지는 않았다. 괜찮았다고 생각될 정도.
- 영화가 초반에 캐릭터들을 설명할 때의 표현에 의하면, 주맹증은 '밤에 보인다'가 아니라 '밤에 조금은 볼 수 있다'이다. 후반부는 여기서 개연성을 깨버린다 (이걸 놓치는 대신 메시지를 강화시킨다)
- 원래 인조 역을 최민식 배우가 맡기로 했었는데.. 2021년 8월에 하차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소속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했다. <올빼미>는 씨제스 제작에 류준열·조성하 배우도 씨제스 소속이다.
- 정의와 진실 앞에서 (만약 목숨이 달려 있다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
힙합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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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장면 많은데도 잘 보이고, 사극인데 잘 들리게 녹음도 잘 돼서 보기가 참 편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