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블랙폰> 소년에서 남자로, 그 짜릿한 쾌감 (feat. 올해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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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가 사는 지역 근방에서 남자아이들이 차례로 사라진다. 유일한 단서는 아이가 납치됐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발견된 검은 풍선. 수사가 답보상태이던 어느 날 피니의 여동생 그웬이 이 검은 풍선과 관련한 꿈을 꾸고, 급기야 피니도 납치된다. 그러자 그웬의 꿈이 피니를 비추기 시작한다.
1970년대에 벌어지는 연쇄 납치극을 기반으로 초현실을 가볍게 넘나들며 아이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형식이 <그것>과 맞닿아 있어요. 살인 삐에로가 아이의 공포를 먹으며 자라 기어이 목숨까지 빼앗는다는 설정이지요. 무의식에 깊숙이 감춰둔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결국 영혼이 잠식당하고 삶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는 심리를 (미국)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공포의 대상인 삐에로를 통해 비유적으로 스크린에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블랙폰>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피니가 그래버라는 남자에게 납치돼 혼자 감금된 후 스스로의 힘으로 결국 그곳을 탈출하는 과정이 이런 비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피니는 빨간 풍선을 든 삐에로가 연상되는 검은 풍선뭉치의 그래버에게 납치당하고, 친구들이 모여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삐에로를 물리치듯 감금된 곳을 거쳐간 여러 희생자들과 소통하며 그래버를 제압하고 결국 탈출하지요. 그웬이 피니를 찾아다니는 장면에서 타고다니는 자전거도 상당히 익숙한 모습이었어요.
사실 이 작품은 독특한 설정과 서스펜스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직조하지는 않아요. 캐릭터 설정도 각자의 내면이나 뒷배경들은 아예 없거나 느슨하게 드러나있어요.
그런데 그런 개연성이나 당위성은 되려 불필요해 보입니다. 소년의 성장기를 하나의 설정으로 압축해서 장르적으로 풀어낸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장점이라면 캐릭터의 행동을 분석하거나 상황의 개연성을 고민하다가 장르적 장치에 깜짝깜짝 놀랐어요.
세상에서 낭비되는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나는 다음의 나에게 항상 밑거름이 된다는 의미인데요. 시간과 관계가 가져오는 모든 것이 좋은 싫든 나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요. 선이 끊어진 검은 전화기의 벨이 울리고 피니는 그 통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아요. 살아나가야한다는 절박함으로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방식을 받아들여요. 비록 바로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마지막을 향한 밑거름이 되지요.
그래버는 기괴한 가면 안에 자신을 숨긴채 아이들을 납치하고 결국 치워버립니다. 이 인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요. 그의 심리나 목적이 드러나지도 않아요. 단지 의도적으로 문을 열어놓고 탈출을 시도하는 아이를 처벌하며 즐거워한다는 정도에요. 그래서 그래버는 이 세상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고 아무리 들여다 봐도 그 실체를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피니가 마침내 그래버를 제압하고 탈출했을때, 마치 세상의 예측할 수 없는 풍파를 버티며 자신을 단련하고 결국 살아남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여 소름 돋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P.S) 피니가 수화기를 손에 쥐고 타격을 연습하는 모습을 ‘올해의 장면’으로 꼽고 싶어요. 모든 것에 서툰 아이가 점점 정확하고 힘차게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남자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한 컷으로 담아내는데, 아주 짜릿했습니다.
추천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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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입소문 나서 꾸준히 관객 몰이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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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별개로 엔딩 장면이 주는 감동과 짜릿함은 부정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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