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사라고사 매뉴스크립트 (1965) 걸작.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4845 2 8

 

 

 

 

 

사라고사 원고는 단연 걸작이다. 이런 영화 다른 데서 본 적 없다. 

이 영화에는 기 승 전 결 없다. 액자식 구성이다.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또 그 주인공이 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이런 식이다. 

나중에 가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인지 혼란이 온다. 

물론 난센스 영화는 아니다. 액자식 구성 속에 또다른 액자식 구성이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결과는 환상과 혼란, 끝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네버엔딩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어느 시간과 장소에 속하는지 누구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이야기인지 아리송해진다. 

시간과 장소가 모호한 허공에 붕 뜬 이야기들 - 이것이 몇 겹씩 들어가고 들어가니 그 효과는 대단하다. 

구성에 더하여, 내용 (이야기) 자체도 세상에서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해괴하고 환상적이다. 

 

 

 

첫 액자는 아주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해서 전투가 벌어진다. 프랑스군 장교가 포화를 피해 어떤 집으로 숨어들어온다. 

테이블에 놓인 먹을 것을 하겁지겁 먹는데, 웬 책이 하나 펼쳐져 있다. 호기심에 보는데, 이 책이 세상에 기이한 것이다.

뭐라 잔뜩 써있는데 스페인어라 읽을 수는 없고, 그림만 본다. 밧줄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시체들, 옷 벗은 여자들 등.

그때 스페인군들이 집에 들어온다. 프랑스군 장교가 거기 있는 것 아닌가? 체포하려는데 프랑스군 장교는 놀라기는 커녕

"친구. 이 책 다 읽을 때까지만 기다려주게." 스페인군 장교는 놀란다. 도대체 뭐가 적혀 있길래?

둘이 머리를 맞대고 책을 읽는다. 프랑스군 장교가 스페인어를 몰라 책을 못 읽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자, 스페인군 장교는

자기가 읽어주겠다고 한다. 책은 알폰소라는 스페인군 장교가 스페인 황야를 혼자 지나면서 겪은 경험을 자기가 적은 것이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세상에 기이한 경험을 했다. 스페인군 장교는 놀란다. "알폰소라면 우리 할아버지 아냐?"

그리고 영화 본편이 시작된다. 알폰소가 황야를 혼자 건너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영화 자체는 액자 속에 있다. 

 

 

 

 

 

 

 

이런 영화 본 적 없다. 

시종 둘을 거느리고 황야를 건너가던 알폰소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멀리 돌아가자는 시종들이 이해가 안간다. 

시종들 왈, 그 길은 저주 받은 길이라 귀신을 만난다고 한다. 시종들에게 호통을 치고 알폰소는 

혼자 그 길로 간다. 알폰소는 호탕한 스타일에 복잡하게 생각 않는다. 귀신이 막상 나와도 껄 껄 웃으면서 말을 걸 타입이다. 

그런데 귀신은 안 나오고 그냥 황야에 길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오두막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앞에는 교수대에 덜렁덜렁 매달린 시체 두구가 있다. 그리고 거대한 독수리. 

알폰소는 오두막에 들어가 쉰다. 그러자 방 안 뒷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헉! 가슴을 드러낸 인도 여인이다. 

인도 여인이 왜 이런 스페인 황야 오두막집에 있는가? 인도여인은 자기 주인인 공주 둘이 지하실에서 알폰소를 기다린다고 한다. 

인도여인만도 놀라운데 공주 둘이 오두막집 지하실에 있다니? 

 

무섭다고 도망칠 알폰소가 아니다. 그는 호탕하고 당당하게 지하실로 따라간다. 

떡하니 차려진 음식에 공주 둘이 있다. 자기들은 레즈비안인데 한 남자에게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남자가 알폰소라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래도 이런 청혼을 물리칠 알폰소가 아니다. 

그는 호탕하게 둘과 결혼을 한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알폰소는 오두막에서 혼자 해골을 쓰다듬으며 잠을 자고 있다. 

 

알폰소는 황야를 마침내 빠져나와서 어느 마을로 간다. 신부가 환대를 해준다. 신부는 마치 살살 꾀듯이 

방금 지나온 길에서 신비한 일을 경험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알폰소는 절대 인도공주와의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폰소를 악마에게 빙의된 사람으로 몰아 처형하려 한다. 

그런데 두 남자가 달려와서 알폰소를 구해준다. 바로 오두막집 앞에 매달려 덜렁덜렁거리던 남자들이다.

알폰소가 당신들 죽지 않았냐고 묻자 "우리는 산적인데, 정부에서 우리들 명성을 죽이고자 일부러 비슷한 사람을 골라 거짓처형한

것이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산적들은 인도 공주 오빠들이었다. 

그들은 공주 처소인 지하실로 돌아가서 공주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한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알폰소는 오두막에서 혼자 해골을 쓰다듬으며 잠을 자고 있다. 

 

 

 

뭐 영화 전체가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액자 속 액자 속 액자 이런 식으로 영화가 흘러가기 때문에 굉장히 기묘한 느낌을 준다.   

호러영화도 나오고 코메디도 나오고 시대물도 나오고 쟝르가 막 전환된다. 그런데 감독이 거장인지 이런 전환이 굉장히 

스무스하게 되어 있으며 어느 쟝르가 되든 안정적으로 효과적으로 감독한다. 뭐 몇십분만에 호러영화가 됐다가 환상물이 됐다가 

시대물이 된다. 한 영화 안에 쟝르 두개 정도가 있다 하는 정도는 이 영화에 아예 비교가 안된다. 

 

걸작영화이고, 따라가면서 보기도 힘든데, 만든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단, 이 영화는 이런 환상적이고 효과적인 구조를 가지고 사회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하지는 않았다. 

아주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가지고 환상적인 대성당을 구축해 놓은 것이 이 영화다. 

너무나 아름답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

  • golgo
    golgo
  • spacekitty
    spacekitty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전 같은 감독의 《모래시계 요양원》을 보았는데 기억에 남네요

폴란드 영화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독특한 느낌이 있더군요

11:36
22.08.23.
BillEvans 작성자
spacekitty
폴란드가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상당히 수준이 높은 것 같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2:03
22.08.23.
BillEvans 작성자
진스
컬트영화는 소수에 의해 지지 받는다는 어감이 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걸작입니다. 그리고 대규모 예산에 메이져 작품이구요.
22:03
22.08.23.
profile image 3등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구조에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이야기도 있고....
재밌겠네요.
12:08
22.08.23.
profile image
golgo
저도 동양 귀신 이야기하고의 공통점이 있네 했습니다 ㅎ (이건 아직 보진 않았어요)
12:11
22.08.23.
BillEvans 작성자
spacekitty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위의 귀신이야기(?)는 영화 전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영화가 스케일이 아주 큽니다.
22:06
22.08.23.
BillEvans 작성자
golgo
보통 영화의 기승전결을 무시하는 기발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22:05
22.08.23.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웨폰 티저 트레일러 1 zdmoon 1시간 전01:07 215
HOT 2025년 4월 21일 국내 박스오피스 1 golgo golgo 2시간 전00:00 651
HOT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첫 주말 흥행수입 34억엔 3 중복걸리려나 5시간 전21:28 554
HOT 영화 야당 리뷰 6 음악영화 음악영화 5시간 전20:53 841
HOT 'The Count of Monte Cristo'에 대한 단상 4 네버랜드 네버랜드 5시간 전20:57 400
HOT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충격의 에피소드 제작 과정 1 golgo golgo 9시간 전17:24 2419
HOT ‘시너즈’ 해외 70미리 IMAX 상영 극장 풍경 3 NeoSun NeoSun 6시간 전20:32 879
HOT 오컬트 장르를 대중 오락물로 리셋한 <거룩한 밤: 데몬 ... 10 마이네임 마이네임 9시간 전16:41 3181
HOT [내부자들] 이경영役→'천의얼굴' 이성민표 재해석... 3 시작 시작 6시간 전19:51 1289
HOT <야당> 하퍼스 바자 화보 공개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6시간 전19:40 523
HOT 마동석 [거룩한 밤] 언론사 첫 반응 3 시작 시작 6시간 전19:36 3407
HOT 홍상수 감독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해외 ... 4 golgo golgo 7시간 전19:25 1239
HOT 미국서 흥행 국산 애니 '킹 오브 킹스' 여름 개봉 6 golgo golgo 8시간 전18:27 1444
HOT 4DX는 세월이 지날수록 퇴보 하는 느낌이네요. 2 DKNY 8시간 전18:09 946
HOT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 초간단 후기 3 소설가 소설가 8시간 전18:09 631
HOT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홍보물! 2 Andywelly 8시간 전17:49 715
HOT '라자로' But Why Tho 3화 리뷰 및 평점! 1 하드보일드느와르 9시간 전16:50 499
HOT <파과> 개봉 전에 원작 소설 읽는데 재밌네요. 5 뚠뚠는개미 10시간 전15:48 1134
HOT 페드로 파스칼이 올린 케이틀린 디버와 ‘라스트 오브 어스‘ ... 1 NeoSun NeoSun 11시간 전15:17 677
HOT 생각보다 괜찮았고, 알뜰히 즐긴 휴일의 수유롯시 열혈검사... 4 이안커티스 이안커티스 11시간 전15:12 790
1173427
image
zdmoon 11분 전02:23 33
1173426
normal
golgo golgo 45분 전01:49 111
1173425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0분 전01:44 82
1173424
image
zdmoon 1시간 전01:07 215
1173423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00:00 651
1173422
image
hera7067 hera7067 3시간 전22:57 478
117342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22:50 385
1173420
image
e260 e260 4시간 전22:30 521
1173419
image
e260 e260 4시간 전22:30 324
1173418
image
e260 e260 4시간 전22:30 240
1173417
image
시작 시작 4시간 전22:11 1478
1173416
image
중복걸리려나 5시간 전21:28 554
1173415
normal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21:04 457
1173414
image
네버랜드 네버랜드 5시간 전20:57 400
1173413
normal
golgo golgo 5시간 전20:53 462
1173412
image
음악영화 음악영화 5시간 전20:53 841
1173411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0:46 999
1173410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0:43 545
1173409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0:38 352
1173408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0:34 594
1173407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20:32 879
1173406
image
GI 6시간 전20:29 269
1173405
image
석호필@ 석호필@ 6시간 전20:02 593
1173404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6시간 전20:02 393
1173403
image
시작 시작 6시간 전19:51 1289
1173402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6시간 전19:40 523
1173401
normal
시작 시작 6시간 전19:36 3407
1173400
image
golgo golgo 7시간 전19:25 1239
1173399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7시간 전18:59 559
1173398
normal
golgo golgo 7시간 전18:57 744
1173397
image
golgo golgo 8시간 전18:27 1444
1173396
normal
DKNY 8시간 전18:09 946
1173395
image
소설가 소설가 8시간 전18:09 631
117339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8시간 전18:09 606
1173393
image
golgo golgo 8시간 전18:01 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