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0
  • 쓰기
  • 검색

<멋진 세계> - '사회인'으로 거듭날 때의 고단한 물음표 (스포)

알폰소쿠아론 알폰소쿠아론
1055 8 10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1.jpg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멋진 세계>는 전과 10범의 전직 야쿠자 '미카미'가 13년 간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카미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하리만치 고집스럽고 단순합니다. 법과 질서보다는 스스로의 신념이 중요하다 믿으며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굉장히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교도소에서 나와 처음으로 올라탄 버스에서 '이제 평범하게 살거야'라고 굳게 되뇌이죠. 과연 그는 그가 바라던 대로 '평범'해질 수 있을까요? 그도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쉽지 않아요. 사회는 나이든 전과자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가 갖고 있던 고가의 손목시계가 녹이 슬어 못 쓰게 되었듯이, 젊을 적 그가 품고 있었을 능력과 기술도 녹슬어 빛을 바랬습니다. 

 

무엇보다 큰 장애물은 미카미 자신의 '야성'입니다. 시비가 붙은 동네 양아치를 두들겨패고 물어뜯음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한 듯 소년처럼 순수하게 웃어보이는 야성. 사회의 반듯한 울타리 속에 야생의 늑대를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 

 

 

2.jpg

 

운이 좋게도 그는 진심으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을 몇몇 만나게 됩니다. 감옥에서 처음 나와 도움을 받은 신원 보증인 노부부, 사려깊은 공무원, 진심어린 직언을 해주는 마트 점장, 그리고 다큐 촬영으로 만난 작가 지망생 청년. 

(어릴 적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찾기 위한 다큐 기획도 끝내 실패로 돌아가 유소년기에서 비롯된 미카미의 응어리를 해소해주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미카미에게 비슷한 조언을 해줍니다. 일단 참고 기다릴 것, 물러나는 게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사회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신원 보증인의 아내가 해준 말도 '삶이란 인내의 연속'이라는 거였죠? 

 

미카미는 요양보호시설에서 일하며 이들의 말처럼 스스로의 야성을 죽이고 사회의 반듯한 규격에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도 온정적이고 평화로워야 할 것 같은 복지 시설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또 다른 야만과 잔인한 폭력이었죠. 그리고 마침내, 그는 불의를 응징하고자 하는 강렬한 충동과 본능을 꺾고 인내하며 허허실실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 날 미카미가 퇴근하며 입가에 머금은 것은 잘 참았다, 어른이 되었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만족감에서 오는 웃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보다 평생 내면에서 펄펄 날뛰었던 순수한 야성이 오늘 잘려나갔음을, 앞으로도 수없이 잘려나가 거세될 것임을 깨달은 씁쓸한 미소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3.jpg

극 초반부터 꾸준히 건강에 이상이 있었음을 확인하고도 직장을 갖고 사회에 섞여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는, 결국 '사회인'이 되던 날 밤에 쓸쓸히 숨을 거둡니다.

 

처음엔 이런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결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저는 고민한 끝에 요양보호시설에서의 불의를 목격하고도 전혀 그답지 못하게 참아냈던 것이 사실상 개인이 지켜온 신념과 야성의 죽음이지 않았을까... 라는 쪽으로 해석하게 됐습니다. 

 

물론 익무에 올라온 많은 리뷰글처럼 미카미가 선량한 이웃들의 진심이 담긴 응원과 조언대로 결국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짧게나마 사회에 녹아들어 평범한 행복을 누렸다는 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해석도 물론 존중합니다. 오히려 이 쪽이 더 옳은 영화 읽기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유소년기의 결핍으로부터 시작해서 영영 빗나간 애어른으로 성장한 미카미에게, 이 사회는 자신의 본성을 거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곳이 아니었다... 는 씁쓸하고 비정한 해석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네요. 두 해석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제목의 느낌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어요.   

 

분명한 건 어느 쪽으로 영화를 읽든 참 잘 만든 멋진 영화라는 겁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영화는 이게 처음인데 느낌이 좋네요. 야쿠쇼 코지도 늘 그랬듯이 정말 대단한 연기를 펼쳐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지방에는 상영관이 정말 너무할 정도로 없어서ㅠ 서울까지 가서 보고 내려왔습니다. 아직 안 보신 익무인들도 내려가기 전에 얼른 보고 오시고 생각에 잠겨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8

  • 해리엔젤
    해리엔젤
  • 소수관측
    소수관측
  • 비밀이지만
    비밀이지만
  • nekotoro
    nekotoro
  • 조화와균형
    조화와균형
  • golgo
    golgo

댓글 10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조화와균형
삭제된 댓글입니다.
16:01
22.08.14.
profile image
조화와균형
제가 비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안한 부분이었는데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
16:11
22.08.14.
조화와균형
삭제된 댓글입니다.
16:23
22.08.14.
profile image 2등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익무님과 비슷한 느낌으로 영화를 봤네요.

<유레루> 이후 두번째로 본 감독님 영화였는데, 다른 작품들도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16:13
22.08.14.
3등
영화 너무 좋죠. ㅎㅎ 8월 본 영화 중 가장 좋았습니다. 다음주 놉과 불릿트레인 등 보고 나면 달라질 수 있지만요. ㅎㅎ
16:39
22.08.14.
알폰소쿠아론
저는 불릿 트레인의 원작을 워낙 좋아해서 ㅎㅎㅎ 브래드피트와는 소소한 공통점도 있고 하여 이쪽이 특히 기대됩니다 😄
16:50
22.08.14.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언젠틀 오퍼레이션]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5 익무노예 익무노예 23시간 전14:40 818
HOT [미키 17] 호불호 후기 모음 4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1일 전11:47 8456
공지 [존 윅] 특별관 취향 투표 이벤트 21 익무노예 익무노예 2일 전19:20 1483
HOT 마블 TV 수장,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 이후 MCU의 완전한 ... NeoSun NeoSun 2시간 전11:54 631
HOT 제이슨 지옥에 가다 4K 블루레이 표지 구성품 (북미) 4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0:51 321
HOT [할리우드 리포터] <기생충>의 오스카 성공기 5 왕정문 왕정문 23시간 전14:37 1805
HOT 제 45회 골든라즈베리 어워즈 수상 결과 7 장료문원 장료문원 7시간 전07:02 1639
HOT <미키 17> - 우리 안의 부채 의식을 끄집어내는 SF적... 3 조윤빈 조윤빈 7시간 전06:36 1046
HOT Posiedon adventure (1972) 진 해크먼의 걸작 어드벤쳐영화.... 2 BillEvans 11시간 전02:55 498
HOT (스포)미키17 후기(feat.데미안) 3 펭윙 13시간 전01:19 1114
HOT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메갈로폴리스‘ 골든 라즈베리 최악 ... 1 NeoSun NeoSun 3시간 전10:44 785
HOT 2024년 최고 출연료 배우들 10 2 NeoSun NeoSun 4시간 전09:53 840
HOT 모니카 바바로 SAG Awards 3 e260 e260 6시간 전07:24 884
HOT 미키17 전작보다 바보같은, 공감은 어려운, 재미는 줄어든, 2 왈도3호 왈도3호 13시간 전00:45 1539
HOT 노스포) 미키17 코돌비에서 보고 온 간단 후기입니다. 4 갓두조 갓두조 14시간 전00:09 3167
HOT 2025년 2월 28일 국내 박스오피스 1 golgo golgo 14시간 전00:00 1632
HOT [영화리뷰] <미키 17(Mickey 17, 2025)> : 친절하고 ... 1 바비그린 14시간 전23:49 969
HOT 애니 역대 흥행 순위 10 3 NeoSun NeoSun 15시간 전23:00 1237
HOT <미키17>을 보고 (스포O) 6 폴아트레이드 15시간 전22:47 980
HOT (강스포) 미키 17 포스터에서 발견한 강스포?? 4 드니로옹 15시간 전22:35 1440
HOT 최우식: 14년 <거인> 이후 김태용감독과 두번째 작품 ... 3 김형서 16시간 전22:21 1622
HOT (약스포) 화이트 버드를 보고 1 스콜세지 스콜세지 18시간 전20:21 465
1168371
normal
sonnybonnie 1분 전14:20 10
1168370
image
도삐 도삐 16분 전14:05 51
1168369
image
zdmoon 24분 전13:57 91
1168368
image
zdmoon 27분 전13:54 127
1168367
image
카란 카란 43분 전13:38 271
1168366
normal
RandyCunningham RandyCunningham 44분 전13:37 244
1168365
normal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시간 전12:37 692
1168364
image
내일슈퍼 1시간 전12:24 742
1168363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1:54 631
1168362
image
숙자21 2시간 전11:48 1543
1168361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1:41 258
116836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0:54 336
116835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0:51 321
1168358
fil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0:48 208
1168357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0:45 199
1168356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0:44 785
1168355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20 258
116835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15 399
116835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06 689
1168352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01 766
1168351
normal
동네청년 동네청년 4시간 전09:57 256
1168350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9:53 840
1168349
normal
바람계곡 4시간 전09:44 2739
1168348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5 251
1168347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4 884
1168346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3 355
1168345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2 391
1168344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2 496
1168343
normal
장료문원 장료문원 7시간 전07:02 1639
1168342
image
조윤빈 조윤빈 7시간 전06:36 1046
1168341
normal
HarrySon HarrySon 8시간 전06:02 2607
1168340
image
내일슈퍼 9시간 전04:25 275
1168339
normal
내일슈퍼 11시간 전02:56 3865
1168338
image
BillEvans 11시간 전02:55 498
1168337
normal
ufo ufo 12시간 전01:52 563